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놈, 구경하는 놈, 득 보는놈

지상파 對 케이블TV 재송신료 싸움 해석

방송/통신입력 :2016/01/19 08:54    수정: 2016/12/08 15:35

지난 금요일 케이블TV에서 지상파 실시간 방송 광고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 뻔했다. 지상파 3사가 케이블TV에 1월1일부터 VOD 공급을 중단하자 케이블TV 측이 VOD공급을 재개하지 않으면 15일부터 광고를 끊어버리겠다고 맞선 것이다. 다행히 광고 중단 예고 시간을 6시간 앞두고 양측은 극적으로 합의해 모든 서비스를 정상화시키고 1월말일까지 다시 협상에 임하기로 했다.

사태는 일단 진정국면으로 들어섰지만 이번 싸움을 지켜보는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다. 시청자 불편을 저당잡아 양측이 극한의 대립을 벌인데다, 예정된 협상 연장 시한인 1월말이 된다고 뾰족한 해법이 나올 것 같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 시청자의 이익을 보장하고 방송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 중심을 잡아야할 방송통신위원회가 사태를 방관하고 있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한편 이번 싸움이 장기화되면 케이블TV에서 이탈한 가입자를 흡수하게될 IPTV업계만 어부지리격 수혜를 볼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싸우는놈’...지상파와 케이블

연초부터 지상파 3사와 케이블TV 진영간 한치 양보 없는 싸움이 점입가경으로 흘렀다. 지상파가 케이블TV에 VOD 공급을 중단하더니 케이블TV는 VOD 공급을 주도한 MBC부터 실시간 방송 광고에 검은 화면을 덧씌워 내보내겠다고 맞불을 놨다. 케이블TV를 통해 디지털 방송을 보는 약 1200만 시청자들은 지상파 VOD도 안 나오는데다 실시간 방송 시청 중 십여분씩 검은 화면을 보게 되는 등 반쪽짜리 서비스를 받게 생긴 상황까지 오게 된 것.

그럼에도 지상파와 케이블TV 양측은 한치 양보 없는 정면 충돌 양상을 보였다. 케이블TV 측은 법무법인을 통해 광고 방송 중단이 방송법 위반이 아니라는 법리적 해석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방통위가 방송법을 근거로 행정적 제재를 취한다면 법적공방까지 불사할 생각이 있다며 배수의진을 쳤다. 이에 지상파 측은 방송협회를 통한 보도자료를 내고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밝혀 정면 충돌을 예고했다.

케이블TV가 광고 중단을 예고한 15일에는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각 권역별 케이블TV사업자(SO)들은 예정대로 저녁 6시 광고중단 사태가 벌어질 것을 대비해 시스템을 점검하고 고객센터 직원들에 대한 교육까지 마친 상황.

다행히 이날 정오 께 양측이 극적으로 합의에 이르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양측이 1월말까지 협상 시한을 연장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즉시 지상파 3사는 케이블TV에 VOD를 다시 공급하고 케이블TV 측은 예고했던 광고 중단을 철회했다. 그러나 양측이 아직 구체적인 조율에 이른 것이 아니어서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1월말 이후 또 같은 싸움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남아있는 상태다.

이번 사태는 지난해 말 양측이 진행해온 VOD 공급 재계약 협상이 결렬되면서 시작됐다. 지난해 5월 시작된 협상에서, 지상파 측은 2016년부터 무료 VOD 대가를 기존 정액제 방식에서 가입자당 방식으로 변경할 것과 2015년 무료VOD 대가는 전년대비 15% 인상할 것을 요구했다. 또 지상파에 재송신료(지상파 실시간 방송을 SO사가 가입자들에게 송출할 때 내는 콘텐츠 저작권료)를 한번도 지불하지 않은 개별SO에는 VOD를 공급하지 말 것도 요구했다. 지상파 측에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VOD 공급을 끊겠다고 통보했고, 다급해진 케이블 진영이 12월 말 무료 VOD 대가 산정 방식 변경과 15% 인상 안을 받아들이며 협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재송신료를 내지 않은 개별SO에게 VOD 공급을 중단하라는 요구는 끝내 수용하지 않으면서,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싸움의 핵심은 재송신료 문제다. 양측이 생각하는 적정한 재송신료가 다르기 때문에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 것. 현재 유료방송 사업자들이 지상파 방송사에 매달 지불하고 있는 가입자당 재송신료(CPS)는 월 280원이다. 이 금액이 너무 많다는게 케이블 측 생각이다. 하지만 지상파는 CPS를 430원까지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은 CPS를 안 내고 있는 개별SO들도 CPS를 계속 안 내겠다는 것은 아니라 지상파에서 요구하는 것이 너무 많아 조정하자는 입장이다.

결국 양측의 공방은 “콘텐츠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달라"는 지상파의 주장과 "우리가 송출해줘서 지상파가 얻는 혜택도 크니, 재전송료를 현실화하자"는 케이블 측 주장으로 요약된다.

구경하는놈…’방통위'

케이블TV와 지상파 측이 벼량끝 싸움을 시작한지 벌써 반년이 넘었다. 그 사이 애꿎은 시청자들만 지상파 신규 VOD를 시청하지 못하는 등 피해가 발생했지만 방통위는 개입을 꺼리는 모습을 보여왔다.

앞서 지난 6일 CJ헬로비전, 티브로드 등 대형 케이블TV사업자(MSO) 대표들과 개별SO연합회장 등이 최성준 방통위원장을 찾아가 분쟁조정을 요청했지만, 당시 방통위는 VOD를 방송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분쟁조정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만 보였다. 케이블TV 측이 방송법 안에서 VOD를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이유를 다시 조목조목 따져 11일 다시 분쟁조정을 신청하자, 그제야 방통위는 분쟁조정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미 각 MSO가 지상파에 VOD를 공급하지 않을 경우 광고를 중단하겠다고 예고하는 공문을 발송한 이후다. 방통위의 늦장 개입에 그동안 방관하다 광고 중단으로 지상파가 큰 피해를 보게 생겼으니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비난이 따라 붙었다.

15일 정오 이뤄진 양측의 극적합의는 방통위 중재로 지상파와 케이블TV 관계자들이 만나 이뤄진 것이지만 방통위가 중재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는 의문다. 양측이 입장을 공동합의문을 발표하기로 해놓고 MBC가 먼저 지상파 측에 유리한 해석을 덧붙여 협상 결과를 발표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 MBC는 보도자료를 통해 "케이블 업계가 케이블TV VOD 등을 통한 단체협상 대신, SO별로 개별적-자율적으로 지상파 방송사와 협상하기로 했다. 그동안 지상파 실시간 방송을 불법 재송신 해 온 개별 SO경우, 향후 적법한 계약을 맺고 재송신료를 지상파에 지급하기로 확약했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양측이 협의하지 않은 사항이었다. 이후 MBC는 해당 문구를 삭제해 다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한 업계관계자는 “방통위가 제대로 중재를 했다면 MBC가 이렇게 합의결과를 왜곡한 발표를 돌발적으로 할 수 있었겠냐”며 이번 합의에서 방통위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했다.

득 보는 놈….’IPTV 업계'

IPTV 업계는 지난해 11월 전까지만 해도 케이블TV 진영과 힘을 합해 지상파 3사와 대립해 왔다. 하지만 KT를 필두로 11월 중순부터 IPTV 3사는 지상파가 요구해온 무료 VOD에 대한 가입자당비용정산(CPS) 방식 등을 받아들이면서 VOD 재계약을 끝마친 상태다.

처음부터 케이블TV와 IPTV는 오월동주(吳越同舟) 관계였다. 유료방송시장에서 가입자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지상파와 협상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공동전선을 구축한 것뿐이었다.

IPTV의 배신(?)으로 케이블TV 진영은 더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게 됐지만, IPTV 쪽에선 빨리 지상파에 백기를 들고 나온 것이 오히려 실익을 챙기는데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많다. 일단 지상파의 요구를 빠르게 다 받아주면서 IPTV는 가입자들이게 지상파 콘텐츠를 차질 없이 공급할 수 있게 됐다. 반면 케이블TV 측은 VOD 공급이 재개되긴했지만 1월말 협상 결과에 따라 다시 중단될 가능성도 있다. 지상파 인기 신규 VOD가 나오지 않을 경우 케이블TV 가입자들이 IPTV로 이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VOD 공급이 중단됐을 당시 한 케이블업체 관계자는 "경쟁 관계에 있는 IPTV와 비교해 케이블TV에선 지상파 VOD가 나오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될까 우려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김정수 사무총장은 "지상파가 케이블VOD를 중단한 건 이 문제가 장기화될 경우, 케이블TV의 가입자가 이탈할 우려가 있고 우리가 견디지 못해 지상파의 요구를 다 수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케이블TV 측이 지상파와 싸워 이번 사태의 핵심인 재송신료 협상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어낸다면 IPTV도 그 수혜를 받을 수 있다. 케이블TV에만 재송신료를 더 적게 받을 수 없기 때문. 한 IPTV관계자는 “아직 IPTV 업체들도 지상파와 재송신료 협상을 진행중”이라며 “지상파 측이 요구하는 재송신료가 너무 많다고 보고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