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슈미트 회장의 제언이 공허한 이유

[기자수첩]현실과 먼 교과서적인 이야기

기자수첩입력 :2015/11/02 14:01    수정: 2015/11/02 15:59

지난주 구글의 지주회사인 알파벳의 에릭 슈미트 회장이 방한해 한국의 기술적 혁신과 진보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제언을 남기고 떠났다.

정부의 적극적인 스타트업 지원과 규제 완화, 그리고 어린이와 청년, 여성들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 등을 강조했다. 또 중국의 기술 역전과 자본 침투 등 중국발 위기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 없다”는 식의 희망적인 분석과 예측을 내놨다.

이에 업계는 에릭 슈미트 회장의 말을 두고 현실과 괴리가 큰 ‘공상과학’, 또는 ‘교과서적인’ 얘기라는 반응이다.

한국은 신자유주의 국가로 기업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 준다. 복지 예산을 줄여서라도 기업들의 세금을 감면해주고 이들이 국위선양 함은 물론 일자리 창출 등에 기여해주리란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기업에 대한 지원은 대부분 대기업 위주로 짜여 있다. 이제 막 대기업 반열에 오른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인터넷 기업들은 지원 대상이 아닌 ‘길들이기’ 대상으로 분류돼 있는 모습이다.

최근 새누리당이 추진 중인 포털 사이트 뉴스 규제법이나 강도 높은 세무조사 등의 움직임을 보면 에릭 슈미트의 규제 완화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뉴스 규제법은 이번 정기국회 때 반드시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외산 기업과의 규제 역차별 지적에도 우리 정부와 국회는 사실상 눈과 귀를 막고 있다. 국내 인터넷 기업에 대한 규제 의지가 뚜렷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주창하며 스타트업 지원과 인재 육성에 지난 정권 때보다 적극 나서는 듯 보이지만, 이들도 성장하면 결국 정권의 길들이기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인터넷의 개방성이 사라진 환경에서 열심히 커봤자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는 힘든 사회적 구조다. 정치적 잣대에 따라 규제를 받고, 외산 기업과의 역차별에 갇혀 대기업에 인수 합병 되거나 내수 기업에만 머물 가능성이 높은 것이 실상이다.

에릭 슈미트 알파벳 회장.

에릭 슈미트 회장은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수준이 높아 창의성 높은 인재들이 잘 자랄 수 있는 기본 토대가 갖춰진 환경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 역시 ‘입시지옥’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교육 실태를 간과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획일화된 방식으로 주입식 교육이 이뤄지고, 이제는 ‘국정화’ 교과서로 역사까지 바꾸려는 현실을 외면한 평가일 수밖에 없다.

중국발 위기에 대해서도 에릭 슈미트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이미 중국은 거대 자본을 앞세워 한국 시장을 잠식해 나가고 있다. 특히 인터넷, 게임 등의 분야는 기술적으로 한국을 뛰어넘었고 투자로만 보기 힘들만큼 중국 자본 유입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 중국이 욕심내는 한국의 기술력은 그래픽 디자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중국의 수주를 받는 외주제작사로 전락한 개발자나 개발사도 적지 않다. 기술은 됐고, IP만 달라거나 그래픽 소스만 사겠다는 중국 업체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그럼에도 슈미트 회장은 앞으로도 한국이 중국에 종속되지 않고 기술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탓에 한국이 위기라고 하지만 위기라고 보지 않는다”는 시각도 드러냈다.

물론 에릭 슈미트 회장이 한국의 실상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현실 가능성은 낮더라도 한국 정부와 국회에 ICT 기업, 특히 스타트업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성장세가 멈춘 한국 경제를 살리는 방법으로 어린이와 청년, 여성들과 중산층 등에 대한 지원을 제안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 이후 약 50년 간 빠르게 발전해 온 한국의 경제 성장률과 이를 뒷받침한 뜨거운 교육열을 긍정적으로 풀이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그럼에도 세계적인 기업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의 여러 제언과 충고는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구글이 구상하는 완전한 머신러닝 기술이나 로봇이 인간처럼 사유할 수 있는 시대보다 아주 먼 미래에나 가능할 것으로 체감된다.

여전히 여당은 포털 뉴스의 정치 편향성을 의심하며 규제의 잣대를 꼭 쥐고 있고, 입시 위주의 사교육 열풍은 잦아들 기미가 전혀 없다. 중국과의 기술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중국 자본 잠식에 대한 우려 또한 높아지고 있다. 여성 역할의 확대나 청년들의 일자리 지원 대책도 거북이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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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30일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에릭 슈미트 회장과 만나 다양한 협력 방안을 논하며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구글의 M&A와 투자 등을 요청했다. 전날에는 새누리당 민병주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정호준 의원은 국회 ‘테크토크’ 좌담회에서 구글의 혁신성을 높이 평가하고, 미래의 기술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마치 국회와 정부가 모두 ‘구글 바라기’만 하는 듯한 모습이다. 정작 국내 인터넷 기업이 구글과 같은 초국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고민은 빠져 있고, 오로지 "왜 우리는 구글처럼 될 수 없을까" 신세 한탄 속에 구글의 후광에 묻어가자는 듯한 인상만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