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애플 항소심 절반승리…"계속할까, 끝낼까"

배상금 40% 줄여…디자인 특허 포괄적 인정은 불만

일반입력 :2015/05/19 08:52    수정: 2015/05/19 15:32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삼성이 애플과 특허 소송 항소심에서 배상금을 대폭 줄이는 데 성공했다. 애플의 디자인 특허권 침해는 1심 판결 그대로 받아들여졌지만 트레이드 드레스 침해 부분이 기각된 때문이다.

이에 따라 ‘트레이드 드레스’ 관련 부분을 놓고 1심이 열렸던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에서 세 번째 재판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워싱턴D.C에 있는 연방순회항소법원은 18일(현지 시각) 삼성과 애플간 1차 특허 소송 항소심에서 디자인 특허 침해만 인정했다고 주요 외신들과 특허 전문 사이트 포스페이턴츠가 일제히 보도했다.

■ 법원 트레이드 드레스 보호하면 애플 영원한 독점 인정

지난 2012년 열린 1차 소송에서 삼성에 부과된 배상금은 총 9억3천만 달러였다. 이 중 트레이드 드레스 침해와 관련된 배상금은 3억8천200만 달러였다. 이에 따라 삼성이 애플에 지불해야 할 배상금은 약 5억4천800만 달러로 크게 줄어들게 됐다.

트레이드 드레스란 특정 제품의 모양이나 크기, 색깔 등 고유한 분위기를 의미하는 말이다. 1차 소송 당시 애플은 삼성이 둥근 모서리를 비롯한 아이폰 특유의 트레이드 드레스를 침해했다고 주장해 거액의 배상금을 받아냈다. 이번에 항소법원이 기각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이번 재판은 지난 2012년 8월 배심원 평결이 열린 삼성과 애플 간의 1차 특허 소송 항소심이다.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에서 열린 소송에서 배심원들은 삼성이 고의로 애플 특허권을 침해했다면서 10억 달러 배상 평결을 했다.

1심 배심원들은 디자인 특허 뿐 아니라 트레이드 드레스까지 폭넓게 인정하면서 애플에 완승을 안겨줬다. 두 회사간 1심 소송은 2013년 한 차례 더 재판을 벌이는 공방 끝에 최종 배상금 9억3천만 달러로 최종 마무리됐다.

하지만 1심 재판이 끝난 직후 트레이드 드레스에 대해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인정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게 제기됐다. 항소심 재판부가 그 부분을 바로 잡은 것이다.

이날 항소심 재판부는 “애플이 주장한 트레이드 드레스는 스마트폰의 기능과 관련되기 때문에 법적인 보호를 받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특히 “이런 부분까지 법으로 보호할 경우 애플이 그 기능에 대해선 영원이 독점적 지위를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 또 다른 쟁점인 디자인 특허는 1심 판결 그대로 수용

반면 연방순회법원은 디자인 특허권과 소프트웨어 특후권 침해 부분에 대해서는 1심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항소심 판결에서 쟁점이 된 부분은 특정 디자인이나 기능 관련 특허를 침해했을 때도 특허 침해자의 전체 이익을 토해내도록 할 수 있느냐는 부분이었다. 1심에서는 그 부분을 그대로 인정했다. 항소법원도 1심 판결을 받아들였다.

항소심에 앞서 미국 법학교수 27명과 컴퓨터 및 통신산업협회(CCIA)는 1심이 특정 디자인 특허 침해 때도 포괄적인 배상금을 부과한 것은 잘못이라는 의견을 제출했다. 하지만 항소법원은 이 같은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법원은 “법학교수 27명은 현대 사회에서 특정 디자인 특허권 침해 때 피고의 전체 이익을 배상하도록 한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면서 “이 문제는 의회에서 논의해야 할 정책 관련 주장이다”고 일축했다. 법원은 법에 충실해서 판결할 뿐 정책적인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에 대해 특허 전문 사이트 포스페이턴츠는 “CCIA의 주장은 단순히 정책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면서 “그것은 제조물품성(article of manufacture)의 적용과 관련된 문제”라고 주장했다.

제조물품성은 장식성(ornamentality)과 함께 미국 특허법의 주요 보호 대상이다. 미국에선 디자인 특허권을 인정받기 위해선 반드시 표현되는 물품이 있어야만 한다. 도면만으로는 특허를 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재판에 앞서 CCIA는 1심 법원이 물품성을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해석했다고 비판했다. 포스페이턴츠에 따르면 CCIA는 항소법원에 “물품성은 디자인 특허 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서 “그 부품이 포함된 좀 더 큰 기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특히 CCIA는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기도 했다. 즉 1심 재판부 판결은 내비게이션 디자인 특허권을 침해했는 데 차량 전체 가격을 피해보상액으로 부과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삼성 입장에선 항소심 판결로 배상금을 대폭 줄이는 실리를 챙긴 반면 애플은 디자인 특허권을 인정받으면서 명분을 얻게 됐다고 봐야 한다. 최소한 안드로이드 대표 주자인 삼성이 자신들의 디자인을 베꼈다는 주장의 정당성은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 삼성, 분쟁 끝낼까 대법원 상고할까

그렇기 때문에 배상액을 대폭 경감하는데 성공한 삼성이 여전히 디자인 특허권 판결에 대해선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제조물품성에 대한 포괄적 해석에 대해선 만족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삼성이 택할 수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항소심 판결을 수용할 경우 5억4천700만 달러 배상금을 지불한 뒤 기각된 트레이드 드레스 부분을 놓고 1심 재판부에서 다시 재판을 하게 된다.

디자인 특허 관련 판결을 인정하지 못할 경우 그 부분에 대해서만 다시 심리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항소법원에서는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없다. 따라서 삼성은 디자인 및 소프트웨어 특허권 관련 판결에 대해서만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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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선 이번 판결로 삼성과 애플의 대타협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마이클 리치 빌라노바대학 법학교수는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디자인 특허권 부분이 인정됐기 때문에 두 회사간 분쟁의 끝이 가까워졌다”면서 “두 회사가 분쟁을 끝내길 원할 경우엔 협상 테이블이 마련됐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연 삼성은 어떤 선택을 할까? 디자인 특허권에 대해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인정한 부분을 끝까지 물고 늘어질까? 아니면 ‘실리’를 챙긴 선에서 협상을 통해 분쟁을 마무리할까? 어떤 쪽을 택하든 항소법원의 이번 판결은 삼성과 애플 간의 지리한 법정 공방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