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감청 협조 엇갈린 평가…정답은?

“백기투항” vs "할 만큼 했다"

인터넷입력 :2015/10/19 08:32    수정: 2015/10/19 08:40

카카오가 수사기관 감청(통신제한조치) 요구에 협조하기로 기존 입장을 번복하자 이를 놓고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처벌 받더라도 이용자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감청에 응하지 않겠다던 카카오의 ‘백기투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사기업이 제도적 뒷받침 없이 ‘디지털 시대의 사생활 보호’라는 화두를 공론화시켰고 요지부동이던 수사기관을 움직였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19일 인터넷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지난 7일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른 통신제한조치에 응하기로 한 소식을 발표했다.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김진태 검찰총장이 카카오와 통신제한조치 재개 방식에 대해 실무적으로 합의했다는 내용을 카카오가 공식 인정한 것.

이에 수사기관이 영장을 받아 카카오에 감청 요구를 하면 카카오는 대상자의 카톡 대화 정보를 영장에 제시된 기간 동안 보관한 뒤 제공하게 된다. 비밀 채팅방의 경우는 암호화 된 대화 내용을 전달하며, 암호는 대화 상대의 단말기가 있어야만 풀린다.

기존 감청 협조와 달라진 부분은 단체채팅방의 경우 수사 대상자를 제외한 나머지 대화 참여자들을 익명으로 처리해 자료를 전달한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단체톡에 참여한 모든 대화 상대가 공개돼 사생활 침해 우려가 컸지만, 익명화 조치로 이를 최소화한 것이다.

익명 처리된 사람 중 검찰이 범죄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한 경우는 대상자를 특정해서 추가로 전화번호를 요청할 수 있지만, 이 경우 관할 수사기관장의 승인 공문이 필요하다.

비록 카카오가 지난 1년 간 ▲카톡 메시지 서버 저장기간 단축 ▲비밀채팅 모드 도입 ▲투명성보고서 발간 ▲프라이버시정책자문위원회 구성 등 다양한 기술적, 정책적 조치를 취해왔지만 감청 협조 재개는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작년 10월 당시 이석우 카카오 공동대표는 “법률 규정보다 프라이버시가 우선이다. 법적 하자가 있다면 책임지겠다”며 “법과 프라이버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는 어떠한 경우라도 프라이버시를 우선시하는 정책을 실시하겠다”는 말로 감청 요구 불응을 분명 약속했기 때문이다.

수사기관 감청 협조에 공식 사과를 한 이석우 전 카카오 공동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의원은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카톡 메시지는 감청대상이 될 수 없다. 지난해 카카오가 이런 대법원 판례를 바탕으로 감청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정했던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아무런 변경사유 없이 감청에 다시 응하겠다고 밝힌 것은 카톡 이용자를 기만하는 행위며, 자의적이고 불법적 행위”라고 말했다.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문송천 교수는 “빅데이터 시대에는 익명과 실명의 차이는 오직 약간의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카카오의 결정은 전문가 시각으로 볼 때 기술적 관점에서 졸속”이라며 “익명을 실명으로 자동 변화하는 데 시간이 좀 소요될 뿐이라는 결정적 사례가 미국에서 이미 있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카카오가 수사기관의 감청 협조를 재개했지만 “선방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지난 1년간 제도적인 뒷받침 없이 카카오 혼자 온갖 고문을 받았고, 디지털 시대의 사생활 보호라는 화두를 사회에 던진 것 자체만으로도 유의미한 성과라는 의견이다.

작년 진행된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현 국무총리)은

신경대 경찰행정학과 오길영 교수는 “이동통신 3사뿐 아니라 다른 인터넷 회사는 감청에 협조하는 상황에서 카카오만 1년 동안 고문을 당하고 버틴 셈”이라며 “제도적인 뒷받침 없이 제일 큰 회사니까 양심에 의존해서 버텼어야 했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당초 이 문제가 나왔을 때 인터넷 기업들이 의견을 같이 모아 검찰에 제시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며 “그 동안 프라이버시 논의에 대해 아무리 얘기해도 꿈쩍하지 않던 검찰이 카카오와 이를 논하고 일부 수용했다는 측면에서 환영할만 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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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검찰이 디지털 시대의 프라이버시 논의에 숟가락을 얹은 만큼 이제는 법원이 참여해 디지털 시대에 맞게 법제를 재정비해야 한다”면서 “이번 카카오와 검찰의 합의를 결론으로 볼 것이 아니라 프라이버시의 첫 논의로 보고 모든 인터넷 회사와 통신사가 참여해 더 많은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넷기업협회 관계자는 “카카오는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준비해왔다”면서 “카카오의 감청 불응 선언과 이용자 사생활 보호 조치로 사용자들이 내 정보가 보호되려면 어떤 식으로 해야 되는지를 알게 됐고, 어떻게 하면 내 정보를 함부로 못 가져가는지를 알게 됐다는 점에서 (프라이버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한 단계 진전된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