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노버는 어떻게 '脫중국'에 성공했는가

치아오 부사장 현지 단독 인터뷰…국내 시사점은?

홈&모바일입력 :2015/07/08 11:16    수정: 2015/07/09 14:41

<베이징(중국)=조무현 기자>중국 기업들이 떠오르고 있다. 레노버, 화웨이, 샤오미, 알리바바 같은 IT 전자 기업들은 PC부터 모바일, 엔터프라이즈 장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지위에 오르며 정상급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 바로 레노버다. 창업 시기는 물론 세계 무대에 알려진 순서로도 가장 긴 시간을 보낸 곳이다. 10년 전인 지난 2005년, 레노버는 ‘코끼리를 삼킨 거대한 보아 뱀’과 같이 IBM의 PC사업부를 인수하며 단번에 세계의 중심에 섰다.

‘보아 뱀’은 코끼리를 효과적으로 소화해냈다. 레노버는 인수 이후 시너지 효과를 십분 누리며 HP와 델 등 기존 강자들을 밀어내고 세계 최대 PC 제조업체 자리에 올라섰다. 지난해에는 IBM의 x86 서버 사업부와 모토로라까지 인수해 화제에 또 다시 올랐다.

레노버의 이런 행보는 다른 중국 기업들과 사뭇 다른 행태다.

해외 기업, 특히 미국 기업을 인수해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 낸 성과의 배경에는 레노버그룹의 인사/조직관리(HR)를 이끄는 지나 치아오 부사장(SVP)이 있다.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지배하고 점령하는 형태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데 그의 리더십이 작용했다. 레노버의 이 같은 독특한 조직문화가 갖는 특징은 한 마디로 “진정한 글로벌화(Truly Global)”에 있다.

레노버 지나 치아오 부사장

■동-서간 ‘차이’와 ‘사이’를 이어준다

2005년, IBM PC사업부를 인수할 당시 치아오 부사장은 다른 어떤 점보다도 ‘통합(Intergration)’에 초점을 맞췄다. “우리가 이 여정(통합 과정을 비유적으로 표현)을 시작할 때, 우리는 전략과 제품, 혁신을 정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임직원 유지’를 계획했다”고 말했다. IBM 출신 임직원의 이탈을 막지 못하면 인수합병(M&A)의 효과가 퇴색된다는 점을 고려, 두 조직간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고 통합이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레노버의 기존 임직원들과 IBM 출신의 새로운 임직원 사이에는 많은 오해가 발생했다. 통합은 더디게 진행됐고, 2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레노버는 이러한 문제가 전략이나 제품에서 나오는 문제가 아닌, 조직문화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조직문화를 세우는 일의 첫 단추는 ‘신뢰(Trust)’였다. 치아오는 “우리는 다른 국가와 다른 배경,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함께 있는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동양인은 조용하고 겸손하며 심사숙고하는 경향이 있었다. 서양인은 더 개방적이고, 직접적이며 공유하는 것을 좋아하며 이를 나눌 때 적절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치아오 부사장은 두 집단이 이처럼 미묘한 차이점 때문에 서로 오해하고 있다고 판단, 신뢰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조직문화 건설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중국 베이징 소재 레노버 본사 전경 [지디넷코리아]

주요 임원진 또한 두 개의 서로 다른 급여체계를 갖고 있었다. 치아오 부사장은 IBM 출신들이 높은 기본급과 낮은 수준의 보너스를 받는 반면, 기존 레노버 출신들은 낮은 기본급을 받는 대신 성과에 따라 높은 보너스를 받고 있다는 점에 놀랐다. 이 같은 차이가 양 집단 사이의 원활한 대화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문제점들도 산재해있었다. IBM 출신들은 ‘회의 준비를 위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는 레노버 출신들에게는 생소한 일이었다. 미국식은 회의에서는 회의전 발표자가 얼굴을 마주한 채로 각 참석자들에게 본회의에 나올 의제에 관해 의견통합을 미리하고 모든 것을 그렇게 완전히 준비해 전달하는데, 이는 중국에서는 익숙치 않은 방식이었다. 치아오 부사장에 따르면 중국에서 회의는 논의를 처음 시작한다는 의미가 강했다.

“우리는 논의를 거듭했고, 새로운 원칙을 만들었다”고 치아오 부사장은 말했다. “우리는 미국인 임직원들에게 더 천천히 말해달라고 부탁했고, 중국인 직원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보다 적극적으로 말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러한 기준은 현재는 레노버 내에서 하나의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본 회의에 앞선 사전 회의, 자료 공유 등은 본 회의 24시간 이전에 갖도록 했다. 치아오 부사장를 비롯한 인사관리 부서는 각각의 경우에 따라 팀원간에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장려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겉돌았던 두 집단간의 대화가 보다 부드럽게 진행되기 시작했고, 업무는 원활하게 이뤄지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회사의 전략과 제품, 혁신에 대한 논의가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7~8년간에 걸친 노력 끝에 레노버는 문화적인 장벽을 깨뜨리고 “획기적인 개선”을 이뤄냈다고 치아오 부사장은 말했다. “그것은 어느 날 하루 만에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이며, 여전히 진행형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간에 열린 마음이 생긴 것이다.

각 국가 시장에서 레노버가 지사장을 현지인으로 임명하는 부분에서도 이러한 조직문화가 드러나는 한 단면이다. 예를 들어 화웨이가 해외 지사장을 중국인으로 임명하는 것과 달리, 레노버는 현지인 출신에게 해당 국가 시장을 맡긴다.

“나는 레노버가 세계 1위, 혹은 2위나 3위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문화를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레노버가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당신이 중국, 미국, 이탈리아, 한국 등 레노버 지사가 있는 곳을 방문했을 때, 당신은 이 회사에 중국식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인수 이후, 우리가 처음 조직문화를 바꾸기 시작했을 때에는 우리가 평균 이하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최정상에 근접했다고 말할 수 있다.”

레노버는 IBM PC사업부 인수 이후 10년간의 성장을 돌아보고 향후 10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첫 글로벌 컨퍼런스 레노버 테크월드를 올해 개최했었다. (이미지=한국레노버)

■중국인 임직원들, 영어를 배우다

중국인들이 사업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비중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대륙에서 이를 체감하기란 어렵다.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할 때까지, 기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이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택시기사와 행인들에게 손짓과 발짓을 통해 간신히 원하는 바를 설명하고서야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었다. 고생 끝에 간신히 베이징 시내 레노버 본사에 도착했을 때, 기자는 보다 수월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각각의 직원마다 유창함의 차이는 있었지만, 레노버 사원증을 패용한 이들은 적어도 영어로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치아오 부사장 또한 10년 전만 해도 영어로 대화를 할 수 없었다. 미국인 임직원들과의 회의에는 통역 담당 직원이 따라 붙었다. 언어 차이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언어에 포함된 에티켓과 매너, 그리고 문화적 차이였다.

치아오 부사장은 “이런 방식(통역을 통하는 식)의 의사소통은 언어적 차이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고, 내게 있어서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을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말할 수 있는지 표현하기 어려웠고, 많은 미국계 임직원들은 내가 무례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그는 웃었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동안에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내지는 ‘이 부분은 동의한다’는 말을 (영어로)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당시 중국의 환경은 영어 친화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레노버 최고경영자(CEO)이자 회장인 양위안칭은 진정한 글로벌 기업을 만들기 위해 회사 내 공식언어를 영어로 지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중국어로 된 문서는 전부 영어로 다시 번역해 사용하도록 했다. 치아오 부사장은 이제 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 있다.

중국 베이징 소재 레노버 본사 전경 [지디넷코리아]

■권위주의를 깨뜨려라

레노버는 IBM PC사업부 인수 이전인 2000년대 초반부터 이미 중국적인 문화인 권위주의적 특성을 깨뜨리고 글로벌 기준에 맞는 문화 수립 노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직원들의 직급에 대한 호칭에 대한 문제가 가장 컸다. 서구 문화에서는 직급이 아닌 각 직원의 이름을 부르지만, 동양 문화에서는 직급을 부르는 것을 선호했다. 예를 들어 중국인 임원들은 자신의 성과 함께 그 뒤에 ‘장(長)’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을 선호했다. 양 회장은 이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형식적인 직급명을 붙이면, 사람들은 이를 권위주의적으로 느낀다. 당신은 그의 말을 듣고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창의적인 활동을 도와주지 못한다”고 그는 말했다.

양 회장은 새로운 제도가 정착시키기 위해 스스로 나섰다. 매일아침, 양 회장은 임원들과 자신들의 이름만 적힌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정문에 섰다고 한다. 그리고 지나가는 모든 직원들에게 꼭 자신과 임웜들의 이름을 부르게 했다고 한다.

“직원들에게 그들의 상사를 부를 때 직급 대신 그들의 이름을 부르게 했더니 너무 부끄러워했다. 중국 문화에서는 이것을 무례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현재 양 회장의 경우 이름 보다는 ‘YY’라는 별칭으로 직원들이 부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 문화 풍토에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몇 년 전 치아오 부사장은 TV 인터뷰에 출연한 자리에서 양 회장을 YY라고 부르자 그의 이모 중 한 명이 치아오 부사장은 부모에게 전화해 딸에게 예법을 제대로 가르치라고 전화했던 일화도 있다고 그는 전했다.

직급을 호칭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은 다른 중국계 라이벌 기업인 화웨이와 샤오미와도 다른 부분이다. 샤오미의 경우 레이쥔 CEO는 청바지와 캐주얼 의상을 입는 등 열린 방식의 아이콘처럼 행동하지만 여전히 내부 직원들이 그를 부를 때는 ‘레이 장(長)’이라고 말한다.

레노버 시스템x3650 M5 서버

■PC에서 모바일로…또 한 번의 변화 바라본다

레노버는 현재 스스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PC에만 초점을 맞추는 대신, 모토로라와 IBM 서버사업부를 인수하면서 회사를 모바일과 PC, 엔터프라이즈 등으로 나눠서 운영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PC 제조사로서 영어 공식언어 지정과 호칭 변화로 동서양간의 간극을 메웠다. “나는 만일 당신이 지역 시장 리더로서만 남으면 레노버에서 일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특정지역이 아니라 글로벌을 생각하고 열린 마음을 가진 리더들, ‘그래 이것이 레노버의 리더’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그는 말한다.

이제 레노버는 PC에 집중돼있던 조직문화를 다양화시켜 특히 모바일 기기 제조사로서의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만일 PC 시장이 여전히 빠르게 성장했다면 우리는 또 다시 조직문화를 바꿀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그는 “PC는 하드웨어 특성이 강하고, 운영체제(OS)는 모두 윈도 기반이다. 그러나 모바일은 특히 사용자환경(UI) 중심의 소프트웨어적 특성이 창의성도 필요하다. 또 무엇보다도,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혁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치아오 부사장은 매우 긍정적으로 모토로라나 IBM 서버사업부와의 통합에 대해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IBM PC사업부와의 통합 경험을 통해 보다 원활한 진행이 가능하리라는 전망 때문이다. “10년 전에는 회사에게나 개인적으로나 매우 어려웠지만, 그때의 경험은 레노버와 저에게 통합에 대한 준비과정이었다”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레노버는 현재 사업부를 모바일, PC와 엔터프라이즈로 나누어 공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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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치아오 부사장은 약 25년간 레노버에서 근무해왔다. “나는 (레노버의) 모든 과정에 함께 해왔다. 나는 모든 과정을 지켜봐왔다. 나는 소심한 여자로 시작했고, 욕심이 많은 여자는 아니었다. 나는 현재 우리 회사와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고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레노버는 10년 전보다 훨씬 나은 위치에 있지만, 도전은 여전히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강한 핵심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조직문화다. 몇몇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고 전략이나 브랜드에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조직문화야 말로 우리 회사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앞에 놓인 도전에 대해 흥분하고 있다”며 인터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