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영원한 '절대 甲' 꿈꾸는 지상파

기자수첩입력 :2016/02/18 17:17    수정: 2016/02/19 08:50

지상파 방송사들이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 콘텐츠 생태계 등을 내세워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입수합병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막강한 방송콘텐츠 지배력을 앞세워 케이블, IPTV 등 유료방송 업계는 물론 외주제작사들로부터 '절대 갑(甲)'을 행사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콘텐츠 생태계와 미디어 시장을 걱정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의문이 먼저 든다.

지난 17일 지상파방송사 협의체인 한국방송협회는 방송의 공적 책임, 공정성, 공익성 실현과 이용자 권익보호를 위해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 승인이 불허돼야 한다고 밝혔다.

통신업계가 방송업계를 장악하고, 방송플랫폼 환경이 IPTV쪽으로 급격히 기울어 유료방송 시장의 다양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SK텔레콤이 유료방송 시장에서 확보한 지배력을 활용해 콘텐츠 협상력을 강화하면, 결국 방송 콘텐츠 가격 정상화를 가로막는다는 이유다.

방송협회는 합병 반대의 명분을 방송 콘텐츠 생태계의 퇴보로 에둘러 표현했지만, 결국 지상파 방송사들의 주장은 현재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IPTV 등 타 플랫폼 사업자에 빼앗기기 싫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지상파가 아닌 다른 플랫폼 사업자가 '절대 갑'이 되면, 방송 콘텐츠 시장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자신들이 방송콘텐츠 시장에서 행사하고 있는 '절대 갑' 행동은 아무런 문제가 없고, 다른 플랫폼 사업자, 특히 재벌기업인 SK가 하면 시장이 변질되고 역효과가 날 것이란 얘기로 해석된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합병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하기에 앞서, 지금 자신들의 모습이 미디어 생태계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볼 것을 제안한다. 과거 지상파는 한때 방송 시장의 모든 것일 때도 있었지만, 이미 많은 부문을 새로운 미디어에 내주고 있다. 최근 tvN의 '응답하라 1988' 드라마에 보여준 시청자들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지상파 방송사들의 위상이 얼마나 떨어졌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과거 각 가정의 안테나로 지상파 방송을 시청하던 시청자 절대다수가 케이블TV, IPTV 플랫폼을 통해 TV를 시청하고 있고, 또 상당수가 지상파 프로그램 대신에 종합편성이나 케이블방송 채널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 시장에 투영되고 있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행태는 지상파 방송만 있던 과거의 구습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적으로, 방송콘텐츠 먹이사슬의 맨 밑바닥에 있는 독립제작사와 지상파 방송사와의 관계를 살펴보자. 지난 2013년 독립제작사협회 등은 지상파 방송사의 저작권 횡포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면서 지상파 방송사 4곳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독립PD협회 소속 48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방송외주제작 분야 불공정 실태 설문조사’에서 현재 제작 중인 저작물의 저작권 91.7%가 방송사에 있었다. 또 방송사가 일방적으로 저작권 포기 계약을 강요해 저작권의 귀속이 결정되는 비율도 응답자의 81.3%에 달했다.

2차 저작물 저작권 역시 방송사가 독점 소유하고 있었고, 응답자의 79.2%가 방송사 또는 방송사 직원의 불합리한 정책이나 횡포에 공개 항의할 경우 “어떤 형태로든 보복이 따를 것”이라고 답했다. 방송콘텐츠 1차 생산자인 제작사들에 대한 지상파의 횡포가 어느 수준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상파 재전송료 문제에서도 지상파들은 절대 갑으로 통한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시간이 갈수록 지상파의 위상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유료방송 가입자의 재전송료를 일방적으로 50% 이상 인상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주문형비디오(VOD) 공급 협상 조건을 계속 높여가면서, 케이블TV 업체들과 공방을 벌이고 있다.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이 몰고 올 국내 방송통신 시장의 변화와 파장에 대해서는 아직도 상반된 해석과 전망들이 대립하고 있다. 어느 한쪽이 맞다 쉽게 예단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경제학자, 정치학자, 법문학자, 방송학자 모두 찬반으로 나뉘어 공방을 벌이고 있다.

시장 지배력이 높은 기업간 결합으로 경쟁 제한성이 높아질 것이란 주장이 있는 반면, 오히려 경쟁이 촉진될 것이란 주장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또한 가격 저하로 방송 콘텐츠 제작 환경이 더 열악해질 것이란 비관론과, 더 좋은 콘텐츠들이 제작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시청자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접하게 될 것이란 낙관론도 대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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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논쟁과 논란은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의 엄격한 심사에 따라 결론지어질 부분이다. 이 가운데 경쟁사들과 학계, 시민단체, 이해 관계자 등이 저마다의 논리와 이성적인 판단에 따라 갑론을박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어떤 기업결합보다 깐깐히 따져 법적 하자가 있고 문제가 우려되면 인허가를 불허하거나, 강력한 조건을 걸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하면 공익이고, 다른 기업이 하면 시장을 해칠 것이란 식의 지상파 방송사들의 합병 반대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