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CJ 회장에 대한 일벌백계의 한계

[데스크칼럼]그가 일하도록 하는 게 더 낫다

유통입력 :2015/09/10 16:54    수정: 2015/09/11 07:36

대법원이 이재현 CJ 회장 상고심에서 항고심의 결과를 파기 환송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최고 통치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 실린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제 궤도에 오른 나라에서 행정 입법 사법이 독립돼야 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서로 견제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견제의 뜻을 제대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견제가 제로섬이어는 안 된다. 그보다 상생으로 읽는 게 백번 더 옳다.

일벌백계가 유일한 가치인 세상은 참혹하다. 결국 모두 피 흘리며 죽게 돼 있다. 인류 대재앙은 모두 이 네 글자와 관계가 있다. 일벌백계는 오만함에서 싹튼다. 나는 절대 옳고 상대는 절대 그르다는 신념. 나는 신(神)이고 상대는 악마라는 믿음. 모든 문제가 상대에서 비롯됐다는 철부지 생각. 그 신념과 믿음과 생각이 나를 악마로 만든다. 인류를 참혹하게 말살한 주체들은 모두 그렇게 믿고 행동했다.

그 처참한 생각은 예수와 석가와 마호메트를 오독하면서 시작된다. 유일신에 대한 착각. 인류가 세 부류로 나뉘어 그들을 섬기는 이유는 세 분 모두 성인(聖人)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 분만 성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 분들이 말씀하신 가치는 세상의 어떤 잣대로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똑같다. 이 진리를 그의 추종자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인정한다면 세상은 평화 그 자체다. 문제는 추종자의 오만이다.

이 진리는 굳이 역사와 종교를 몰라도 알 수 있다. 모든 가정에서 이 진리는 나타난다. 세상의 모든 아빠는 세상의 모든 아들을 살피며 혼낼 거리를 살핀다. 그 감시는 분명 애정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아들이 혼나야 할 이유는 알고 보면 극히 사소한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미 모든 아빠가 했던 일에 불과하다. 오늘 아들의 잘못은 아빠의 오래된 오늘이고 내일이다. 누구도 이 사실을 벗어날 수 없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재현 회장 이야기로 돌아가자. 기자가 검찰도 경찰도 아니고 그들 또한 사명으로 사는 걸 믿기에 이들이 찾아낸 이 회장의 죄(罪) 명목은 상당수 팩트일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므로 혼나야 할 때 회초리를 드는 게 맞다. 문제 삼고자 하는 건 정도(程度)다. 회초리는 아들과 내가 서로 잘 되기 위해 들어야 한다. 아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면 바로 거둬야 한다. 죽을 만큼 매를 들 필욘 없다.

이 회장의 혐의는 횡령 탈세 배임 세 가지다. 국내 3천600여 억 원, 해외 2천600여 억 원 등 총 6천200여 억 원의 비자금을 차명으로 운용하면서 546억 원의 세금을 안 내고 963억 원 상당의 국내외 법인자산을 빼돌렸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중 대부분은 사실일 터이다. 그래서 이제 살펴야 할 것은 팩트가 아니다. 왜 그런 죄를 저질렀는지 세심하게 들어보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물어보는 게 더 낫다.

아들이 뭔가 잘못했을 때 그를 더 나은 길로 안내하는 최선의 방법은 죽을 만큼 패는 게 아니라 왜 그래야 했는지를 차분하게 들어주면서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것이다. 인내를 갖고 들어주면 아들은 스스로 깨닫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고민하게 된다. 아들을 바꾸는 것은 매가 아니라 사소한 잘못을 계기로 지금 나는 누구고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하는 토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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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기업가다. 세상의 모든 기업가는 교도소 담 위에 서 있다. 매일 교도소 안과 밖 어느 곳으로 떨어지느냐 줄타기를 한다. 왜? 기업은 두 발 자전거 같아 촌각을 다퉈 죽느냐 사느냐를 고민해야 하고 가끔 편할 길에 대한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업가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임직원을 챙기고 고용을 늘리는 문제다. 그렇게 하려면 새 동력을 찾아 투자해야 한다.

기자는 기업가 대부분이 저질러왔던 이 회장의 죄가 한류(韓流) 문화를 꽃피우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됐다고 믿는다. 국내서 어느 기업도 크게 성공한 바 없는 콘텐츠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과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충분히 죗값을 치렀고 이제 몸까지 병들어 지친 그를 이해할 때가 됐다. 그리고 그에게 콘텐츠 산업 활성화 숙제를 주면 된다. 박대통령의 생각이 그렇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