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의 삼성, 러시아·일본 뚫어라

루블화 폭락 러시아-외면 받는 日 시장 과제로 떠올라

일반입력 :2015/05/10 11:30    수정: 2015/05/11 09:49

이재운 기자

벌써 1년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해 5월 10일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석에 누운 뒤 1년간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온 이재용 회장의 리더십이 새로운 도전을 맞이했다.

신흥 시장으로 떠오르다 골칫거리로 전락한 러시아 시장과 선대부터 오랜 기간 공략에 공을 들이고도 여전히 고전하고 있는 일본 시장에서의 전략 변화가 바로 그것이다. 호사가들은 ‘이재용 호’에 대한 재평가를 준비하고 있다.

10일 삼성 그룹의 핵심 기업인 삼성전자가 러시아와 일본에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세계 경제 불안’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외부적 요소에 의한, 일본에서는 방향성과 전략 실행 방안에 있어 스스로 시작한 내부적 요소에 의한 변화다.

■아직도 불안한 러시아, 그래도 ‘의리’ 지킨다

러시아의 경제 상황은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유는 바로 원유 가격하락에 따른 루블화 가치 폭락에 있다. 해외 기업들은 러시아에서의 매출액이 자국 통화로 바뀔 때 실적이 하락하는 현상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올 1분기 TV 사업 실적이 다수를 차지하는 CE사업부 실적이 크게 악화돼 4년여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특히 TV를 제외한 생활가전 분야에서 고급형 제품을 중심으로 수익성을 개선했다는 삼성전자의 설명을 참조하자면 그만큼 TV 사업부의 부진은 뼈 아프다. 삼성전자는 러시아와 브라질 등 신흥시장의 수요 부진을 그 이유로 꼽았다.

현재 러시아와 주변 지역을 아우르는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이 TV 사업을 담당하는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0% 수준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사업을 잠시 중단하자는 이야기도 언급되지만 현재로서는 이같은 계획이 없는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러시아 시장에서 쉽사리 영업 중단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유로 ‘인도 시장에서의 학습 효과’를 꼽는다.

1990년대 당시 인도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구가하던 일본 기업들은 본사가 어려워지자 ‘선택과 집중’ 전략에 따라 수익성 확보를 이유로 이곳에서의 사업 축소나 철수를 결정한다. 하지만 이에 따른 배신감에 인도 소비자들은 한국 기업 제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현재 인도 시장에서 한국 가전제품이 일본산을 제치고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다만 러시아 경제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올해 러시아의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4%가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했고, 국제신용평가사 등 일각에서는 마이너스 5%까지도 내다보고 있다. 러시아 내부의 전망도 그리 높지 않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가 서방의 부정적 전망치를 반박하며 내놓은 성장률 전망치도 1.5% 성장에 불과하다.

선대부터 내려온 미션, ‘일본을 뚫어라’

삼성 그룹의 창업주인 故 이병철 회장은 새해 첫 날을 당시 세계 경제의 중심이었던 일본의 서점에서 맞이했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삼성은 현재의 삼성전자를 있게 한 반도체 사업도 일본에서 배워왔고, LCD 디스플레이 기술도 일본 소니와의 합작 법인을 통해 확보했다.

반면 일본 시장에서 삼성전자 제품의 판매량은 신통치 않다. 특히 휴대전화의 경우 소니나 파나소닉 등 현지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강해 전 세계 어디서나 인정 받는 ‘삼성’ 브랜드가 유독 인정 받지 못한 곳이기도 하다.삼성전자는 이같은 상황 해소를 위한 타개책으로 삼성 브랜드를 완전히 배제하고 제품명인 ‘갤럭시(Galaxy)’만 표기하는 초강수를 던졌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 조사에 의하면 현재 삼성전자의 일본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5.6%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이를 두 자리수대로 끌어올리겠다는 심산이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지난달 22일 일본 현지 법인에 최고운영책임자(COO) 직을 신설하고 현지 관련 업계에서 오랜 기간 재직해 온 쓰쓰미 히로유키(堤浩幸) 씨를 영입했다. 쓰쓰미 신임 COO는 일본전기(NEC)와 시스코시스템즈를 거친 인물로, 현지 이동통신 업계에 넓은 인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회사보다 브랜드에 집중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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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장은 역사적 의미뿐 아니라 테스트 베드의 성격도 갖는다. 한국에 이어 통신 환경의 변화 속도가 빠른 곳인데다, 외산 브랜드에 대한 수용도도 낮지 않고 자급제가 활성화된 시장이기도 하다. 또 다양한 수요와 외부 독립 개발자(써드파티)의 활성화 등 관련 산업 생태계가 풍부하고 다양한 점도 특징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중국 시장과 헬스케어, 핀테크 등의 분야에서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여기에 더해 러시아와 일본 시장 대응 등 산적한 현안에 대한 명쾌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