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새' 이신바예바와 최고 기업 애플

[김익현의 미디어읽기] 애플 실적 제대로 보기

데스크 칼럼입력 :2016/01/27 15:42    수정: 2016/01/28 09:28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엘레나 이신바예바란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있다. ‘미녀새’로 통하는 이신바예바는 장대높이뛰기 세계신기록(5m6cm) 보유자다.

그런 그가 처음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것은 2003년이었다. 당시 영국에서 열린 육상대회에서 이신바예바는 4m82c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이 뛰는 여자’로 처음 이름을 올렸다. 그 뒤 지금까지 모두 28차례나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그런데 이신바예바의 기록을 살펴보면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다. 꼭 1cm씩만 기록을 높여가고 있는 것이다. 그가 무려 28번이나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도 최고기록이 4m82cm에서 5m6cm로 24cm 밖에 늘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에선 이신바예바가 포상금 때문에 기록 조절을 한다는 비판도 제기한다. 세계 기록을 한번 세울 때마다 받는 포상금이 1억원을 웃돈다.

엘레나 이신바예바 선수가 지난 2013년 러시아 육상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뒤 국기를 들고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스1)

■ 1년 전 분 아이폰6 돌풍에 발목 잡혔나

애플이 26일(현지 시각) 2016 회계연도 1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아이폰 판매량 7천480만대로 또 다시 신기록을 수립했다. 1년전 같은 분기 기록했던 판매량(7천450만대)보다 30만대 가량 더 늘어났다.

솔직히 대단하다. 이 정도 실적을 내고도 ‘성장률 둔화’ 소리 들으면 굉장히 억울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난공불락이란 평가를 받았던 1년 전 신기록을 또 다시 경신했기 때문이다.

그건 애플의 분기 판매량 증가 추이를 보면 한 눈에 짐작할 수 있다. 아이폰 같은 제품은 연말이 끼어 있는 분기가 최대 성수기다. 그러다보니 아이폰 판매 신기록도 대체로 그 쪽 분기에 집중됐다.

지난 해 7천450만대로 신기록을 세우기 전 최고 판매 기록은 그 전해 기록한 5천100만대였다. 지난 해 신기록을 세우면서 무려 2천350만대나 더 판매한 셈이다. 증가율로 따지면 46%에 달한다.

어쩌면 ‘애플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 때 6천만대 정도를 팔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이번 분기에 또 다시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하면서 화려한 박수를 받지 않았을까?

더 문제는 다음 분기다. 졸업입학 시즌 때문에 성수기인 우리와 달리 미국에서 3월 마감되는 분기는 특수가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런데 애플은 지난 해 3월 분기에 아이폰 6천100만대를 판매했다. 아이폰6 출시 전까진 연말 분기에도 넘어서지 못했던 6천만대 고지까지 정복해버렸다. 화면을 키운 아이폰6와 6플러스 수요가 직지 않은 덕분이었다.

억지를 무릅쓰고 한번 비유해보자. ‘미녀새’ 이신바예바가 5m를 넘어선 것은 2005년 런던 슈퍼그랑프리 대회에서였다. 그전까지 꾸준히 1cm씩 기록을 경신했던 이신바예바는 5m를 돌파를 앞두고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시선이 집중되면서 상품 가치가 엄청나게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기대대로 비교적 예측 가능한 시점에 5m를 돌파하면서 자신의 몸값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애플은 그렇게 하질 못했다. 아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비즈니스 세계는 자전거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언제든 무너지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따지자면 애플의 비극은 ‘속도 조절을 하기 힘든 구조’에서 찾아야만 할 지도 모른다. 1년 전 너무 높은 기록을 세우지만 않았더라도, 성장한계 운운하는 비판은 받지 않아도 되었을 터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오해하는 것 하나. 국내 매체들만 애플 성장 한계를 거론하는 게 아니다. 미국 매체들 역시 아이폰이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전망 기사를 엄청나게 쏟아내고 있다.)

■ '아이폰 이후' 고민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면 지금 애플에게 쏟아지는 성장한계론을 ‘너무 뛰어난 실력’ 탓으로 돌려야만 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실 스마트폰은 이젠 성장 한계 상태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그건 애플 뿐만이 아니다. 삼성은 더 큰 고민거리다. 다만 삼성은 스마트폰 의존도가 애플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수익성 면에선 애플에 크게 뒤지지만, 장기 성장 면에선 또 다른 접근이 가능한 건 그 때문이다.

결국 아이폰이 잘 나갈 때 ‘대안’을 만들지 못한 게 애플의 가장 큰 패착인 셈이다. 물론 아이폰은 당분간은 더 애플을 지탱해줄 것이다. 그런데 ‘아이폰 이후’를 책임질 제품은 좀처럼 보이질 않는다. 미국 투자자들이 애플에 우려섞인 시선을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거침 없는 성장세를 구현했던 애플에 제동이 걸린 걸까? 3월 마감되는 분기 매출이 13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이 나왔다. (사진=씨넷)

이건 독자들의 비판처럼 “쓸데 없는 걱정”이 아니다. 국내 언론 뿐 아니라 미국의 대표적인 IT 매체들까지 애플의 분기 실적에 우려섞인 전망을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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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단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애플은 분명 억울한 부분이 있다. 이신바예바처럼 영리하게 기록 관리를 하지 못하고 지난 해에 ’눈치없이(?)’ 너무 뛰어난 기록을 내버린 후유증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운동 선수의 기록관리와 기업 실적을 그대로 수평 비교하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냥 비유하자면 그렇단 얘기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애플의 위기는 진짜일수도 있다. 가장 잘 나갈 때 ‘다음 성장 엔진’을 마련해야 한다는 기본이 잘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