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애플 '배상금 지급 합의' 감상법

생각보다 복잡…"타협 신호" 해석은 성급

데스크 칼럼입력 :2015/12/07 11:24    수정: 2015/12/07 13:19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얼마 전 지하철에서 여성의 몸을 몰래 촬영한 한 남성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 유예 2년이 선고된 적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그 남성 사건이 관심을 끈 건 다른 부분 때문이었습니다.

이 남성이 찍은 사진 58장 중 여성 전신 사진 16장은 ‘음란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는 언론 보도 때문이었습니다. 그 보도를 접한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왜 여성의 특정 부위를 찍은 사진은 유죄인데, 전신을 찍은 건 무죄란 말인가?”란 생각이 곧바로 들었습니다.

그 생각은 곧바로 “아무 여성이나 전신 사진을 마구 찍어도 괜찮단 말인가?”란 의문으로 이어지면서 “우리나라 판사들은 성 범죄 관련 판결은 너무 관대해”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삼성과 애플 간 특허 소송은 법적인 관점과 일반인의 관점이 얼마나 다른 지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사진은 1심 재판 스케지.

■ 몰카 사건을 통해 본 법 적용 문제

물론 우리나라가 성 범죄에 대해선 관대한 측면이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법을 잘 모르는 일반 국민이 보기엔 그렇단 겁니다. 그런데 '지하철 몰카 남성’ 사건 관련 판결은 제 생각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 있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쟁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법을 잘 모르는 언론의 일도양단식 보도였구요, 또 하나는 법의 기본 원칙과 관련된 부분이었습니다.

우선 언론 보도부터 살펴볼까요? 당시 그 사건 재판부는 ‘여성 전신 사진’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한 게 아니었습니다. ‘일부 무죄’ 판결이었습니다. 일부 무죄란 무슨 의미일까요? 그렇습니다. 일부에 대해선 죄가 있다는 판결이었습니다.

지하철 몰카 사건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슬로우뉴스 기사. (사진=슬로우뉴스)

그렇다면 왜 전신 사진에 대해선 ’일부 무죄’를 선고했을까요? 이 부분은 슬로우뉴스 보도를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여성 전신 몰카는 무죄? 언론보도가 놓친 진짜 문제들 기사를 참고하세요.)

"법원은 피고인 이 씨가 찍은 58장의 사진 중 46장은 비교적 수월하게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는 유죄 증거로 보았다. 그러나 나머지는 좀 모호했다. 누가 그 사진을 주관적인 맥락 없이 그냥 딱 보여주면서 그냥 지하철 풍경을 찍은 거라고 하면 ‘아아 그렇습니까’라고 할 수도 있는 사진이었던 것이다."

입장을 바꿔놓고 한번 생각해보세요. 지하철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실수로 어떤 여성의 뒷 모습이 찍혔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것도 공교롭게도 엉덩이 부분이 클로즈업된 사진이 찍혔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사진에 대해 ‘음란 사진을 찍었다’고 판결해버린다면 좀 억울하지 않을까요?

‘지하철 몰카 남성’에 대해 내려진 ‘일부 무죄’ 판결이 바로 그런 상황이란 겁니다. 음란한 의도가 분명히 있는 사진이긴 한데, 사진 자체만 놓고보면 애매하다는 거지요. 이런 판결이 나오는 건 법이 피해자 보호 쪽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 역시 슬로우뉴스 기사를 통해 알게 된 사실입니다.)

■ '5억4천800만 달러 지급' 어떻게 봐야 할까

서두가 좀 길었네요. 지하철 몰카 관련 판결 얘기를 꺼낸 건, 또 다시 화제가 된 삼성과 애플 간 특허 소송 얘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주말 삼성이 애플에 배상금 5억4천80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6천382억원에 달하는 거금입니다. 두 회사 소송이 시작된 지 4년 8개월 여 만에 처음으로 거액 배상금이 오가게 된 겁니다.

이 사실을 보도하는 대다수 국내 언론의 논조는 “일단 지급하기로 했다”는 쪽입니다. 물론 틀린 얘기 아닙니다. 삼성은 애플과 공동 제출한 합의문건에서도 “나중에 돌려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당연히 궁금해집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곰곰 지켜보면 애플 특허가 무효가 될 가능성이 굉장히 많기 때문입니다.

삼성이 거액 배상금을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핀치투줌 특허권(특허번호 915)와 둥근 모서리 관련 특허권(특허번호 D677)은 이미 미국 특허청에서 한차례씩 무효 판결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삼성 입장에선 거액 배상금을 물라는 판결이 억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애플 특허가 무효 판결을 받은 것은 1심 판결이 끝난 뒤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또 궁금증이 제기됩니다. 그렇다면 왜 지난 5월에 끝난 2심 재판부는 그 부분을 고려하지 않았냐는 부분입니다.

■ 뻔히 보이는 사건, 하지만 판결할 땐…

이 대목에서 앞에서 얘기한 지하철 몰카 사건을 한번 떠올려봅시다. 누가 봐도 지하철 몰카를 찍은 남성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은 ‘음란 의도’가 다분해보입니다. 설사 전신 사진이라도 그렇다는 겁니다.

하지만 판결을 하는 법관은 철저하게 법에 의거해서 재판해야 합니다. 심정적으로 그런 생각이 든다고 해서 유죄 판결을 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혹시 있을 지 모를 선의의 피해자를 방지해야 한다는 법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A가 친구 B의 집에 놀러갔습니다. 그런데 A는 B의 집에서 멋진 반지를 보고 딴 마음을 품게 됐습니다. 그래서 A는 B 몰래 반지를 훔쳤습니다.

삼성과 애플 특허 소송 핵심 쟁점인 핀치 투 줌 특허 개념도. 하지만 이 특허는 법적인 지위가 굉장히 흔들리고 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B가 A를 제소했습니다. 이 때 B가 A를 주거침입죄로 제소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때 재판관은 어떻게 판결해야 할까요? 물론 무죄입니다. A는 절도 범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주거 침입을 한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엔 판사가 뻔히 알면서도 유죄를 선고할 순 없습니다.

삼성과 애플 간 재판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습니다. 항소심이 벌어지는 상황에선 누구나 봐도 애플 특허가 무효가 될 개연성은 굉장히 많았습니다. 일반인의 시각으로 보면 당연히 그 부분이 반영돼야 합니다.

하지만 미국 특허청 판결을 최종적인 것은 아닙니다. 애플은 항소 등 구제 절차를 계속할 기회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개연성만 갖고 판결에 반영할 경우엔 법적 안정성에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삼성은 왜 배상금을 바로 지급했을까

여기서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갑니다. 그렇다면 삼성은 왜 배상금을 즉시 지급하기로 했을까요?

이 부분에선 우리와는 조금 다른 미국 사법 제도를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미국은 배심원제를 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배심원 재판은 1심에만 적용됩니다. 이 때는 사실 관계를 갖고 다투게 됩니다.

하지만 항소심부터는 추가적인 증거와 사실 관계로 다투진 않습니다. 1심 법원이 법률을 제대로 적용했는지만 갖고 공방을 벌입니다. 그래서 항소심은 ‘법률심’이라고 합니다.

미국 대법원

우리와 좀 다른 건 최종심인 대법원 상고심입니다. 미국에선 대법원이 모든 상고를 다 받아주진 않습니다. 철저한 상고 허가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상고 허가를 받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최근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 대법원이 1년에 상고 신청을 받아들이는 건수는 75건 내외라고 합니다. 반면 한해에 접수되는 상고신청은 1만 건에 이릅니다. 상고심 법정에 설 확률이 1%에도 못미치는 수준인 셈입니다.

굉장히 억울할 게 뻔한 삼성이 애플에 5억4천800만 달러란 거액을 지급하기로 한 건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한번 살펴볼까요? 그러기 위해선 현재 삼성과 애플 간 소송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항소심까지 끝난 삼성과 애플 소송은 크게 세 가지 쟁점으로 나눠졌습니다.

1. 디자인 특허(둥근 모서리, 핀치 투 줌 등) 침해: 애플 승소

2. 트레이드 드레스 침해: 삼성 승소

3. 배상금 즉시 지급: 애플 승소

이 중 디자인 특허 부분은 항소심까지 삼성이 패소했습니다. 5억4천800만 달러 벌금은 바로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삼성은 항소심에서 애플 트레이드 드레스 침해 부분에선 승리를 했습니다.

일단 삼성은 디자인 특허 침해 부분에 대해선 대법원 상고 의사를 밝힌 상태입니다. 반면 항소심에서 트레이드 드레스 부분에서 패소한 애플은 상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1심 재판이 열린 캘리포니아 지역법원으로 파기 환송됐습니다.

그런데 애플이 또 다른 이슈를 제기합니다. 항소심 결과로 확정된 배상금 5억4천800만 달러를 바로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한 겁니다.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의 루시 고 판사는 애플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삼성은 곧바로 그 사안에 대해 항소를 합니다. 그런데 항소법원도 역시 “즉시 지급하라”는 판결을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삼성은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항소법원 결정에 따르거나, 아니면 대법원에 상고 신청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법원이 모든 사건을 다 받아주는게 아닙니다.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한 해 상고 허가 비율이 1%도 채 안 됩니다. 주로 새로운 판례를 확립할 필요가 있거나, 하급법원 판결에 심대한 흠결이 있을 경우에 한해 받아들입니다. 다시 말해 억울하다고 전부 대법원에 갈 수 있는 건 아니란 얘기입니다.

가장 최근 사례론 오라클과 소송에서 패소한 구글이 대법원 상고 허가 신청했다가 기각당한 사례가 있습니다.

■ 두 갈래로 갈라진 삼성-애플 특허 소송

여러분이 삼성 소송 책임자라고 생각하고 한번 따져보세요. “지금 당장 배상금을 내라는 데, 이거 재판 끝날 때까지 좀 미뤄주세요?”라고 상고 신청을 할 경우 대법원이 받아들일까요? 삼성이 좀 억울해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바쁜 대법관들이 달려들 정도로 중대한 사안은 아니란 판단을 하지 않을까요?

삼성이 이번에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한 건 이런 부분을 감안한 결정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제가 추정이라고 표현한 건, 삼성 쪽 관계자를 취재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삼성은 왜 그토록 배상금 지급을 미루려고 했을까요?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쟁점이 된 애플 특허권이 무효가 될 가능성이 굉장히 많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앞에서 말씀드렸으니까, 더 이상 재론하지 않겠습니다.

만약 애플 특허권이 무효로 최종 확정되면 어떻게 될까요? 애플은 자동적으로 돈을 돌려줘야 할까요? 일반인의 시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그래야 할 겁니다.

그런데 법이란 게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이건 다시 다퉈야 할 부분입니다. 반환 청구 소송을 하든지 해야 한다는 거지요.

삼성전자 '갤럭시노트5'(왼쪽)와 애플 '아이폰6S 플러스'

삼성이 합의서에서 “특허 무효가 될 경우 돌려받을 권리가 있다”고 자꾸 주장하는 건 이런 부분을 분명하게 하자는 겁니다. 법은 어디까지나 일반론만 규정해 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온갖 경우의 수를 다 따져서 법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삼성 입장에선 두 번째가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백보 양보해서 애플 디자인 특허를 침해했고, 또 그 디자인 특허가 유효하다고 가정하더라도 자신들에게 부과된 배상금은 과도한 수준이란 게 삼성의 입장입니다.

전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미국 대법원이 삼성의 상고 신청을 받아줄 가능성이 많다고 보는 것도 바로 이 부분 때문입니다.

항소법원이 삼성의 디자인 특허 침해 배상금을 그대로 인정할 때 적용한 법 규정이 미국 특허법 289조입니다. 그 법규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특허 존속 기간 내에 권리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중간 생략) 그런 디자인 혹은 유사 디자인으로 제조된 물건을 판매한 자는 전체 이윤 상당액을 권리자에게 배상할 책임이 있다." (미국 특허법 289조)

하지만 삼성 뿐 아니라 구글, 페이스북 등 많은 IT 기업들은 이 부분이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스마트TV처럼 수 천 개 부품이 들어가는 제품이 연루된 소송에서 한 두 개 특허 침해를 이유로 전체 이익을 환수하는 건 과하다는 겁니다.

실제로 구글 등은 “항소법원 판결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황당한 결과로 이어질 뿐 아니라 복잡한 기술과 부품에 매년 수 십 억달러를 투자하는 기업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삼성과 애플이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에 제출한 공동 합의문.

잘 이해가 안 되시나요? 비유하자면 이런 주장입니다. 여러분이 자동차를 만든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런데 자동차 운전대 관련 특허권을 침해했습니다. 배상금을 물어야지요. 그런데 그 배상금이 자동차 전체 가격을 기준으로 산정됐다면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현재 삼성이 주장하는 것이 그런 논리입니다. 그리고 그 논리는 일정 부분 타당한 측면이 있다는 겁니다. 물론 애플 생각은 다릅니다. 결국 소비자들이 어떤 스마트폰을 구입할 지 결정할 때는 핀치투줌이나 둥근모서리 특허 같은 것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결국 이 분쟁은 대법원이 명확하게 해결해줄 필요가 있는 사안이란 게 제 생각입니다. “앞으로 이런 분쟁이 있을 땐 이 기준에 따라 판결하라”는 명확한 판례가 필요한 상황이란 겁니다.

■ 결국은 법적인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글이 좀 길어졌습니다. 크게 두 가지 주장을 하기 위해 이렇게 길게 돌아왔습니다.

삼성과 애플 소송 같은 법적 다툼은 칼로 무 자르듯 명확하게 규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생각해보세요. 하다 못해 이웃간에 다툼이 있어도 한쪽이 100% 잘못한 경우는 드물 겁니다.

재판은 그런 분쟁이 있을 때 양 당사자가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할 지를 정해주는 과정입니다. 애매한 민사소송에서 100% 한쪽 과실 판결이 잘 나오지 않는 건 그 때문입니다.

이번 특허 소송도 마찬가지입니다. 베꼈다고? 그렇다면 잘못했네. 당연히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야지, 라고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란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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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특허가 제대로 된 건지, 특허 침해를 한 건 맞는 지, 혹시 특허 침해를 했다면 어느 정도 배상을 해주는 게 적당한지, 를 놓고 끝없는 분쟁이 계속되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이런 결정이 나올 때마다 “누가 이겼다”고 용갑하게 규정해버리는 건 상당히 위험합니다. 속 시원한 해석일 지는 모르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한 건 아니란 얘기입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