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왜 그렇게 엄살을 부릴까

[이균성 칼럼]車 사업 진출에 대한 단상

홈&모바일입력 :2015/12/10 14:16    수정: 2015/12/12 10:13

한 분기에 7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회사가 끊임없이 위기의식을 강조하는 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삼성, 특히 삼성전자를 취재하며 들었던 가장 큰 고민이다. 솔직히 말하면 ‘엄살 좀 작작 부리지’ 하는 생각이 컸다. 더 투자하고 더 기부하라는 정부와 시민단체의 압박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 아닐까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형편이 나으면서도 앓는 소리만 하다 결국 술값 낼 때 빠지는 사람처럼.

이 의심을 지운 건 올해 초다. 한 신문에 실린 미래학자 최윤식 한국뉴욕주립대학교 기술경영학과 연구교수 대담 기사를 읽고서다. 최 교수는 삼성 스마트폰 사업이 위기라고 말했다. 스마트폰이 주력 사업이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중국의 추격을 뿌리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제안한 대안은 더 충격적이다. 스마트폰 사업을 팔라는 것이다. 그것도 중국에. 5년 후면 그럴 기회마저 없다고 했다.

최 교수가 사심을 갖고 발언했을 리 만무하다. 미래학자로서의 지식과 학자적 양심에 따른 진정어린 충고였을 것이다. 곰곰 돌이켜보니 나 또한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엄살이라고 치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도 컸다는 이야기다. 삼성은 자신이 일본 소니를 잡은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결국엔 중국의 어느 기업한테 당할 것이다. 그렇게 기사를 써본 적은 없지만 그런 생각이 컸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지디넷코리아)

삼성 수뇌부도 그걸 잘 알 거라고 생각하게 된 건 노키아의 몰락을 지켜보면서다. 삼성이 전력투구하고서도 잡지 못한 거의 유일한 업체가 노키아다. 그런 노키아가 자신이 아닌 다른 신생 업체(애플)에 의해 한 순간에 나가떨어지는 것을 삼성은 지켜봐야 했다. 그 마음을 다 모르긴 하되 그 때 느끼는 감정은 위기가 아니라 공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당이 곧 지옥이구나 하는 느낌으로서.

최 교수의 처방은 신선했다. 스마트폰을 판 돈으로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를 사라고 권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밖에 바이오, 생명, 나노 신소재 등 특허 기반 산업에 주력하라고 덧붙였다. 당장의 이익을 줄이더라도 중국의 추격권에서 벗어날 사업으로 재편하지 않으면 예고된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는 뜻이었겠다. 그는 또 삼성전자의 위기는 삼성그룹의 위기이고 이는 국가의 위기로 발전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의 생각이 조금 과하다고 말할 수 있을 지라도 방향성에 대해서만큼은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건희 회장의 부재 속에 앞으로 그룹을 이끌어 가야 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고위 경영진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본다. 세계 경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갈 것을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방위산업과 화학 분야의 계열을 정리하는 한편 주력 계열까지 구조조정을 한 것도 그러한 뜻이겠다.

9일 발표된 2016년 조직개편에서 자동차 전장사업팀을 권오현 부회장의 관장 아래 신설한 것은 그래서 특별하게 눈길을 끈다. 최 교수 권고대로 삼성이 다시 차 사업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현대차도 5년 뒤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세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3D 프린터와 전기차, 그리고 무인차가 그것이다. 이들 모두 현대차가 강하다고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문제는 현대차에 대한 진단 또한 과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방향성에 대해서는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삼성이 차 전장 조직을 만든 만큼 삼성과 현대차는 협력과 경쟁의 애매한 줄다리기를 시작하게 됐다. 그러나 현대차로서는 삼성이 아니라도 그런 관계를 피할 수 없다. 애플과 구글도 그런 상대다. 관건은 늦어도 5년 뒤에는 크게 판이 바뀔 세상을 어떻게 무슨 자세로 준비하느냐는 것이다.

모든 게 그렇겠지만 기업에도 격(格)이 있다. 규모나 위치에 따라 중점을 둬야 될 일이 다르다. 작은 것을 놓고 아웅다웅하며 살 수 밖에 없는 기업이 있고 미래를 내다보며 큰 싸움을 해야 하는 기업이 있다는 것이다. 삼성은 판을 흔드는 큰 싸움을 하고 거기서 이겨야 지속가능한 기업이다. 작은 효율을 따질 계제가 아니다.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중국에 줄 건 주고 애플 구글 테슬라를 잡아야 한다.

나는 앞으로 삼성을 책임지고 이끌어가야 할 이재용 부회장이 그런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고 판단한다. 그건 SW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실패했기 때문에 배웠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세 가지 때문이다.

첫째, 미국 실리콘밸리 혁신을 직접 수입하는 통로인 삼성글로벌이노베이션센터(GIC)에 힘을 실어줬다는 점이다. 삼성페이가 그 작품이다. 둘째는 홍원표 사장이 SW 사업을 책임지게 했던 방식을 버리고 그 조직은 대폭 축소하는 대신 무선 상품 개발실을 두 개로 쪼개고 SW 분야 이인종 부사장에 1실장을 맡긴 점이다. 셋째는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실패한 차 사업에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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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현대차는 세트 제품 제작 효율성만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다.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 고민해야 할 3대 핵심 키워드는 플랫폼, SW, 소재다. 신속하게 B2C(기업과 소비자) 비중을 줄이고 B2B(기업과 기업)에 힘을 실어야 한다. 앞 문단에서 쓴 세 가지의 변화는 이 방향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 속에 나온 결과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관건은 그 길로 가는 강인한 리더십이다. 승부는 이미 걸었다.

그 승부 결과에 따라 수백만 노동자의 삶과 나라 경제가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