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AI 현주소-2] “넓고 멀리 봐야 할 때"

"정부 기초 다지고 기업들 긴 호흡 투자 해야"

방송/통신입력 :2016/03/16 07:34

“해외에서는 보통 작은 기업들도 인공지능 분야에 몇 천억 정도를 투자한다. 우리나라는 국가 전체 예산을 합쳐도 이보다 적다. 미국을 능가하지 못하더라도 의료, 건강, 교육, 문화 등에 집중하면 아직 기회가 있다.”

“정부는 인재 양성과 원천기술 개발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인공지능 생태계 조성에 힘써야 한다. 기업들은 내부 데이터로만 갖고 있던 빅데이터들을 공개해 활성화 시킬 필요가 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인공지능 인력을 단기간에 양성하는 건 불가능하다. 여력 되는 기업이 내부에 인공지능 조직을 만들어 장기적으로 투자하면서 인력을 키워내야 한다.”

이세돌 9단과 구글의 바둑대국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결을 기점으로 인공지능 산업이 가진 성장 잠재력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뒤쳐진 국내 인공지능기술과 산업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그 동안 ICT 강국을 자청한 한국이 정작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인공지능 분야에 대한 투자가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지난 1월18일 대통령 업무보고에 앞서 사전브리핑을 하고 있다.

정부 기관과 산업계에서는 이제부터라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인재 육성과 전문가 교육에 힘써야 한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또한 당장 큰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와 투자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알파고로 촉발된 인공지능 분야에 대한 정부의 즉흥적인 대응보다 “중장기 전략을 짜야할 때”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나아가 서버 사용에 따른 에너지 이슈 등 인공지능 시대가 몰고 올 다양한 변화의 물결을 내다보고, 정부가 넓고 먼 시각에서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당초 4월 발표 예정이던 인공지능(지능정보기술) 발전 계획안을 앞당겨 이달 중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편성된 예산은 300억원 규모다. 여기에는 민간 주도의 ‘지능정보기술연구소’ 설립 등 정부의 인공지능 관련 종합 대책이 담길 계획이다. 이에 앞서 미래부는 지난 7일 정보통신산업정책관 산하에 ‘지능정보산업육성팀’을 만들어 인공지능 생태계 조성, 기술 확보, 규제 개선, 투자 지원 등을 구상하고 있다.

이에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의 조일구 팀장은 인공지능 분야에 대한 정부와 기업이 투자를 더욱 늘리고, 전문 인재들 키우는 데 더 힘써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업에 투자를 하려해도 전문 인재들이 의대나 법대를 선호해 현저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관련 교수도 논문 작성에만 집중할 뿐 산업화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 소홀하다는 판단이다.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국

인공지능 분야와 소프트웨어 산업에 투자 규모를 늘리고,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분야인 의료, 건강, 교육, 문화 등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조일구 팀장은 “아직 포기할 단계는 아니다. 한국에도 사용 가능한 데이터가 많은 만큼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잘 찾아 집중할 필요가 있다”면서 “알파고가 대단해 보이지만 바둑에만 국한될 뿐 아직 인공지능 분야에는 많은 비즈니즈 기회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김현기 실장은 인재 양성과 원천기술 개발을 위한 인공지능 생태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언어, 시각 분야에 지식을 갖고 서비스 하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시장이 유력하다는 생각이다. 특히 김 실장은 국내 기업들이 빅데이터를 공개해 국가 차원의 R&D 사업에 기여해 주기를 바랐다.

김현기 실장은 “인공지능은 학습 데이터가 필요한데, 데이터를 모으는 데 있어 개인정보, 저작권 문제 등이 걸림돌이 된다”면서 “해외에서는 기업들이 꾸준히 데이터를 구축해 공개하고 팔기도 하는 반면, 국내 기업들은 이를 내부 데이터로만 쌓아두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구글이 오픈소스로 개방하는 머신러닝 텐서플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정두석 박사는 인공지능에 대한 정부의 즉흥적인 대응에 우려를 표했다. 이보다는 중장기 로드맵을 짜고, 인공지능 시대가 가져올 여러 가지 변화를 주목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 박사는 “인공지능기술과 서비스가 5년 이내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되면 전기 소모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에너지 이슈가 불거질 것”이라며 “이처럼 정부가 인공지능 산업을 키우겠다면 5년, 10년 뒤를 보고 대비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그는 “개인적으로 소프트웨어 기반 인공지능을 기회로 보는데 그 이유는 반도체 등 하드웨어 산업 대비 이 분야는 노동집약적이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인공지능 분야에 즉시 전력이 부족한 것은 맞지만 소수 인력만으로도 할 수 있는 분야인 만큼 너무 비관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첨언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윤석진 본부장은 정부와 기업들이 예산을 투자하고, 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것 못지않게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이 신 기술을 대하는 행태에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모든 정보와 특허권, 저작권 등을 비교적 자유롭게 공개하고 이를 여러 기업들이 활용하는 생태계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것.

구글 CEO도 흥분시킨 '머신러닝'의 세계

나아가 윤 본부장은 미래를 대비하는 R&D가 필요하다면서, 미래 시나리오를 분석 예측함으로써 올바른 R&D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석진 본부장은 “사회와 기술이 상호작용을 통해 예측하기 힘든 변화를 야기할 것이므로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간 융합이 미래예측과 R&D 전략 수립에 있어 핵심이 될 것”이라면서 “연구회는 분절된 출연(연)의 역량을 집적해 미래성장동력의 창출과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융합연구단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국내 기업들 역시 정부가 단기적인 관점에서 인공지능 분야를 키우는 것보다 큰 그림을 그려주고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인재를 키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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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 대기업 인공지능 전문가는 “활용 가능한 데이터세트가 존재해야 한다”며 “외국의 경우 각 대학이 데이터세트를 만들었고, 딥러닝의 데이터세트가 빈약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또 “현존하는 것보다 더 큰 게 나와야 하는데 데이터는 구글도 공개하지 않는다”면서 “정부가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맡아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넷서비스 회사 엔지니어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인공지능 인력을 단기간에 양성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여력이 되는 기업이 내부에 인공지능 조직을 만들어 장기적으로 투자하면서 인력을 키워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