"틈새가 혁신이다"...뉴 팬택의 도전

전용 단말기 주력...6월 국내시장 재진출

홈&모바일입력 :2016/03/29 06:30    수정: 2016/03/29 14:14

"처음부터 확신을 갖고 뛰어든 것은 아니다. 어떻게 휴대폰으로 먹고 살지 궁리하다 보니 여러 비즈니스 모델이 눈에 보이더라. 하하하."

웃음소리는 컸지만 처음엔 혁신과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궁한 끝에 나온 꾀인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커다란 바윗덩어리도 작은 틈으로부터 무너져 내리듯 그가 말하는 틈새는 삼성, 애플 등 강자들이 판을 흔드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기술력은 있지만 힘 없고 돈 없는 중소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혁신의 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점점 깊어졌다.

지난해 다 죽어가던 팬택을 인수한 정준 쏠리드 대표. 그가 지난 수개월 간 동분서주하며 찾아낸 팬택이 살길은 이렇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 등지에서 전용 스마트폰에 대한 수요와 관련 사업 기회가 생각보다 많더라. 의료, 유통, 국가기관 등 여러 곳에서 관심이 많다. 예를 들어, 현지 편의점 체인을 운영하는 사업자가 고객에게 전용 단말기를 싸게 뿌리고 단말기를 통해 상품 정보나 쿠폰 등 여러 아이템과 서비스를 소비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인구도 적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스마트폰을 저렴하게 공급하고 현지 업자가 이해관계가 얽힌 관련 파트너들을 잘 엮어 지원금을 태워 공짜 수준으로 나눠주면 충분히 승산이 있겠더라."

정준 팬택 대표 겸 경영위원회 의장이 올해 1월 경영방향성 설명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팬택)

인도네시아 인구는 약 2억5천만 명, 세계 4위다. 베트남은 1억 명이다. 산술적으로 1천만대 정도의 규모의 경제를 이룬다면 제조사 입장에서 단가, 마진, 부품조달 등을 감안하더라도 해볼 만 싸움이라는 게 정 대표의 생각이다. 또 현지 단말기 유통시장은 오픈 마켓이다. 여러 조건이 딱 맞아 떨어진다. 이들 국가들이 정보통신(ICT) 기술력이 우수한 한국 기업들을 신뢰하고 선호한다는 것도 팬택에게는 사업적 후광이자 호재다.

팬택은 이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중국 생산 공장까지 이미 물색해 놨다. 지금 계약 단계다.

정 대표는 "팬택에게는 향후 3~4개월이 성공적인재도약을 결정지을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며 "국내 통신 사업자용 제품도 조만간 공급할 예정"이라고 했다. 팬택은 오는 6월께 중저가 스마트폰(모델명 'IM-100')을 SK텔레콤과 KT를 통해 출시할 예정이다. 해외 벤치마크 사이트 긱벤치에 공개된 IM-100은 퀄컴 스냅드래곤 435, 2GB 메모리를 탑재한 것으로 보인다. 출시가 확정되면 팬택은 약 1년 반 만에 국내 시장에 스마트폰 완제품을 내놓게 된다. 마지막으로 선보였던 스마트폰은 2014년 말에 출시한 베가팝업노트다.

정 대표는 당분간 가격이 비싼 고가폰은 만들 생각이 없다. 대신 서너개 중저가 제품으로 라인업을 갖고 갈 계획이다. 개발 효율성과 부품구매 경쟁력을 위해서다. 하이엔드와 미들급을 동시에 가져가면 개발 인력이 분산되고 대응하기 쉽지 않다는 점도 고려했다. 무엇보다 스마트폰 시장이 이미 포화단계에 접어들고 중저가 시장으로 싸움의판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팬택은 현재 400여명에 달하는 연구개발 인력과 3천700여건의 특허를 갖고 있다. 중국 생산공장이 가동되면 시장에서 요구되는 모든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적 기능에 대응할 능력이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휴대폰 사업에서는 제품·브랜딩·부품조달 시스템 등 3가지가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삼박자가 잘 맞물려 돌아가지 않으면 사업을 오래 지속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정석이다. 하지만 이는 대기업에 유리한 사업 모델이다. 규모의 경제가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은 중소기업은 부품을 싸게 조달하거나 글로벌 독자 브랜드를 관리하는 데 대기업보다 어려움이 많다. 과거 팬택은 대기업 모델을 쫓았다. 기술력과 자존심으로 이들과 맞짱을 떴다. 이를 위해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렸다. 그러나 무리한 인수합병은 오히려 독이 됐다. 도전은 아름다웠지만 결국 실패했다.

1998년 통신장비 기업 쏠리드를 설립한 정준 대표는 KT 연구원 출신 벤처창업 기업인이다. 국내외에서 중계기 사업을 통해 벤처기업협회 수장까지 올랐다. 그만큼 그는 통신과 휴대폰 업의 본질을 잘 꿰뚫고 있다.

정 대표는 "대기업이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이들이 일일이 로컬 제품에 대응할 수도, 소비자들의 욕구를 다 충족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 팬택은 그들이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정 사장은 미국의 온라인 유통 거인 아마존의 사례도 언급했다. 아마존은 과거 자체 온라인 쇼핑몰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파이어폰 단말기를 내놨다가 비싼 단말기 가격과 낮은 개방성 때문에 실패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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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이 과거 실패를 교훈 삼아 다시 전용폰 사업을 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지난 연말 아마존이 편의점에서 파는 맥주 ‘식스팩’ 처럼 태블릿을 6개 묶음으로 파격적인 가격에 내놓자마자 예상을 깨고 순식간에 동이 난 사건이 있었다. 또 전 세계적으로 휴대폰 제조기술을 원하는 국가들이 여럿 있다. 이들과도 손을 잡고 협력을 도모할 기회가 많다. 우리가 보는 틈새는 무궁무진하다."

작은 틈으로만 보이던 팬택의 틈새 전략이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