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정몽준, 그리고 존재의 가벼움

[이균성 칼럼] 지도자와 리더십의 문제

인터넷입력 :2015/12/15 09:20    수정: 2015/12/17 13:27

거산(巨山) 김영삼 전(前) 대통령은 영면에 들기 전 ‘화해와 통합’이라는 유훈을 남겼다. 그러나 이 말이 독재와 화해하고 통합하라는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보다 각계각층이 더 잘 소통하라는 뜻으로 읽는 게 옳겠다. 모든 문제를 합리적으로 토론해 최선의 답을 찾아가는 진짜 민주주의 문화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자신만 옳다고 믿는 독불장군을 경계하자는 의미가 크다.

거산은 생전에 두 가지 과오에 대해 스스로 반성했음직하다. 1987년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단일화에 실패함으로써 국민의 열망이었던 군부독재 종식을 물 건너가게 한 일이 그 첫 번째다. 또 하나는 두 군부 독재의 잔당과 손을 잡은 일이다. 그 결과 문민정부를 수립하고 강도 높은 개혁을 할 수 있었지만 지역감정을 격화시키고 독재 세력을 안존시킨 일이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안철수 의원.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민주연합 탈당은 이런 거산의 유훈에 비춰볼 때 안타깝기 그지없다. 거산이 후회했을 일만 골라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안 의원은 지금 강력한 야당을 만들어 박근혜 정부의 독선을 제어해야 할 때이지 야당의 힘을 분산시킬 상황이 아니다. 당시 어떤 명분을 댔건 거산이나 후광(後廣.DJ)이 훗날 후회한 건 분열이었다. 화난 호남 민심에 엎여가려는 기회주의는 말할 것도 없다.

안 의원의 탈당은 2002년 정몽준 의원의 몽니를 보는 듯하다.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갑자기 후보 단일화를 번복했던 정 의원의 철없던 행동을. 정 의원은 그 한 번의 결정으로 정치 생명이 사실상 끝났다. 유력 대권 주자가 하루아침에 철부지로 바뀐 것이다. 개인이 신의를 저버려도 문제인데 하물며 한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대권 주자 아닌가. 안 의원의 행동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안 의원이 내세운 명분은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으로는 정권 교체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얼마나 정치를 못 하는지는 안 의원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지지자들은 물론이고 새누리당까지 잘 안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박 대통령이 더욱 더 불통으로 가는 이유는 새정치민주연합이 강력하게 견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그것이 탈당 이유일 순 없다.

안 의원의 명분이 얼마나 허구인 지는 단 두 개의 질문만으로도 확실해진다. 안 의원은 과연 탈당 후 건설한 새 세력으로 정권교체가 가능하다고 믿는가. 안 의원이 규합하려는 새 세력은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 사람들과 진정으로 완전히 다른 부류인가. 안 의원은 그렇다고 말하겠지만 국민 대부분은 특히 야권 지지자들은 그렇게 보지 않을 공산이 크다. 불가능한 일을 근거로 산통만 깬 것일 수 있다.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 주류가 끝내 안 의원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소통 능력에 문제가 있다. 문 대표도 거산이 말한 화해와 통합이라는 대의를 더 깊게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안 의원의 탈당 명분일 수는 없다. 생각해보라. 같은 당 내에서마저 조화할 수 없는 안 의원이 설사 집권을 한다 해도 사사건건 물고 늘어질 야당과 원만히 협상을 할 수 있겠는가.

안 의원은 이번 결정으로 2002년 대선에서 정 의원이 보여줬던 것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드러내고 말았다. IT 전문지에서 굳이 정치를 언급한 건 이를 빗대 지도자와 리더십의 문제를 잠깐 고민해보자는 취지다. 거산의 유훈처럼 ‘화해와 통합’을 구현하지 못하면 구성원을 이끄는 건 불가능하다. 어떤 사회도 갈등은 불가피하다. 화해와 통합의 가치가 지도자에게 필요한 이유도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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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생각해본다. 화해와 통합에 적합한 지도자는 어떤 사람일까. 인간 사회와 세상을 사랑하는 깊은 진정성, 나와 다른 것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 열린 마음,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선명한 비전, 끝없이 참아서 품을 수 있는 인내심, 때론 자신을 버려야 하는 희생정신, 그러면서도 비전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황소의 마음……. 아아, 그러니 지도자와 리더를 자임하는 건 얼마나 두렵고 힘든 일인가.

그 엄중함을 두고 어찌 한낱 깃털같이 가벼울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