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 엣지에 호들갑을 떨었던 이유

기자수첩입력 :2015/05/07 17:50    수정: 2015/05/07 17:50

황치규 기자

연초 MS가 윈도10용 새 브라우저 엣지를 개발중이라는 얘기가 나왔을 때 동료 기자들에게 엣지가 나오면 벌어질 시나리오들을 짚어보는 기획 기사를 주문했다. MS가 주력 브라우저를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 엣지로 바꾸는 것인 만큼, IE에 최적화된 한국의 웹환경은 대혼란이 불가피할 거 같아서였다. 이에 기획을 통해 호환성 대란을 경고하고자 했다.

호환성 대란을 기대했던(?) 기자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취재를 나간 동료 기자들로부터는 기자가 기대했던(?) 대혼란은 없을 것이라는 피드백이 속속 들어왔다. 공공기관이나 기업들이 엣지에 대응을 잘해서가 아니었다. 엣지가 나와도 IE는 계속 제공될 것이기 때문에 사용자 입장에선 엣지로 안되는 서비스는 IE를 쓰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처음에는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니 별일 없을 것 같다는 것이 더 큰 문제 같아 보였다. 엣지가 나와도 한국 사용자들은 IE를 많이 쓰는 민망한 장면이 연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 아닌가? 과거를 유물이 되어가고 있는 IE에 묶인 한국의 웹환경을 보고 있으니, 창조경제의 함성소리가 무척이나 공허하게 들린다.

지디넷코리아 정보화부 기자들이 6일 출고한 4건의 기획 기사는 이런 고민을 담은 결과물이다. 기사를 준비하며 기자들은 전문가들 취재는 물론 서로 간에 많은 커뮤니케이션도 거쳤다. 엣지 테스트 버전을 갖고 국내 주요 웹사이트들을 구석구석 살피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기사에는 담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았던 것 같다. 이 글을 빌어 기사에 담지 못한 기자들의 취재 후기를 공유한다.

김우용 기자, 웹을 다시 생각한다

웹 기술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작년 W3C HTML5 표준 권고안이 완성됐고, 과거에 얽매여 헤어나올 겨를 없었던 MS도 과거를 청산하겠다며, 웹표준에 기반을 둔 새 브라우저를 내놨다. 우리는 온갖 첨단 기술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지만, 온라인이 너무 불편해서 오프라인으로 달려가야 하는 곳에 살고 있다.

그동안 웹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던 건 아닐까. 웹 기술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해도, 전지전능하진 않을 것이다. 십수년전 액티브X가 등장했을 때, 우리는 왜 그토록 열광만 했던 것일까. 분명 완전히 다른 방식도 있었을텐데...

온라인 뱅킹 서비스를 웹 대신 앱으로 전환하는 건 어떨지 생각해봤다. 예전엔 앱을 배포하고 최신 업데이트로 유지하는 게 어려웠지만, 앱스토어의 등장 덕에 앱을 사용자에게 깔도록 하는 일이 전보다 쉬워졌으니 말이다. 그간 한국이 웹에서 걸어온 행보는 확실히 어두운면을 드러냈다. 흥분은 사라지고, 이성이 되살아난 지금. 차분하게 전혀 새로운 길을 처음부터 다시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

손경호 기자, 엣지로 공공사이트 돌아봤더니..

윈도10, 엣지 브라우저로 국내 주요 웹사이트들이 잘 돌아가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은 많은 인내심을 요구했다. 일일이 웹사이트 주소를 입력하는 번거로움을 제외하더라도 지겹도록 본 보안프로그램 설치 팝업창은 과장을 보태 모니터를 부수고 싶은 충동으로까지 이어졌다. 아직까지 국내 보안업계에서 윈도10, 엣지 브라우저와 기존 보안프로그램 간 호환성 이슈는 'IE11을 쓰면 된다'는 블랙홀 같은 답으로 귀결된다.

그렇다고 ‘보안업계는 그동안 뭐했냐’고 지적하기도 머쓱하다. 그동안 덕지덕지(?) 깔렸던 보안프로그램들이 실제로 사용자들을 보호해왔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HTML5를 90% 이상 지원한다는 엣지 브라우저에서 기존 보안기능들을 그대로 구현하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웹표준 환경에서 보안기능을 모두 구현하려는 것 자체가 과욕이라고 보안업계 관계자들은 전한다. 웹호환성을 개선하는 작업과 보안성을 높이는 작업은 사실상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일부 보안회사는 자바 스크립트를 기반으로 웹 상에서 보안성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시장에서 큰 반향을 불러오지는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이전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국내서는 윈도, IE를 많이 쓰기 때문에 여기에 우선적으로 맞춘 보안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방침은 사업자 입장에서는 타당한 말이지만 실제 서비스를 쓰고 있는 사용자들 입장에서는 인내심을 시험하는 일이다.

더이상 액티브X, NPAPI 플러그인을 통한 확장기술을 활용해 보안기술을 구현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뭔가 또 다른 보안해법이 등장해야하는 시점이 무르익었다는 생각이다. 사용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이전보다 편리하고, 안전하게 사용자들을 지킬 수 있는 보안기술을 보는 일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엣지의 등장이 변화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임유경 기자, 엣지에 비친 한국 웹환경의 현실 

 취재를 하면서 MS 엣지가 브라우저 시장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는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이미 IE에 지친 사용자들이 크롬, 파이어폭스로 갈아탈 만큼 충분한 시간이 흘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엣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엣지가 멋지고 훌륭한 브라우저라서가 아니다. 이유는 한국 웹 환경에 너무나 깊숙이 들어와 있는 IE 때문이다.

MS가 IE가 아닌 엣지에 모든 전력을 쏟아 부을 것이라는 예상은 너무나 명백하다. 많은 전문가들은 최근 브라우저가 플랫폼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MS에게 모바일 및 각종 사물에 집어 넣을 수 있는 경량화된 브라우저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여전히 IE에 지나치게 의존적이다. 액티브X 같은 IE종속적인 기술을 걷어 내겠다고 정부도 팔을 걷어 붙였지만 영 속도가 나질 않고 있다. 국세청이 올해 개편한 홈택스 사이트에서 단지 공지사항 게시판을 읽으려고 해도 십여 개의 액티브X를 깔아야 하는 게 한국의 웹 현실이다.

웹 표준 환경으로의 전환은 우리가 미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들이 닥칠지도 모른다. 마치 윈도XP 지원 종료에 우왕좌왕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 시간을 결정할 칼자루를 우리가 쥐고 있지 않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모든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리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임민철 기자, 비표준 웹기술과의 결별은 시장의 요구

마이크로소프트(MS)는 '엣지(Egde)' 브라우저를 만들고 있다. 인터넷익스플로러(IE)와는 완전 별개인 렌더링 엔진을 품고 더 나은 웹 표준, '상호운용성'을 보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MS는 과거 웹의 상호운용성을 떨어뜨린 책임을 추궁당하는 처지였다. PC 운영체제(OS) 시장을 독점한 뒤 윈도와 내장 브라우저 IE로 시장을 장악해 그 비표준 기술이 확산될 수밖에 없었단 식이다.

이제 MS는 IE로부터 온전히 독립된 브라우저를 개발할 방침이다. 더 이상 IE가 짊어졌던 하위호환성 지원에 발목을 잡히지 않을 셈이다. 액티브X와 비표준 렌더링으로 악명 높았던 '과거'와의 단절 선언이다. MS가 인식한 세계 브라우저 시장과 웹 생태계의 요구가 이렇다. 구글과 모질라와 애플과 오페라가 웹표준 지원 역량을 무기로 IE를 몰아세운 세계 시장 관점에서 MS 엣지의 등장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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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국에서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주요 기업과 단체에게 MS 엣지의 등장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듯하다. 잘 굴러가던 웹사이트를 뜯어고치게 만드는 귀찮은 존재로 인식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국서 금융거래나 본인확인을 위해 설치해야 하는 각종 프로그램은 여전히 비표준 기술이다. 이런 프로그램 설치를 요구하진 않더라도 IE 이외 브라우저에선 제대로 볼 수 없는 비표준 웹사이트가 흔하다. 국외 웹 환경에서 보기 드문 이런 상황을 유도한 건 MS 기술에 치우쳐 온 국내 웹 퍼블리싱 생태계의 관성과, MS 플랫폼만을 고려한 보안 기술의 남용을 고착화한 한국 정부기관의 관련 규제로 짐작된다.

그러나 비표준 웹 기술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는 한국 웹 환경은 MS가 엣지를 통해 단절을 선언한 과거의 일부다. MS는 그 책임을 씻기 위해 첫 발을 떼었고, 대한민국 웹은 더이상 그 핑계를 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