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항복'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야심

겉으론 압력 굴복…아티스트 마음 얻는 효과 더 클 듯

데스크 칼럼입력 :2015/06/23 09:51    수정: 2015/06/23 17:35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지난 주말 흥미로운 공방이 벌어졌다. 거대 회사인 애플과 미국의 음악 아이콘인 테일러 스위프트가 오는 30일 시작할 ‘애플 뮤직’ 스트리밍 서비스를 놓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면 충돌했다.

싸운 이유는 간단하다. 3개월 무료 서비스 기간 동안 아티스트들에게 로열티를 주지 않겠다는 애플 방침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스위프트는 아예 인기 앨범인 ‘1989’ 음원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강수를 뒀다.

둘의 공방은 싱겁게 끝났다. 애플 음악 서비스를 총괄하는 에디 큐 부사장이 곧바로 “로열티를 지급하겠다”고 밝힌 것.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에디 큐는 테일러 스위프트에게 직접 사과 전화까지 했다. 이에 테일러 스위프트는 "애플은 우리에게 귀 기울이고 있다”고 화답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테일러 스위프트. (사진=씨넷)

■ 애플은 과연 패배자일까

이번 사안은 겉으로 보기엔 애플이 인기 팝 스타에게 완전히 무릎을 꿇은 모양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인디 아티스트들의 수호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관점을 한번 바꿔보자. 애플은 과연 이번 공방의 패배자일까? 난 “절대 아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애플은 이번 공방으로 얻은 것이 훨씬 많다는 게 내 판단이다.

일단 금전적인 면에서 애플이 크게 손해볼 것 없다. 시가 총액 7천억 달러를 자랑하는 애플에게 시범 서비스 기간 동안 지급하는 로열티는 전혀 문제 될 것 없다.

오히려 ‘외부 비판을 받아들이는 겸손한 회사’란 이미지를 얻은 효과가 훨씬 크다. 마케팅 비용으로 따지면 저렴한 편이다.

더 큰 효과는 다른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음악 시장에도 이미 오래 전에 음반이란 패키지 상품이 해체됐다. 무게 중심이 점차 디지털 음악 쪽으로 옮겨 오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본격화될 경우엔 이런 움직임은 더 가속화될 수 있다.

이런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애플이 그리고 있는 큰 그림에 이번 공방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 부분을 한번 찬찬히 따져보자.

■ 또 다른 패키지 해체, 기초 공사 아닐까

애플은 ‘애플 뮤직’ 스트리밍 서비스를 준비하는 내내 엄청나게 고전했다. 거대 음반회사들을 설득하기 위해 막판까지 마라톤 협상을 했다. 결국 경쟁업체인 스포티파이보다 더 많은 로열티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참여를 이끌어냈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음반회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아티스트들과 협상하길 원할 것이다. 아이튠스에 올라오는 각종 앱처럼 아티스트들이 바로 음악을 판매하는 모델을 만들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아티스트들의 마음을 얻어야만 한다. 포천의 매튜 잉그램 기자가 잘 지적한 것처럼 애플이 ‘로열티 지급’ 쪽으로 급선회한 것은 이런 큰 그림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봐야 한다. (☞ 매튜 잉그램 기사 바로 가기)

에디 큐 부사장이 흔적이 남는 SNS를 통해 ‘로열티 지급 방침’을 밝힌 것도 이런 부분을 감안하지 않았을까? 이용자 뿐 아니라 아티스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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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15년 전 아이팟을 내놓으면서 음악 시장에서 음반이란 패키지를 무력화했다. ‘애플 뮤직’은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음반 시장의 또 다른 패키지인 거대 음반사를 위협하는 서비스가 될 수도 있다.

‘로열티 공방’에서 그토록 간단하게 백기를 든 것은 애플이 그리고 있는 그림이 간단하지가 않다는 걸 반증해주는 게 아닐까?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