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기금 1천억 조성"

신속한 보상 연내 마무리...협력사 퇴직자도 포함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15/08/03 19:51    수정: 2015/08/04 07:23

송주영 기자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장 내 직업병 해결을 위해 1천억원을 사내 기금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금 운영과 사용 방식에 대해선 앞서 사단법인을 설립해 운영하라는 조정위의 권고안과는 입장을 달리했다. 사단법인을 설립하려면 또 다시 오랜 시간이 걸리고 신속한 보상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사실상 조정위의 공익법인 설립 권고안에 대한 타협안을 내놓은 셈이다.

3일 삼성전자는 ‘조정위원회 권고안에 대한 삼성전자 입장’을 통해 1천억원 기금을 조성하고 직업병 보상범위를 삼성 반도체, LCD 라인 노동자를 넘어 협력사까지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전문적이고 종합적으로 사업장 종합진단을 실시하고 조정위가 권고한 취지를 반영해 사과문을 작성, 발표하겠다고 했다.

■1000억원 사내기금으로 조성

삼성전자는 구체적인 직업병 대응 내용 발표를 통해 조정위가 공익법인 설립 비용으로 제시한 1천억원의 기금을 출연할 뜻을 밝혔다. 이 기금은 사내기금으로 조성해 보상금 지급, 예방활동, 연구활동 등에 사용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기금의 사용처에 대해 보상 이외에도 ▲반도체산업 안전보건 증진을 위한 연구 조사 ▲반도체 중소기업 산업안전보건컨설팅 ▲반도체 산업안전보건전문가 양성 ▲해외 사례 조사 ▲기타 반도체 산업 안전 보건 향상을 위해 필요한 사업 등도 제시했다.

하지만 이를 공익법인 기금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조정위원회가 권고한 사단법인 설립은 해법이 될 수 없다”며 “법인을 설립하고 그 법인을 통해 보상을 실시하려면 또다시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기금을 조성하면 법인 설립에 따르는 절차 없이도 신속하게 보상을 집행할 수 있다”며 ‘상설기구와 상근인력 운영 등 보상 이외의 목적에 재원의 30%를 쓰는 것보다는 고통을 겪은 분들께 가급적 많은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기금 운영방안, 사용처 등 세부 내용은 앞으로 더 구체화할 계획이다.

■신속하게 즉각 집행…협력사도 보상

삼성전자는 보상 범위에 상주 협력사 퇴직자도 포함하기로 했다. 이는 권고안의 보상 범위를 넘어서는 내용이다. 삼성전자는 “인과관계를 따져서 실시하는 보상이 아닌 만큼 대상 질병을 포함한 원칙과 기준은 가급적 조정위가 권고한 방식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상주 협력사 퇴직자도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직업병 조정위원회가 23일 서울 충정로 법무법인 지평에서 직업병 권고안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또 “퇴직자들과 달리 협력사의 경우에는 근무이력 파악조차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또 아무리 상주 협력사라고 해도 저희 회사 소속이 아닌 분들까지 포함하는 것은 현행 법체계와의 충돌 우려가 있어 고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회적 부조라는 인도적 관점에서 상시 근무한 상주 협력사 퇴직자에 대해서는 삼성전자 퇴직자와 동일한 원칙과 기준을 적용해 보상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보상은 위로 차원에서 실시하는 것인 만큼 당사자와 가족은 이와는 별도로 여전히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보상 대상은 삼성전자에 2011년 1월 1일 이전 입사해 반도체와 LCD 생산 등 작업공정, 관련시설의 설치 정비 및 수리 업무를 1년 이상 수행하다 1996년 이후 퇴직한 자다.

삼성전자는 “권고안은 2011년 이전 입사자 모두를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그렇게 할 경우 40년전에 퇴사한 분들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상주 협력사 소속인 경우에는 2011년 1월 1일 이전에 삼성전자 반도체와 LCD 생산라인에 배치돼 상주하며 작업공정, 관련 시설의 설치 정비 및 수리 업무를 1년 이상 상시 수행하다가 1996년 이후 퇴직했다면 대상에 포함된다.

삼성전자는 보상 대상 질병에 대해서도 조정위가 보상 대상 질병으로 권고한 대부분의 질병을 보상 대상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조정위는 권고안에서 7개 병종과 5개 질병군 등 12개 항목을 보상 대상으로 제안했는데, 유산·불임 군을 제외한 11개 항목을 모두 대상으로 했다.

그러나 카테고리로 묶여 있는 질병군 가운데 일부 개념이 불분명하거나 광범위한 질환이 섞여 있고, 환경적 요인보다 유전적 소인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경우도 있어 이들 일부 질병에 대해서는 외부 전문가의 판단을 구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이같은 보상 대상 질병 선정은 인과관계 여부와 무관한 지원과 위로의 관점에서 이뤄진 것이므로 기존 산재보상제도에는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일부 질병에 대해서는 발병 권고안이 잠복기가 최대 14년보다 줄일 계획이다. 권고안은 일부 질병에 대해서는 잠복기가 14년이라며 퇴직후 14년 이내에 발병할 경우 대상에 포함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잠복기는 최종 노출시점이 아니라 최초 노출 시점부터 질병이 발현되기까지의 기간을 의미하고 있어 학술연구에서도 퇴직 시점이 아니라 취업시점으로부터 진단 시점까지를 잠복기로 설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해당 근로자의 재직기간도 고려하기로 했다. 반도체 LCD 근로자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9년 이상임을 고려해 일부 질병들의 퇴직 후 발병시기 기준은 최대 10년을 넘을 수 없다고 했다. 나머지 질병은 권고안과 동일한 조건을 적용할 계획이다.

■보상위 구성해 연내 보상 마무리

아울러 신속한 보상을 위한 별도의 보상위원회도 구성할 예정이다. 보상위원회는 보상 신청자들에 대해 원칙과 기준에 따라 심사한 뒤 보상금을 집행하는 역할을 한다. 보상위원회가 구성되면 창구를 개설해 신청 접수에 들어가게 된다. 이를 통해 올해 안에 대부분의 보상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보상금 산정 기준은 권고안이 정한 바에 따르되 1군과 2군에 적용하도록 돼있는 미취업 보상과 위로금은 두 항목을 합쳐 2년간 평균임금(성과급 제외)의 70%를 지급할 예정이다. 이는 단순 계산할 경우 약 17년 근속후 받는 퇴직금과 비슷한 규모에 해당한다.

특히 향후 치료비 계산은 예상 지출액의 추산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증빙자료를 구비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경우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감안해 보상위원회는 질병별 치료비 통계 등을 기초로 상세한 산정기준을 마련해 합리적이고 신속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전문적·독립적 종합진단 실시

이와 함께 외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종합진단팀을 구성해 예방 활동에도 서둘러 나선다는 방침이다. 종합진단팀은 고용노동부가 위촉한 반도체 보건관리 모니터링위원회 위원 중에서 4~5명을 추천받고, 여기에 국내외 전문가 2~3명, 근로자 대표 1~2명을 더해 구성할 계획이다.

진단을 통해 문제점이 나타나면 진단기구가 제시하는 개선안을 신속히 실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모든 화학제품에 대해 중대 유해물질 포함여부를 조사하고, 발견시 제품 사용정지 ▲임직원건강지킴이센터를 신설해 산재의심 질환 발생시 산재신청을 비롯한 종합적 지원실시 ▲임직원 건강관리 전담인력 확대와 맞춤형 진단 및 치료 제공 ▲노사 동수로 구성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지역주민 및 지역언론 참여 화성·용인 소통협의회 활동, 지역 환경단체와의 협의회 활동 등 강화 등 예방대책도 시행한다.

삼성전자는 조정위원회가 권고안을 통해 제시한 취지를 충분히 반영하고, 근로자들의 건강권 증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사과문을 작성해 발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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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당사자와 가족들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수 있도록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모든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원칙을 지켜왔다”면서 “이제 신속한 집행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인 만큼 삼성전자는 약속한 모든 내용에 대해 즉각 실천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또 “1천억원 기금 조성과 보상, 종합진단 실시와 예방조치 등 모든 약속을 신속하게 실천해나가겠다”면서 “이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가족들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고 반영함으로써 실질적인 결실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