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테러 '암호화 원죄론' 급속 확산

정보기관들 "테러대응 방해"…감시논란 커질듯

컴퓨팅입력 :2015/11/18 18:09    수정: 2015/11/19 08:11

황치규 기자

테러리스트로부터 국가 안보를 지키는 것과 사이버 공간에서 시민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것은 충돌하는 사안인가?

지난주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에 각국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 가운데 '안보냐 프라이버시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될 듯한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을 포함한 각국 정부와 정보 기관들은 파리 테러 이후 안보를 위해 프라이버시는 양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쏟아내면서 에드워드 스노든 폭로 이후 프라이버시 강화에 쏠린 시계추를 되돌려 놓으려는 모습이다.

정보기관들이 특히 문제 삼고 나선 건 애플이나 구글 등이 도입한 메시지 암호화 정책. 암호화 때문에 테러 대응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는 해외 정보및 수사기관 관계자들이 적지 않다. 필요하면 암호화된 메시지를 풀 수 있는 백도어를 만들어놔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관련 법안을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엿보인다.

■ 테러리스트들, 암호화된 메시징 시스템 사용

일부 외신들에 따르면 파리 테러를 저지른 테러리스트들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암호화된 메시징 시스템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애플과 구글 등 주요 IT회사들은 2013년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펼친 무차별 감청 행위를 고발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이후 사용자 프라이버시를 강화해왔다.

애플은 2014년 iOS8 운영체제를 선보이면서 기기간 암호화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했다. 사용자가 애플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로 아이메시지나 페이스타임을 사용할 때 이들 메시지는 암호화된다. 비밀코드 없이는 메시지 내용에 접근할 수 없다. 심지어 애플이라도 해도 메시지를 해독할 수 없다.

애플의 행보는 미국 연방수사국(FBI) 등 수사기관 관계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FBI 디렉터인 제임스 코메이는 "애플의 결정은 테러리즘을 포함한 대형 범죄와 싸우는 법 집행에 타격을 줄 것이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미국 IT매체 리코드에 따르면 최근 애플은 마약 거래 현장에서 확보한 아이폰5에 담긴 데이터를 빼내달라고 요구한 정부와도 대립했다. iOS9을 쓰는 아이폰에서는 애플이라고 해도 데이터를 빼낼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내걸었다.

암호화를 강화하기는 구글도 마찬가지. 구글은 최근 선보인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 암호화를 기본 기능으로 넣었고 이메일 서비스인 지메일에 대해서도 암호화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지메일이 아닌 계정에서 지메일로 전달되는 메일 중, 암호화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경고까지 하겠다고 나섰다. 페이스북이 소유한 세계 최대 모바일 메신저앱 왓츠앱도 지난해 종단간 암화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왓츠앱 메시지는 보낸 사람과 받은 사람만 접근이 가능하다.

리코드 보도를 보면 구글과 애플은 파리 테러로 인해 자사 프라이버시 정책이 바뀔 가능성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 IT기업들, 정부 암호화된 메시지 접근엔 반대

그러나 애플과 구글 경영진들은 안보도 프라이버시 모두 중요하다면서도 정부가 암호화된 메시지에 접근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데일리 텔레그래프를 통해 사용자 기기에 정부가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공감을 표했고 EMC 인수를 선언한 델의 마이클 델 CEO도 정부의 정보 접근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팀 쿡 CEO의 경우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이 개최한 컨퍼런스에서 참석해 안보와 프라이버시 모두 중요하지만 둘 중 하나 하나가 아니라 둘다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어느 하나에 우선순위를 둬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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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슈미트 알파벳 회장. (사진=씨넷)

정부 감시를 강화한다고 해서 테러 방지 효과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미 파리 테러를 겪은 프랑스에서 영국보다 훨씬 강력한 디지털 감시 관련 법이 통과됐다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7월 사법부 허가 없이도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용의자들에 대한 통화 및 이메일 송수신 내역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ISP들에게 일명 '블랙박스(Black Boxes)'라고 불리는 감시장치를 설치하도록 강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테러를 막지 못했다.

지난달 미국 백악관은 IT업체와 암호 전문가들의 반대를 감안해 암호화된 메시지에 정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파리 테러 이후 암호화된 메시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정보기관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어, 기존 입장이 계속 유지될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