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력 부족한 국가별 통신비 비교 기준

통신비 인하요구, 무엇이 문제인가③

일반입력 :2015/04/16 06:00    수정: 2015/04/16 08:04

단말기유통법 시행 이후 통신시장이 얼어붙었다. 정부에서는 기기변경이나 단말 판매량 수치가 법 시행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고 발표하지만 유통업계가 느끼는 체감경기는 밑바닥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회에서는 이보다 더 파격적인 완전자급제 등의 법안이 발의되면서 단말 유통시장이 더 얼어붙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정치권의 통신비 압박이 객관적 지표나 논리에 의해 제기되기보다 이달 말 치러지는 보궐선거와 내년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겨냥해 전개되는 것 아니냐는 문제도 제기된다. 본지에서는 총 4회에 걸쳐 매번 선거철마다 제기되는 통신비 인하 주장이 무엇이고 실제 세계 각국에 비해 국내 통신비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점검해본다.[편집자주]

‘통신요금이 비싼 건가?, 가계통신비가 비싼 건가?’

소비자들은 말장난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모 개그프로그램의 코너 이름처럼 소위 ‘도찐개찐’ 아니냐, ‘거기서 거기’, ‘오십보 백보’ 아니냐는 지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계통신비와 통신요금은 엄연히 다른 말이다. 가계통신비는 우리가 통신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통신요금과 단말기 비용’을 모두 합한 비용이고, 통신요금은 말 그대로 통신서비스 이용대가, 즉 순수 통신비다. 따라서 가계통신비와 통신요금은 엄격히 구분되는 말이다.

이같은 혼선 때문에, 전 세계 국가별 가계통신비와 통신요금을 비교하는 OECD 커뮤니케이션 아웃룩(Communication Outlook) 결과를 놓고도 매년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바로 가계통신비와 통신요금을 혼용한데 따른 결과다.

OECD 커뮤니케이션 아웃룩 조사자료는 국가별로 상이해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단말 가격을 포함시키지 않거나 심지어 유선 비용을 제외하거나 과거 자료를 제출하기도 한다. 각각의 나라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이 자료를 갖고 OECD 주요국의 통신비가 싸다, 비싸다 한줄로 세우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 한쪽에서는 국내 가계통신비가 비싸다거나 통신요금이 비싸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또 반대쪽에서는 해석이 잘못됐다고 반박한다.

과거 이 같은 논란이 반복되면서 국내에서는 2009년부터 학계와 연구소, 시민단체 등 전문가들이 모여 동일한 기준으로 세계 각국의 통신요금을 비교하는 ‘코리아 인덱스 이동전화요금 국제 비교’를 실시하고 있다.■OECD는 비싸고 코리아 인덱스는 싸다?

지난해 말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문병호 의원은 국회 입법조사처를 통해 조사한 ‘OECD 커뮤니케이션 아웃룩 2013’을 근거로 우리나라 통신비 부담이 매우 크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하지만 당시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2011년 자료를 토대로 우리나라 이동통신비가 세계 1위이고, 2013년 자료는 OECD 33개국 가처분소득 대비 통신비 평균 비중이 2.7%라는 내용만 담겨 있다. 이마저도 2011년 조사에서 4.3%였던 수치가 2.7%로 하락했음에도 이에 대한 구체적 해석은 없다.

반면, 지난달 25일 통신요금 코리아 인덱스 개발협의회가 발표한 ‘2014년 이동통신서비스 요금 국제 비교 결과’에서는 우리나라 통신요금이 비교 대상 11개 국가 중 3~4번째로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11개국은 독일, 미국, 스웨덴,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프랑스 호주 등이다.

비교 기준도 상세히 담았다. 지난해 6월 기준의 음성‧SMS‧데이터(3G/LTE) 사용량을 이용했으며, 국내 이용자의 음성 통화량과 데이터 사용량의 평균값을 기준 삼아 8개 그룹으로 나눠 요금 수준을 분석했다.

또 국가별 물가수준과 구매력의 차이를 반영하기 위해 시장 환율과 각국 통화의 구매력을 비교해 결정되는 환율인 빅맥‧스타벅스 지수와 유사한 PPP환율을 병행 적용했다.

이 결과 우리나라는 LTE요금에서는 4번째, 3G는 3번째, 음성과 SMS는 4번째로 요금이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OECD·코리아 인덱스 비교 결과 외에는

국내에서 코리아 인덱스가 한국판 OECD 커뮤니케이션 아웃룩 조사을 발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총무성에서 비슷한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총무성은 서울, 뉴욕, 도쿄, 뒤셀도르프, 런던, 스톡홀롬, 파리 등 세계 주요7개 도시의 LTE와 3G 요금제를 비교 발표했다.

당시 총무성은 LTE에서는 평균 음성통화량 47분, SMS 338건, 데이터 500MB를 조건으로 비교했을 때 서울이 2천445엔으로 가장 저렴했고, 그 뒤를 이어 스톡홀롬 5천245엔, 뒤셀도르프 6천12엔, 파리 6천12엔, 뉴욕 6천309엔, 런던 6천405엔, 도쿄 7천263엔 순이라고 발표했다. 또, PPP환율을 적용했을 때도 서울이 3천493엔으로 가장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3G의 경우 82분을 통화했을 때를 기준으로 한 조사에서도 서울은 1천410엔으로 최저였으며 PPP 환율을 적용했을 때는 런던 1천553엔, 도쿄 1천578엔에 이어 2천10엔으로 세 번째를 기록했다.

■ 요금 비교 결과 차이나는 이유는

국제 통신요금 비교를 하면서도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가계통신비는 통신요금과 휴대폰 구입비용을 합한 수치임에도 불구하고, 가계통신비와 통신요금을 같은 개념으로 포함하는것이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가 지난 2월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가계동향조사 결과다.

당시 통계청은 조사보고서에서 지난해 우리나라 가구당 연간 통신비 지출이 월 평균 15만400원으로 전년대비 1.6%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 중 통신비는 12만6천300원, 월 휴대폰 구입비용은 2만3천800원으로 나타났다.

세부항목으로는 이동전화요금과 인터넷이용료 등 통신요금이 11.7% 줄어들었으나, 신규 스마트폰 출시등으로 단말기 구입비용이 1.5배 증가했다. 즉, 통신요금에서 차지하는 휴대폰 구입비용이 크게 는 반면, 통신요금은 상대적으로 줄어들면서 전체 가계통신비가 소폭 감소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석은 지난해 4분기 결과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4분기 가계통신비는 전년 동기대비 4.1% 감소한 14만8천원으로 조사됐다. 휴대폰 구입비용은 47.2% 증가했지만 통신요금이 9.5% 감소해 나온 결과다. 14만8천원에서 통신비는 12만6천800원, 휴대폰 구입비용은 2만1천300원이었다.우리나라 이동통신 사용자의 음성과 데이터 사용량이 다른 국가와 비교해 현저히 높은 것도 통신비 지출이 높은 또 다른 요인으로 지목된다. 지난해 시장조사기관인 메릴린치에 따르면, 한국 이용자의 1인당 월평균 음성통화량은 298분으로 일본 127분, 영국 189분, 이탈리아 166분 등과 비교해 거의 2배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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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무선데이터 트래픽 통계에서는 2012년 1월 2만9천748테라바이트(TB)였던 트래픽이 지난 1월에는 12만9천672TB로 3년 새 약 4.4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같은 기간 1인당 트래픽은 480MB에서 2천153MB로 약 4.5배 증가했다. 이는 4G 인프라가 아직 잘 구축돼 있지 않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 사용량이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에서 이동통신 요금인하를 주장하고자 할 때에는 이처럼 세계 각국별로 상이한 통신비 체계는 물론 음성·데이터 사용량에 따른 통신비 등을 다각도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전체 가계통신비 중에서 비중이 큰 단말기 구매비용은 제쳐두고, 순수 통신비만을 문제삼아 일방적으로 통신비 인하를 강제하는데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