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의 미디어 선언, 그리고 여우와 원숭이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데스크 칼럼입력 :2015/04/22 14:31    수정: 2015/06/11 10:03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풍경 하나]

지난 3월 24일(이하 현지 시각). 뉴욕타임스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세계 최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이 뉴스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를 위해 페이스북은 주요 언론사들에 콘텐츠를 달라는 제안을 했다는 사실도 함께 공개됐다.

페이스북이 더 이상 ‘트래픽 리퍼러(traffic referer)’ 역할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우리나라 포털 뉴스와 비슷한 서비스다.

페이스북이 자기네 플랫폼 내에서 뉴스 서비스를 하려는 명분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끊김 없는(seamless) 서비스’ 제공. 페이스북에서 링크를 누른 뒤 별도로 브라우저를 띄우는 게 독자들에겐 불편하다는 것. 두번째는 언론사 사이트 로딩 속도로 평균 8초로 지나치게 느리기 때문에 그냥 자기네 플랫폼에서 보는 게 훨씬 더 편하다는 얘기였다.

더 놀라운 것은 페이스북의 ‘포털형 뉴스 서비스’에 버즈피드 뿐 아니라 뉴욕타임스까지 참여 의사를 밝혔다는 점이다. 워싱턴포스트 역시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풍경 둘]

이번 풍경은 페이스북이 직접 그려냈다. 사용자들이 '아깝게 놓치는 콘텐츠’를 줄여주기 위해 알고리즘을 바꾼다는 소식이었다. 동일인이 올린 여러 개 포스트를 대폭 노출해준다거나, 소통 많은 친구들이 직접 올린 것들을 우선 대우해주겠다는 것들이 바뀐 알고리즘의 골자다.

그런데 정말로 눈에 띄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페이스북은 이날 “친구들이 다른 곳에서 활동한 내역에 대한 노출은 제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테면 친구들이 다른 사람의 포스트에 대해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다는 등의 활동을 한 내역은 뉴스피드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오버랩 되는 우화 하나]

‘여우와 원숭이’라는 일본 우화가 있다. 내용은 간단하다. 어느 산속에 여우와 원숭이가 살고 있었다. 여우는 원숭이와 친해지고 싶다면서 접근해 왔다. 그리곤 왕처럼 대접해 줬다.

그러던 어느 날. 여우는 원숭이에게 꽃신을 하나 선물했다. 꽃신을 받은 원숭이는 뛸듯이 기뻤다. 딱딱한 산길을 걸을 때 한결 편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흘러 꽃신이 다 헤어졌다. 그래서 원숭이는 여우를 찾아가서 “꽃신 새 것을 하나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우는 안면을 싹 바꿨다. “앞으로 꽃신을 얻어 신으려면 내가 시키는 일을 전부 해. 그렇지 않으면 줄 수가 없어.”

깜짝 놀란 원숭이. 하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원숭이의 발바닥은 이미 딱딱하고 곳곳에 가시가 도사리고 있는 산길을 걷기 힘들 정도로 저항력을 상실한 뒤였기 때문이다. 그 때 이후 원숭이는 여우가 기침만 해도 눈치를 보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페이스북의 플랫폼 전략, 그리고 일본 우화]

지난 2012년 상장 당시 페이스북의 최대 고민은 ‘모바일 수익 부재’였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모바일 광고 비중은 전체 광고 매출의 69%까지 치솟았다. 모바일 지진아 페이스북이 불과 2년 여 만에 ‘모바일 우등생’으로 변신했다.

이런 변신이 가능했던 건 ‘뉴스피드’를 잘 활용한 덕분이었다. 티 나지 않게 스폰서 콘텐츠를 잘 끼워넣은 것. 그 이면엔 기업들이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노출도를 조금씩 줄이면서 ‘스폰서 콘텐츠’로 전환한 전략이 자리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언론사들, 특히 버즈피드를 비롯한 미국 신생 언론사들에게 페이스북은 ‘트래픽 노다지’나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이 공유하면서 확산시켜준 덕분에 적잖은 트래픽을 올릴 수 있었다. 그 이면엔 불특정 다수 친구들이 누르는 ’좋아요’나 ‘댓글’을 담벼락에서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확산 알고리즘 역할을 했다. 언론사 입장에선 그 동안 ‘꽃신’을 얻어 신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제 페이스북이 직접 뉴스 서비스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곧바로 알고리즘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물론 둘 사이에 어떤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꽃신을 덜컥 받아 신었던’ 원숭이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생각 하나 - 꽃신 신은 슬픈 미디어]

최근 뉴욕타임스가 ‘모바일 퍼스트’를 선언했다. 그 전략 기조에 따라 다양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페이스북의 ‘포털형 뉴스 서비스’ 동참 의사를 밝힌 것도 그 무렵 나왔다.

처음엔 왜 그랬을까? 의아했다. 하지만 저널리즘도 이젠 ‘노마드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쪽으로 (내 맘대로) 결론을 내려놓고 나니 일견 수긍되는 점도 있었다. 이젠 콘텐츠를 여기 저기 퍼뜨려야 하는 시기가 됐다는 슬픈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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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플랫폼에 올라타는 것이 ‘꽃신을 얻어 신은 원숭이 신세’와 비슷하다는 부분이다. ‘꽃신’을 조금만 바꿔서 만들어도 금방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래서 또 새로운 꽃신에 적응하느라 몇날 며칠 고생을 해야 하는 상황.

페이스북의 알고리즘 변경에 대해선 그들이 공식 발표한 부분 외엔 아는 바가 없다. 그러니 이 글의 절반 이상은 내 상상력의 산물이다. 부디 그 상상력이 잘못된 것이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플랫폼과 미디어, 그리고 일본 우화를 무질서하게 오갔던 이 글을 맺는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