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 200인 “방심위 '사이버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 반대”

방심위 '검열 직권' 부적절…“日 형법 특칙과 유사, 악용 우려”

인터넷입력 :2015/08/24 15:01    수정: 2015/08/24 15:30

법률 전문가 200명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의 ‘인터넷 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안’이 공인에 대한 비판 차단용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이들은 지금이라도 행정 기관인 방심위가 ‘인터넷 검열’의 권한을 가지려는 심의규정 개정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사이버 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을 반대하는 전국 법률가 일동은 24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공인 비판 차단하려는 사이버 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을 반대한다’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근 방심위는 인터넷 명예훼손 글을 제3자 신고 혹은 직원으로 심의를 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명예훼손을 당한 피해 당사자가 나서지 않더라도 ‘타인의 신고’ 또는 ‘방심위 직권’으로 인터넷 게시물이 차단, 삭제될 수 있다.

왼쪽부터 박주민 변호사, 송기춘 교수, 한상희 교수, 양규응 변호사, 박경신 교수.

이에 많은 법률 전문가들은 행정기관인 방심위가 게시물의 명예훼손 여부를 심의하는 것 자체가 위헌적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당사자가 아닌 제3자에게까지 심의 신청을 허용한다면 공인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기 위해 해당 규정이 악용될 것이란 주장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법률가들은 ‘친고죄’를 따르는 통신심의 제도가 ‘반의사불벌죄’를 따르는 형사법과 충돌된다는 방심위 주장에 일침을 가했다. 형사법과 행정법은 목적, 주체, 효과가 전혀 다른 법체계라 법체계상 충돌이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또 참석자들은 반의사불벌죄가 우리나라에만 유일하게 있고, 광복 이후 일본도 채택하지 않은 일본헌법 가안에서 따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마디로 일본이 헌법 개정을 앞두고 검토하다 만 내용을 우리나라가 가져다 쓰고 있다는 것.

양규응 변호사는 “반의사불벌죄는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있는데 연혁을 보면 과거 일본이 헌법을 개정하기 앞서 만든 가안에 나와 있는 내용”이라면서 “일본도 이 내용을 헌법 개정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다만 현재 일본 형법에 천황 등 황족의 경우 내각총리 대신이 고소할 수 있다는 내용이 특칙으로 포함돼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칙은 천황의 특별한 지위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라며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대신 고소(신고)를 하게 해서 처벌(조사 및 조치)을 한다는 점에서 방심위 심의규정 개정안은 일본 형법의 특칙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고려대 법학대학원 박경신 교수는 “법률에 맞춰 심의규정 개정을 진행한다는 방심위 측 주장대로라면 법에 맞춰 개정할 심의규정이 너무 많기 때문에 더욱 말이 안 된다”며 “방심위의 심의규정 개정 의도는 사회 약자들의 보호가 아닌, 대통령 등 공인들을 위한 것이란 정황들이 너무나 많다”고 밝혔다.

송기춘 교수는 방심위 심의규정이 개정되면 표현 및 언론의 자유가 상당히 제약받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또 법원의 가처분을 받지 않고도 제한을 가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행정기관인 방심위가 갖게 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송 교수는 “방심위 심의규정 개정안은 명예 보호보다는 국민의 기본 인권 침해 가능성이 더 높다”면서 “사법권보다 행정권이 최종권을 갖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고, 국민들의 인권을 샅샅이 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친정부적인 제도적 운영을 위해 반정부 언론을 규제할 것이 불보듯 뻔하다”고 쓴소리를 가했다.

박주민 변호사는 “법원도 신뢰하기 어려운 가운데, 적어도 사법기관에서 심의가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니겠냐”며 “일련의 사건들과 개정의 배경을 살펴봤을 때 이번 개정안은 공적 인물에 대한 비판을 제한하는 현대판 검열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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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방심위는 지난 23일 긴급 통신심의소위원회를 열어 최근 북한 대남 도발과 관련해 허위 내용이 담긴 게시글 13건을 심의해 삭제 또는 접속차단 등 시정 요구를 결정했다.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이 국정원 및 새누리당 자작극이라는 내용 등이 사회적 혼란을 현저히 야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이에 박경신 교수는 “허위정보를 불법으로 만드는 법조항이 없음에도 방심위가 제멋대로 심의를 내린 경우”라면서 “인터넷명예훼손 심의규정이 개정되면 이 같은 일은 더욱 빈번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