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의 과잉 친절과 '우연한 만남' 실종

데스크 칼럼입력 :2015/04/24 15:18    수정: 2015/04/24 22:18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1. 고해성사 하나 - 오프라인 서점 나들이와 우연한 만남

한 때 교보문고 같은 대형 서점 나들이를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뚜렷한 목적은 없었다. 딱히 찾는 책도 없었다. 그냥 혼자 한 두 시간씩 시간을 보냈다.

오프라인 서점 나들이의 가장 큰 재미는 ‘우연한 만남’이다. 가끔 뜻하지 않은 코너에서 전혀 의외의 책을 만나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그런데 인터넷 서점을 주로 이용하면서 그런 즐거움이 사라졌다. 예측 가능한 책만 주로 만나게 됐다. 뻔한 얘기지만 주로 검색을 통해 책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최근 내 독서의 폭이 좁아졌다는 느낌이 드는 건 그 때문일까? 물론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의외의 책’을 읽는 빈도는 확실히 줄어든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가끔 “다시 서점 나들이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란 생각을 하게 된다.

2. 유식한 얘기 하나 - 선스타인의 ‘여론 쏠림’ 현상 연구

<넛지>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같은 저술로 유명한 캐스 선스타인(C. Sunstein)은 인터넷 공간의 여론 쏠림 현상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리퍼블릭 2.0>에선 흥미로운 분석을 하나 내놨다.

블로그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링크'는 주로 끼리 끼리 이뤄지고 있다는 것.

자신과 상반된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의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기는 커녕, 불편한 의견은 아예 접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때 이후 선스타인의 책을 읽은 적 없어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하지만 모바일과 SNS 시대가 되면서 ’여론 쏠림 현상’은 더 강화될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개인 맞춤형 알고리즘을 통해 보고 싶은 소식만 접하게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검색 최적화를 통해 '보고싶어 할' 결과물을 먼저 노출해 주는 구글이나, 관심 있어 할만한 사람을 알아서 찾아주는 페이스북의 뛰어난 알고리즘 덕분에 우리는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3. 주목해야 할 변화 하나 - 페이스북의 알고리즘 변화

최근 페이스북이 알고리즘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골자는 간단하다. 친한 친구들 글을 더 집중적으로 노출하겠다는 게 골자다. 반면 친구들이 다른 곳에서 활동한 내역, 이를테면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단 것과 같은 행위는 노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알고리즘 변화 소식을 들은 뒤 살짝 걱정이 됐다. 기업들이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의 노출도가 크게 줄어들 것 같아서였다. 게다가 한 달 전 페이스북이 ‘포털형 뉴스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었던 터라 알고리즘 변경 의도가 더 의심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런 걱정을 담은 ‘페이스북 심판의 날이 다가오나’와 같은 글도 썼다.

그 글을 쓴 뒤 “내가 혹시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 아닐까”란 걱정이 살짝 들었다. 아무래도 언론사에 몸담고 있다는 점이 편향된 판단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페이스북의 ‘횡포’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독자들에겐 좋은 일 아니냐”고 반문하는 분도 적지 않았다. 쓸데 없는 소음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나도 일정 부분 그 주장에 공감했다. “친구들이 다른 곳에 가서 댓글 남긴 소식까지 내가 꼭 알아야 할까?”란 생각이 들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선 분명 깔끔해지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 소음들이 주는 효용도 적지 않았다. 그런 소음들을 통해 내 견문을 넓힌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으로 페이스북에서 인연을 맺은 뒤 지금까지 소중한 의견을 나누는 분들도 적지 않다. 내가 '내 친구의 친구'에 관심을 갖는 건 그 때문이다.

4. 걱정되는 얘기 하나 - 개인 맞춤형의 어두운 그림자

여기까지 읽은 사람은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짐작했을 것이다. 난 지금 지나친 맞춤형 서비스가 ‘공론의 실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다시 페이스북 얘기로 돌아가보자. 페이스북에서 친구들의 활동 내역을 지나치게 자세하게 보여주는 데 대해 불편한 적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즐거운 경험이 더 많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접하지 못했을 ’우연한 만남’을 한 경험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연결된 분들도 적지 않다.

이런 경험 때문일까? 난 ‘의도된 만남’ 못지 않게 ‘우연한 만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적지 않다고 믿고 있는 편이다. 내가 뭘 좋아할 지도 미리 알아낼 수 있다는 버즈피드의 알고리즘을 썩 좋아하지도, 신뢰하지도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어제 오늘 페이스북의 알고리즘 변화를 놓고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미디어 쪽에 있는 분들은 ‘페이스북의 횡포’를 걱정했다. 그 진단엔 나도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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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더 우려하는 것은 ‘우연한 만남의 즐거움’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다. 계획된 대로 움직이고, 예측 가능한 사람들과 접촉하는 빈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이 즐거운 일만은 아닐 것 같아서다.

이런 걸 보면 난 분명 아날로그형 인간인 모양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알약 하나로 식사 한 끼 해결해주는” 상황을 썩 반기지 않는 것과 똑 같은 심정으로 ‘내가 좋아할만한 글들만 골라주는 상황’이 반갑지 않은 걸. 식사의 효용이 ’영양 보충’이란 실질적 목적에만 있지 않은 것처럼, SNS나 미디어 소비 역시 ‘정보 습득’이란 실용성에서만 그 가치를 찾을 일은 아니라는 믿음만은 버리고 싶지 않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