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경전 '무어의 법칙' 폐기된다

업계, 3월 개발로드맵 때 공식 포기 선언

컴퓨팅입력 :2016/02/16 15:32    수정: 2016/02/16 18:26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반도체시장을 지배해왔던 ‘무어의 법칙’이 공식 사망 선고를 받는다. 그 동안 ‘무어의 법칙’에 맞추기 위해 노력해 왔던 반도체업계가 다음달 포기 선언을 할 계획이다.

이 같은 사실은 과학 전문잡지 ‘네이처’가 2월호에서 특집 기사로 다루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무어의 법칙’은 인텔 공동 창업자인 고든 무어가 지난 1965년 4월 ‘일렉트로닉스’란 잡지에 게재한 글에서 처음 주장한 이론이다. 당시 글에서 고든 무어는 18개월마다 칩에 집적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 수가 2배씩 증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이론은 이후 인텔 반도체 전략의 핵심 역할을 하면서 ‘무어의 법칙’으로 불리게 됐다.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도 반도체 업체들은 ‘무어의 법칙’에 따라 칩 개발 로드맵을 만들어왔다.

1965년 4월 무어의 법칙을 처음 발표한 고든 무어 인텔 공동 창업자. (사진=씨넷)

■ 세계반도체업계, 3월 중 '비욘드 무어' 전략 발표

네이처 기사가 눈길을 끄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반도체업체들이 ‘경전’처럼 중요하게 간주해왔던 무어의 법칙을 스스로 파기한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 선언은 세계 반도체업계가 오는 3월 발표할 ‘국제반도체 기술 로드맵’에 담기게 될 전망이다. ‘무어의 법칙을 넘어(More than Moore’s Law)’란 전략으로 불리게 될 새 로드맵에서 세계반도체업계는 그 동안 해왔던 것과 반대 방향으로 개발 전략을 구사할 것이란 선언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동안 반도체 로드맵은 ‘무어의 법칙’에 따라 칩 성능을 먼저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런 다음 그 칩에 맞는 제품들을 후속 개발하는 방식이었다.

고든 무어가 1965년 무어의 법칙을 담은 논문에 사용한 그래프.

하지만 앞으로는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접근할 것이라고 네이처가 전했다. 즉 스마트폰, 슈퍼컴퓨터 같은 제품을 먼저 살핀 뒤 그 제품에 적당한 반도체를 개발하는 쪽으로 전략의 초점을 바꾼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엔 이런 선언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굳이 ‘포기 선언’을 할 필요 없이 알아서 개발하면 될 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동안 반도체업계가 개발 로드맵을 유지해온 관행을 살펴보면 이런 의문이 어느 정도는 풀린다. ‘무어의 법칙’이 50년 가량 생명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것은 반도체업체들의 보살핌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이해하기 위해선 ‘네이처’ 기사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무어의 법칙, 업체들이 인위적으로 지탱

1970년대 조악한 형태의 가정용 컴퓨터가 등장한 데 이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복잡한 기기들이 나왔다. 이런 기술을 토대로 2000년대 들어 고속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꽃을 피웠다.

이런 발전이 가능했던 밑바탕에는 바로 ‘무어의 법칙’이 자리잡고 있다. 반도체업체들이 18개월마다 칩의 성능을 두 배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들이 필연적인 기술 발전에 따라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네이처에 따르면 반도체업체들은 ‘무어의 법칙’ 경로를 인위적으로 치밀하게 따라가는 전략을 택해왔다.

무어의 법칙에 충실하게 따라왔던 반도체 개발 로드맵. 앞으로는 이런 접근 방식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된다. (사진=씨넷)

제품 수요를 따지지 않은 채 ’무어의 법칙’에 따라 칩을 먼저 개발했던 것이다. 이렇게 칩을 개발해 놓으면 제품 생산업체들이 그 반도체 수준에 적합한 제품을 뒤따라 개발해온 게 그 동안의 발전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반도체업계는 왜 지금 시점에서 ‘무어의 법칙’을 더 이상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일까? 당연한 얘기지만 상황 자체가 더 이상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네이처는 반도체업계가 ‘무어의 법칙’을 포기하게 된 건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나는 반도체 기판 크기가 갈수록 작아지고 있는 부분이며, 또 하나는 모바일 컴퓨팅 시대 개막이다.

■ 회로 기판 소형화-모바일 시대 대두가 주 이유

패스트컴퍼니는 이 두 가지를 크게 ‘물리적 이유’와 ‘경제적 이유’로 분석했다.

물리적 이유는 반도체 회로 크기가 갈수록 작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반도체 회로 크기는 계속 소형화된 끝에 현재는 14나노미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점점 작아지는 기판에 더 많은 회로를 넣으면서 발열량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데스크톱PC나 노트북에서는 열을 발산하는 것이 비교적 수월했지만 스마트폰으로 넘어오면서 상황이 좀 더 복잡하게 됐다.

(사진=씨넷)

‘무어의 법칙’대로 18개월마다 계속 두 배씩 늘려갈 경우엔 발열 문제를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네이처는 “어느 누구도 뜨거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길 원치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어의 법칙’을 버리게 된 데는 경제적인 이유도 중요하게 고려됐다. 실리콘 칩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더 좁은 공간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우겨넣어야 한다.

칩이 더 작아지고 트랜지스터 수가 더 늘면 믈수록 제작비용은 크게 중가하게 된다. 새로운 생산 설비를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개별 생산 공장마다 수십 억 달러에 이르는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데 이 정도를 계속 지원할 수 있는 기업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결국 이런 이유 때문에 세계 반도체업계는 그 동안 힘들게 따라해 왔던 ‘무어의 법칙’에 대해 공식 사망 선언을 하게 됐다고 네이처가 전했다.

■ 참고자료

Waldrop, M. M., More Than Moore, Nature, 2016. 2월호.

관련기사

Grothaus M., It's Official: Moore's Law is Nearing It's End. Fast Company, 2016. 2. 10

Hesseldahl, A. Global Chip Industry Readies for a Future Beyond Moore's Law, Re/Code, 2016. 2. 15.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