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뉴욕법원, '아이폰 잠금해제' 왜 불허했나

"'모든 영장법'이 그런 권한 준 적 없다"

홈&모바일입력 :2016/03/01 13:58    수정: 2016/03/02 13:19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캘리포니아 법원은 받아들인 사안을 뉴욕 연방법원은 왜 허용하지 않았을까?

뉴욕 브룩클린 연방지역법원의 제임스 오런스틴 행정 판사가 29일(현지 시각) 애플은 마약상이 갖고 있던 아이폰 잠금장치를 해제해줄 필요가 없다고 결정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불과 보름 전 캘리포니아 법원의 셰리 핌 행정판사와는 완전히 상반된 결정이기 때문이다. 셰리 핌 판사는 당시 ‘비밀번호 10번 이상 틀릴 경우 데이터가 삭제되는’ iOS의 보안 장치를 우회할 별도 운영체제를 만들어달라는 연방수사국(FBI)의 요청을 수용했다.

(사진=씨넷)

캘리포니아 법원이 다룬 사건은 지난 해 12월 발생한 샌 버너디노 총기 테러였다. 당시 사건으로 14명이 사망했다. 범인 역시 현장에서 사망했다.

반면 뉴욕 연방법원에서 이슈가 된 것은 마약 거래 혐의자의 아이폰 잠금 해제 문제였다. FBI와 마약단속국(DEA)는 지난 해 10월 마약 거래 혐의를 받고 있는 준 펭의 아이폰5를 압수했다. 하지만 잠금 장치 때문에 아이폰 내부를 볼 수 없다면서 ‘모든 영장법’에 따라 애플의 협조를 요구했다.

■ "FBI는 이번 사건 못지 않게 선례 만들려는 것"

총기 테러와 마약 단속으로 사건은 서로 다르지만 잠금 장치를 우회할 수 있는 기술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성격 자체는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오런스틴 판사는 캘리포니아 법원과는 다른 관점으로 이 사건에 접근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오런스틴 판사는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애플이 정부를 위해 원치 않는 작업을 하도록 강제할 수 있느냐는 부분이라고 판단했다. ‘모든 영장법’이 그런 부분까지 규정하고 있느냐는 얘기다.

애플 캠퍼스. (사진=씨넷)

이 질문에 대해 오런스틴 판사는 “모든 영장법은 정부 기관이 애플 의사에 반하는 협조를 하도록 강제하는 것을 합법화하지 않았다”고 해석했다.

이에 대해 오런스틴 판사는 크게 두 가지 근거를 내세웠다. ‘모든 영장법’엔 애플 같은 기업이 해야만 할 부분에 대한 제한 규정이 있다는 것. 게다가 의회가 ‘모든 영장법’을 제정할 때 (애플이 요구받은 것 같은) 의무를 명기한 적 없다는 게 오넌스타인 판사의 생각이었다.

이번 사건에서 오런스틴 판사가 제기한 논점 중 특히 중요한 부분은 FBI의 의도다.

탐사 전문 매체 인터셉트에 따르면 오런스틴 판사는 FBI가 잠금 장치 해제 수단을 요구한 것은 단순히 이번에 문제가 된 아이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애플을 비롯한 여러 IT 기업들이 유사 사건이 있을 때 범죄 수사에 협조하는 선례를 만들려는 게 FBI의 진짜 의도라고 오런스틴 판사는 비판했다.

■ "애플은 범죄 연루된 적도, 수사 방해한 적도 없다"

오런스틴 판사는 이날 판결문에서 “미국 정부는 지금까지 ‘모든 영장법’을 이용해 애플 측에 최소 70회 이상 암호 장치를 우회하는 작업을 돕도록 했다”면서 “하지만 최근 사례에선 아이폰의 유용성을 훼손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만들도록 요구하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특히 오런스틴 판사는 미국 정부가 대중들이나 의회가 결코 허용하지 않을 비밀스런 사법 절차를 수행할 수 있는 힘을 가지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런스틴 판사는 미국 정부의 이번 요구는 삼권분립 원칙에도 위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의회를 통하지 않고 사법기관을 통해 아이폰 같은 제품의 잠금 해제를 강요할 권한을 갖게 될 경우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

팀 쿡 애플 CEO (사진=씨넷)

만약 ‘모든 영장법’이 FBI에 이런 권한을 준 것으로 해석한다면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에 저촉돼 위헌 요소를 갖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탐사 전문 매체 인터셉트는 애플이 이번 판결로 FBI와 힘겨루기 중인 ‘잠금 해제 공방’에서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선 오런스틴 판사가 판결문에서 언급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외신들에 따르면 오런스틴 판사는 “애플은 펭의 범죄에 연루된 적도 없고, 정부가 범죄 수사를 하는 데 방해를 하지도 않았다”면서 “애플은 (범죄 용의자인) 펭에게 합법적으로 아이폰을 판매했으며, 그 제품은 소유자 보호를 위해 각종 데이터를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지적했다.

■ 다른 아이폰 잠금해제 공방에도 큰 힘 될 듯

이 부분이 현재 공방 중인 샌 버너디노 사건에도 그대로 해당된다고 인터셉트가 분석했다.

범죄에 연루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합법적으로 판매를 한 애플에게 자기 제품의 가치를 훼손할 수도 있는 부당한 요구를 강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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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어떤 기관이든 정부의 범죄 수사를 도와줄 도덕적 의무를 갖긴 하지만 법적인 의무를 강제할 수는 없다는 논리 역시 애플에겐 큰 힘이 될 전망이다.

인터셉트는 이 같은 사실을 전해주면서 “뉴욕법원은 애플이 FBI를 상대로 제기한 핵심 주장들을 거의 모두 수용했다”면서 “이번 판결은 애플에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