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전과 일자리에 관한 우울한 보고서

[이균성 칼럼]다보스포럼이 일자리를 논한 이유

인터넷입력 :2016/01/19 15:42    수정: 2016/01/19 16:53

기술을 다루는 매체에 있다 보니 그 순기능과 역기능을 생각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기술은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줘야 존재의 의미가 있는데, 과연 그런가라는 의문이 들 때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기술은 급속히 발전하는데 왜 노동시간은 줄지 않는가, 하는 의문 따위가 그것이다. 의문들의 종착지는 기술의 발전과 일자리 문제다. 과연 인간 세상은 기술로 더 행복해질까.

이 화두를 새삼스럽게 다시 꺼내든 건 올해 다보스포럼의 경고 때문이다. 다보스포럼은 '제4차 산업혁명의 이해’를 올해의 주제로 잡았다. 포럼은 행사에 앞서 보고서를 내놓았는데 앞으로 5년간 선진 15개국 350개 대기업에서 약 5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로봇 등 기술 발전이 이유다. 정확히는 71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200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보고서는 15개국 350개 기업 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니 세계적으로 따지면 그 수치는 더욱 더 커질 것이다. 산업혁명 때와 비슷하게 기술과 일자리의 대규모 미스매치가 일어날 것이라는 경고인 셈이다. 당시는 블루칼라가 직격탄을 맞았다면 ‘제4차 산업혁명’에서는 관리직 및 화이트칼라 직업군이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제4차 산업혁명은 사이버 공간과 물리적 환경의 융합을 의미한다.

이 경고가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은 노동단체의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다보스포럼에서 제기됐다는 점 때문이다. 이 포럼 참석자의 면면을 보면 세계 각국의 정계 및 관계의 주요 인물을 비롯해 재계 핵심 인물들이다. 노동계도 아닌 이들이 왜 기술과 일자리 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하기로 한 것일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 문제가 세계 경제와 기업 환경에 결정적이고도 중요한 요소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과 일자리 미스매치를 방치하면 노동자는 물론이고 기업에도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 먼저 대량 실직으로 인한 여파를 따져보자. 소비 위축이 불가피해진다. 당연히 생산물은 남아돈다. 생산과 소비의 균형이 깨지는 것이다. 경제공황(經濟恐慌)이 바로 그것이다. 세계적인 연대와 합의없이 무차별적으로 진행되는 기술의 발전은 결과적으로 이런 자본주의 내부 모순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구조적인 불평등의 심화다. 애플과 삼성이 세계 휴대폰 영업이익의 100% 이상을 가져가고 나머지 회사들은 생존선에서 허덕이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포럼이 지적했듯이 7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동안 고작 200만개의 새 일자리만 창출돼 실직자가 양산되면 개인 사이의 불평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세계 경제는 물론이고 인류 사회가 엄청난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세계가 연대해 현명한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과거의 축적된 노동’이라는 속성을 갖는 자본과 기술이 ‘인간의 현재의 노동’을 소외시키는 현상이 광범위하게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 ‘과거의 노동’과 ‘현재의 노동’ 사이의 갈등이 불가피해진다. 반(反)자본 반(反)기술 반(反)기업이라는 역풍을 피할 수 없다. 다보스포럼이 기술로 인한 노동의 소외를 논의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잠깐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징후는 이미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온라인 트레이딩은 증권회사 창구직원의 일을 빼앗았고 인터넷전문은행은 여러 행원의 자리를 앗아갈 것이다. 심지어 기사도 로봇이 쓰는 세상이다. 자율주행차는 수많은 운전직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기술의 인간 노동 소외 사례는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다. 이는 기우가 아니라 당면 사회문제가 된 것이다.

다보스포럼의 논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 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문제를 기업에만 맡겨놓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기업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현재 노동을 소외시켜야만 생산성이 높아지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급변하는 경제 현실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를 기반으로 정부, 기업, 노동계가 대타협을 통해 풀 수밖에 없다. 핵심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와 재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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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의 기술과 노동 정책도 크게 변해야 한다. 노동유연성만 강조할 때가 아니다. 기술의 발전과 일자리의 변화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를 통해 종합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좁혀 보면 창조경제와 노동 4법이 이 논의 틀 안에 있는 정책이다. 하지만 전혀 유기적이지 않다. 둘 다 여론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기술과 노동의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가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현 대통령 임기내에 간단히 해결할 사안이 아니다. 현 대통령은 욕심을 버리고 장기 초석을 놓는데 신경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