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후의 시스코는?"…예비 CEO에게 묻다

컴퓨팅입력 :2015/06/10 14:45

<샌디에이고(미국)=임민철 기자>20년만에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를 맞는 시스코시스템즈가 스스로 강조한 '디지털화' 실행을 위해 어떤 전략과 움직임을 취할 것인가?

신구 CEO의 대담을 통해 짐작해 본 시스코의 3년 이내 변화는 빠른 의사결정에 기반해 과감한 구조조정과 효율화를 추구하는 형태가 되리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이달초 발표된 임원 교체는 그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세계 각지에서 제품사업 부문 영역, 인력 구성, 임직원의 직제와 의사결정구조의 계층, 크게 2가지 측면의 변화가 예상된다.

척 로빈스 예비 CEO가 지난 8일 오후 샌디에이고 컨벤션센터 강당 중앙무대에서 내놓은 발언에 이를 짐작할만한 단서가 포함돼 있다. 이날 그는 시스코 예비 CEO 자격으로, 시스코 CEO로서 마지막 기조연설을 마친 챔버스와 나란히 앉아 그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 자리했다.

챔버스는 로빈스에게 "나는 CEO로서 의사결정을 어떻게 다르게 할 것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척 로빈스 시스코 예비 CEO. 그는 시스코라이브2015 기조연설이 진행된 지난 8일 오후 샌디에이고 강당 중앙 연단에서 존 챔버스 CEO와 대담을 나눴다.

이에 로빈스는 챔버스에게 "최근의 모든 결과는 시스코의 비즈니스전략이 유효하고 시스코가 꾸준히 혁신해 왔음을 잘 나타낸다"면서도 "3년 후 어떤 게 중시되고 고객이 시스코에게 뭘 기대할지 고려할 때, 시스코는 전례없는 수준으로 혁신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챔버스가 이어 "시스코 이사회나 고객사는 당신이 어느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어떤 차별화 전략을 시도할지 궁금해 할텐데 향후 60~90일간, 그리고 3년간 어느 분야에 집중하겠느냐"고 물었다.

로빈스는 긴 답변을 내놨는데, 이를 요약하면 대충 다음과 같다.

"나는 CEO로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 같다. 빠르게 움직이고 우리가 하는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에 맞게 조직을 개편하는 것이 시스코가 해야 할 일이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할 때 발생할 무수히 많은 기회 속에서도 비즈니스 성장을 꾀하기 위해 우선 순위를 정해 움직일 필요가 있다. 또 복잡한 사업 구성을 단순화 또는 간소화(simplification)하고 저비용 고수익의 높은 운영효율을 지켜나가야 한다."

이후 로빈스는 참석한 기업들에게 조언하는 취지로 "구체적인 디지털화 전략을 세운 다음 조직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개편해 더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면서 "시스코의 조직,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개선해 여러분과 함께 빠르게 변화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 8일 오후 샌디에이고 강당 중앙 연단에서 기조연설 후 대담을 나눈 존 챔버스 CEO와 척 로빈스 예비 CEO.

예비 CEO의 시스코에게 혁신이 필요하다는 언급, 우선순위 중시와 조직개편 예고, 복잡한 사업을 지적하고 단순화를 말한 점, 운영효율을 유지하겠다는 구상이나 마지막 조언에 포함된 발언 등을 종합해볼 때 떠올릴만한 시나리오의 가짓수는 많지 않다.

■제품 부문 개편 가능성

시스코가 복잡하고 방대한 부문별 제품군 가운데 일부 영역을 정리하거나 간소화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시스코의 부문별 매출 구조상 서비스를 제외하면 스위치, 라우터, 협업, 서비스사업자비디오, 데이터센터, 무선, 보안 순으로 비중이 크다. 하지만 데이터센터와 무선 영역은 시스코가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인프라 시장에서 성장을 거두고 있는 유망 분야다.

따라서 일부 사업 정리나 축소가 현실화할 경우, 유력 후보는 제품 부문별 실적이 하락세인 '서비스사업자비디오(Service Provider Video)'나 '기타 제품군(Other Products)'으로 묶이는 분야다. 이들은 2015 회계연도 3분기 실적 기준 전년동기대비 매출 하락을 기록했다. (☞관련기사)

사업 정리와 축소가 실행되더라도, 당장 시스코의 서비스사업자비디오 사업이 통째로 바꿀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로빈스가 CEO 역할을 맡은 이후 계획에 대해 '우선순위'를 강조한만큼, 사업 조정 과정에서 비중이 더 작은 기타 제품군 영역의 개편이 우선시될 수 있다.

지난 8일 오후 샌디에이고 강당 중앙 연단에서 기조연설 후 존 챔버스 CEO와 대담을 나눈 척 로빈스 예비 CEO. 빠른 변화와 의사결정, 간소화, 효율성 등 사업 정리 또는 축소를 암시하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서비스사업자비디오 영역은 아직 시스코 분기 실적에서 8%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분기 매출 7% 비중을 차지한 데이터센터 제품 사업보다 크고, HP나 아루바 등과 경쟁이 치열한 무선랜 제품 사업과 이번 행사에서 대단히 강조한 보안 제품 사업 매출을 합친 비중과 맞먹는다.

디지털콘텐츠관리, 인코더, 디지털브로드밴드딜리버리시스템, 파워뷰, 비디오서비스관리 시스템 등 서비스사업자비디오 부문에 포함되는 제품은 여러가지다. 동떨어졌거나 유독 부진한 제품에 초점을 맞춘 변화가 이뤄질 수도 있다. 기타 제품도 마찬가지다.

시스코는 이전에도 성과가 불충분한 제품군 사업의 일부만 정리하는 식으로 대응한 적이 있다. 협업과 통합커뮤니케이션(UC) 부문의 연계 활용을 위해 5년전 출시했던 업무용 태블릿 '시어스(Cius)'가 대표적이다. (☞관련기사)

시스코는 시어스 출시후 1년간 지금은 SAP에 인수된 사이베이스의 기업모바일 솔루션과 통합을 지원(☞관련기사)하고 미국이나 한국에선 통신사를 통해 단말기 공급을 추진(☞관련기사)하는 등, 기업시장에 확산을 꾀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제품 출시 2년만에 단말기 시장에서 철수했다.

■의사결정구조 간소화

지난 8일 오후 샌디에이고 강당 중앙 연단에서 기조연설 후 대담을 나눈 존 챔버스 CEO와 척 로빈스 예비 CEO.

이달초 시스코의 임원진 교체 예고 역시 변화의 신호탄으로 볼 수도 있다.

로빈스는 공식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CEO 역할이 시작될 시기에 맞춰 함께 일할 '리더십팀' 10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챔버스 CEO와 함께 일해 온 시스코의 중역 3명은 그 직책에서 물러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링크)

로빈스가 지명한 10명의 리더십팀 가운데 9명은 내부 임원이다. 개발 부문 담당과 최고재무책임자(CFO) 역할의 총괄부사장(EVP) 2명과 운영, 최고인재책임자(CPO), 세계영업, 서비스, 최고기술전략책임자(CTSO),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법률고문 등 역할의 SVP 7명이다. 나머지 1명은 외부에서 영입된 성장이니셔티브 담당 부사장(VP)이다.

문제의 중역 3명은 사내혁신, 전략파트너십, 투자, M&A 등에 관여해온 패드마스리 워리어 최고기술책임자(CTO), 서비스부문 담당 임원인 에드자드 오버빅 수석부사장(SVP), 인도 방갈로에 자리한 시스코 제2본사 담당 임원인 윔 엘프링크 최고세계화책임자(CGO)다.

지난 8일 오후 샌디에이고 강당 중앙 연단에서 기조연설 후 대담을 나눈 존 챔버스 CEO와 척 로빈스 예비 CEO.

블로그엔 포함하지 않았지만 개리 무어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사장과 로빈스와 함께 로버트 로이드 세계개발및영업총괄 사장도 회사를 떠나는데, 이들은 로빈스와 함께 시스코의 CEO 후보 명단에 올랐던 임원들이다. (☞관련기사)

흥미로운 지점은 회사를 떠나는 임원은 5명인데 로빈스는 새로운 리더십팀 명단에 10명을 넣었다는 것. 기존 임원의 역할을 후임자에게 그대로 넘기는 일반적 리더십 교체가 아니라, 그 의사결정의 권한을 더 많은 수의 임원에게 분배한 듯한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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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술적으로 볼 때 한 기업에 주어지는 의사결정의 부담이 일정하다면, 권한을 나눈 사람이 많아질수록 의사결정권자 개인에게 돌아가는 부담은 그만큼 줄어든다.

로빈스는 정식 CEO로 취임하기도 전에 새로운 임원진을 구성한 배경을 묻는 챔버스에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문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모든 분야와 의사결정에 빠르게 판단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고 답했다. 단지 '챔버스와 다르게 하기 위해' 주요 의사결정을 위한 리더십팀의 인원수를 늘렸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