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스마트폰이 설 지점은 어디인가

[데스크칼럼] 세그먼트 전략 고민 필요

홈&모바일입력 :2015/09/16 13:47    수정: 2015/09/17 10:21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손자(孫子)의 가르침은 모든 교전(交戰)에서 장수가 기본으로 삼아야 할 가치다. 모든 싸움에는 상대가 있다. 적과 나에 대한 기본적인 형세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전략도 의미가 없다. 다윗이 골리앗을 눕힌 것도 지피지기의 결과다. 다윗의 돌팔매는 지피지기에서 나온 유일하게 유효한 전략이다.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을 위태롭게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전황(戰況)이 안 좋고 개선될 가능성도 그다지 높다고 보지 않는 것이다. 애플은 추격하기에 너무 높은 곳에 있고 중국 기업들에게는 이미 뒷덜미를 잡혔다. 적의 형세에 대한 상황판단은 둘째 치고 지금 누구와 싸워야 할 것인지도 헷갈릴 지경이다. 애플과의 정면대결은 계란으로 바위치기고 중국 기업과 싸우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지기(知己)에 대한 실패로 보인다. LG는 아이폰 이전 일반폰 시절만 해도 노키아, 삼성전자와 함께 ‘빅3’였다. 북미지역에서는 삼성과 함께 절대 강자였다. 이 시절만 해도 TV 세탁기를 비롯한 가전제품 브랜드와 휴대폰 브랜드가 시너지 효과를 냈다. 하지만 스마트폰 분야에서는 후발 주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LG 예상보다 스마트폰 시장이 너무 급속히 컸기 때문이다.

상황은 변했지만 LG는 그대로였다.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 안전한 진지(陣地)를 적에게 내준지 오래지만 그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과거에 대한 독한 추억. 언제든 전세를 역전할 수 있다는 기술과 브랜드에 대한 자신감이 문제의 원인이었다. 전황은 급박해 죽느냐 사느냐의 국면으로 접어드는데 LG에게 강조된 건 싸움과 전략이 아니라 ‘기술 지상의 장인 정신’이었다. “우리에겐 기술이 있다.”

LG의 믿음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LG는 여전히 세계 톱클래스의 가전업체이고 통신 서비스와 장비 및 단말기 제조 업력이 지금 경쟁하고 있는 어느 업체에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동안 쌓은 노하우와 기술력을 무시할 수 없다. LG가 초지일관 품질과 프리미엄을 강조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실제로 LG가 내놓은 제품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 꽤 수준 높은 제품을 내놓고 있다.

LG전자가 15일 국내외 미디어에 보낸 슈퍼 프리미엄 스마트폰 출시행사 안내 포스터 (사진=LG전자)

문제는 LG가 고지(高地)를 내주었다는 사실이다. 모든 고지전(高地戰) 양상은 비슷하다. 지키는 쪽이 절대 유리하다. 뺏으려는 자는 3박자를 고루 갖춰야 겨우 승산이 생긴다. 일당백의 전투력을 갖춘 유격전사, 공중전(空中戰) 전략, 군사 숫자의 절대 우위. 총체적 물량공세를 하지 않으면 승산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이 상황에서 삼성은 애플에 대한 물량공세을 펼쳐왔고 LG는 단순한 백병전에 그쳤다.

LG도 뒤늦게 이 처지를 뼈저리게 실감한 듯하다. 장수를 바꾼 것에서 알 수 있다. 조준호 사장. LG 일반 휴대폰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 미주대륙을 휩쓸었던 경력과 노하우가 높이 평가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 1월에 사령탑을 맡았고 다음달 1일 그의 정성이 녹아들어간 첫 제품이 발표된다. 이 제품은 앞으로 LG전자 스마트폰 사업의 향방을 크게 가를 가능성이 높다. ‘결정적 한 방’인 셈이다.

수장은 바뀌었지만 전략은 비슷해 보인다는 점에서 약간의 우려가 있다. 슈퍼 프리미엄 폰. 이 단어가 LG 캐치프레이즈인 걸로 본다면 기술력으로 최강자와 맞서 일거에 전세를 뒤집는다는 전략이 여전한 것처럼 보인다. 이를 테면 정면승부. 건달의 싸움은 그럴 수 있다. 남자답고 통쾌하다. 지더라도 명예는 남는다. 그러나 기업의 싸움은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더 치밀하고 현실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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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게 필요한 건 그래서 투트랙이다. 기술로 정면 승부를 하되 시장 형세를 정확히 판단해 세그먼트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건 적과의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작은 진지’들을 새로 구축하는 것이다. 그건 시장을 세분할 때에 가능하다. 지역이건 가격이건 품종이건 상관없다. 카메라를 특히 강조하는 건 이 전략을 위한 실마리일 수 있다. 기획과 마케팅이 승부의 관건이다.

LG는 분명 애플이 아니다. 지금 당장 판을 완전히 바꾸는 건곤일척의 승부로는 승산이 적다. 그것도 안 할 수 없으니 시간을 두고 치밀하게 준비하되 곳곳에서 ‘작은 진지’를 탈환하고 확보하는 ‘승리 경험’부터 쌓아야 한다. 제품 자체를 경쟁사와 특화시키려는 노력 못지않게 시장을 쪼개고 나누어 각 개별 시장의 요구를 더 섬세히 들여다보고 그 개별 시장에서 승리하는 ‘작은 전투’를 더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