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승 원장 “인터넷경제…전문가들 기살리고 격부터 올려줘야"

홍보맨에서 인터넷전문가로 변신

일반입력 :2015/04/03 07:30    수정: 2015/04/03 18:14

“최근 미래창조과학부가 ICT와 기존산업의 융합, 사이버보안 강화를 위한 전담조직 신설이나 사물인터넷, 핀테크 등 인터넷경제 육성 등을 골자로 하는 조직개편의 방향성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가장 최전선에 있는 이들의 기부터 살리고 격부터 올려줘야 합니다.”

죽음의 문턱을 경험했던 탓일까. 주무부처의 조직개편을 평가하는 백기승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원장의 목소리에는 거침이 없다. 산하기관장으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담배로 풀었어요. 손이 미치는 곳 어디에든 담배가 있었지요. 매일 몇 갑씩 피웠습니다. 그 이후로 담배도 끊었고 삶의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당시 열정에 대한 평가일까. 백 원장을 평가하는 꼬리표에는 늘 홍보전문가, 소통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하지만 취임한 지 꼭 반년이 된 그의 말에 묻어나는 것은 조직의 안정, 그리고 그가 이끌고 있는 공공기관의 성격에 맞게 인터넷경제 정책 성공에 대한 희망이다. 물론, 그 바탕은 취임한 이후 지난 6개월간 직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한 결과다. 때문에 그의 말에는 조직에 대한 애착이 뭍어난다. 세세하게 기억하기 쉽지 않은 숫자들도 술술 나온다.

“전체 직원 560명 정도 되는데 349명이 정규직이고 나머지는 모두 계약직입니다. 계약직 비중이 42%에 달해요. 일은 급하게 많아지는데 정원은 늘리지 않고 비정규직으로 채용한 결과죠. 지난 5년간 486명이 퇴사했는데 69%가 정보보호 인력입니다. 그래도 정규직은 40명 정도밖에 안 나갔어요. 결국 이 얘기는 조직에 대한 애착이나 소속감, 자긍심을 주지 못했다는 겁니다. 직원 중 350명 정도가 석‧박사이고 어디에서든 더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직원들이 남아 있을 이유가 없죠. 그래도 떠나는 직원이 있으면 나가기 전에 꼭 미팅을 합니다. 나쁜 감정이 있다면 풀어주고 왜 떠나는지 알아야 바로 잡을 수 있죠. 인터넷 경제를 키우기 위해서는 정보보안이 기초가 돼야 하는데 이들을 안정화시켜주고 격을 높여주는 일이 선행돼야 합니다.”

백기승 원장은 우선 조직의 안정화를 위해 통합 사옥부터 마련했다. 여러 곳에 나눠 있던 직원들이 지난달부터는 한 곳에서 근무한다. 현재의 인터넷진흥원은 이전 정부가 출범하면서 한국인터넷진흥원,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 등 3곳이 통합된 산하기관이다.

“2017년에는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맞춰서 나주로 이사를 가야합니다. 하지만 3곳의 기관이 합쳐졌는데 지난 7년간 흩어져 있었습니다. 또 3개 기관이 통합되다 보니 3개 정부부처를 담당해야 하고 업무도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주로 이전하면 한 번도 한지붕 아래 같이 살아보지 못하고 또 쪼개지게 되어 조직통합이나 분위기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죠. 그래서 일단 합쳤습니다.” ■ 홍보전문가에서 인터넷 전문가로

그가 한국인터넷진흥원장에 임명됐을 때 인터넷 정책과 무관한 홍보업무 경력과 청와대 근무 이력 때문에 낙하산 인사란 지적이 따라붙었다.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인물을 선택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취임 6개월이 지난 그를 만나본 결론부터 얘기하면 인터넷정책에 맥을 짚고 있었고 흐름을 읽고 있었다. 그는 진보와 보수란 개념으로 인터넷 정책을 설명했다.

“과거에는 인권은 진보, 성장은 보수의 전유물처럼 여겨졌고, 이 두 가지가 각각의 영역에 달리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위치에 서 있습니다. 과거에는 진보와 보수라는 관점에서 정책적인 위계나 법제에서도 선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화가 필요합니다. 인터넷 플랫폼의 진보와 성취, 정보보호를 통한 안전한 서비스와 국가 실현은 조화가 돼야 하고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빠르게 미래 인터넷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다소 무겁게 느껴지는 설명이지만 조금 더 들어보면 명료해진다. 결국 얘기의 종착점은 ICT업계의 최대 화두인 협업과 협력, 융합, 연결이다. 미래 먹거리이자 신산업 분야로 꼽히는 클라우드,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이 정보보호, 정보보안 없이 발전할 수 없고, 반대로 정보보호, 정보보안도 동떨어진 채 별개의 산업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는 이를 진흥하는 정부정책도 ICT 산업과 이종산업과의 융합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게 백 원장의 설명이다. 최근 미래부가 조직개편에서 융합과 협업을 내세운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국가경제가 발전, 성장하기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와 협력하고 협업해야 하는 데, 미래 성장동력을 찾는데 보수와 진보의 경계는 더욱 있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는 IoT를 예로 들었다.

“지난해 MWC 행사에서는 IoT의 개념을 설명하는 데 그쳤지만 올해는 정보보안 위에서 구현되는 것까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MWC의 화두 역시 협업과 융합이었고 통신사, 인터넷기업, 제조사, 핀테크를 하는 금융이나 자동차업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업이 이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IoT를 이용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협력을 모색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 보안, 생각을 바꿔라

그는 기업들이 인식하고 있는 정보보호, 정보보안에 대한 쓴 소리도 했다. 통상 기업들이 정보보호나 정보보호를 보험쯤으로 치부하거나 단순히 숫자를 채우는데 급급했던 것에 대한 지적이다. 백 원장은 정보보호나 정보보안이 이제는 개인의 생명까지 위협할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강조하면서 기업에서 정보보호나 정보보안에 대한 인식변화를 주문했다.

“정보보호학회가 설립된 지 25주년이 됐는데 이제는 보안이나 정보보호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고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대표적인 것이 정보보호를 정보화라고 잘못 인식했던 부분입니다. 기업에서는 여전히 전산요원이 정보보안 요원이라고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보보호를 평가하는 잣대도 정보화 예산에서 몇 퍼센트를 차지했다는 잘못된 연결고리로 평가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2년 새 정보보호나 사이버 보안에 대한 인식 변화가 지난 23년 보다 수십 갑절 더 빠르고 충격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이제는 실질적인 위협이 강화됐고 개인의 생명까지 위협할 정도가 됐습니다.”

미래 인터넷, 초연결 시대의 정보보호나 정보보안에 대한 중요성과 산업적으로도 육성해야 될 대상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또 그동안 보안에 대해서는 정부가 수비자로서의 상당한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는 서비스 제공 주체들이 스스로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표하는 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IoT 등의 발전으로 2020년까지 인터넷 접속 포인트가 250억개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고, 500억개가 될 것이라는데도 있습니다. 이는 접속 포인트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공격 포인트가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국가 간의 사이버 공격이나 이슬람무장세력 IS와 같은 테러단체의 공격, 소니 사태 등처럼 어디서 시작됐는지도 모르는 공격이 수많은 대중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정보보안에 대한 피해가 상대적으로 지엽적이고 적은 규모였다면 한 판에 모두 연결돼 있는 향후에는 대량의 피해를 야기하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편리해지기도 하지만 위험성도 높아집니다. 핀테크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어떠한 서비스든 앞으로는 보안이 해결되지 않은 솔루션은 적용돼서는 안 됩니다. 또 보안에 대한 패러다임이나 프로세스, 다양한 지점에서의 리스크를 찾아내는 것이 정부나 기관이 하는 일이라면 이제는 기업들이 각자의 책임을 부여하고 서비스를 개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시장도 형성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 협업이 경쟁력이다

대표적 SW산업으로 인식되는 정보보안 시장을 성장시키고 세계화 할 수 있는 방법론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또 다시 협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계화를 얘기하면서는 국내외 기업의 역차별에 대한 생각도 꺼내 놨다. 백 원장은 과거 대우그룹에 있을 당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신화를 만들어 낸 인물 중 하나다.

“수요를 촉발시켜서 시장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최근 탈 안드로이드화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운영체제나 솔루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우리의 현실은 답답한 상황이죠. MWC에서 갤럭시S6가 호평을 받고 국내 통신사들이 5G 시연을 했지만 뜯어보면 운영체제나 핵심기술은 외국기술입니다. 굵직하고 꼭 가야할 부분에서는 공유하고 협업체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례로 IoT 실증프로젝트가 지자체, 기업, 보안, 기관 등을 묶어 대구는 의료, 울산은 항만, 광주는 스마트그리드 기반의 전기 등으로 특수화시켜 추진되고 있지만 기업 간 협업이나 보안 역량을 제고시키면 시장을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으로 넓혀갈 수 있습니다. IoT 보안의 세계적 흐름을 선도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개별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가서 혁신도시를 둘러봤는데 실질적으로 새롭다고 느낄만한 것들이 크게 없었습니다. 삶에 편리한 장치들이 여럿 있었는데 이미 국내에 있는 것도 있습니다. 오히려 협업하고 마케팅에 조금만 더 신경을 쓴다면 우리가 차지할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인터넷 산업에서의 국내외 역차별 문제는 결론부터 얘기하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법인세 등의 문제는 국제협약으로 풀어가야 합니다. 인터넷 시장은 태생적으로 국경이 없는 비즈니스입니다. 인터넷 기업이 국내 시장에 목맬 수도 없고 우리 기업들이 구글 정도로 성장하고 입장이 바뀌면 다른 얘기가 될 수 있습니다. 국내법으로 과도하게 시장의 비즈니스 모델을 관리하면 안 됩니다.”

■ 인터넷만큼 효율적인 투자 없다

백기승 원장은 좋아하는 음식으로 낙지볶음을 꼽았다. 바쁘게 살다보니 간단히 먹을 수 있어서 좋다는 이유다. 나이에 비해 유독 흰머리가 많지만 염색도 안 한다. 꾸밈이 없다. 굳이 얘기를 덧붙이자면 36세에 임원이 돼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고 싶었다는 얘기가 전부다. 그런 그가 인터넷 경제 활성화나 투자에 대해서는 긴 얘기를 늘어놓는다. 기업이나 국가적으로 인터넷만큼 효율적인 투자가 없다는 이유다.

“국가적으로 세수도 부족하고 미래를 향후 투자라면 집중하는 게 효율적입니다.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얘기한다면 인터넷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것이 없습니다. ICT 기반의 진보적 미래는 변함이 없을 것이고 이것이 인터넷 플랫폼 위에서 일어난다는 것도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이 위에서 돌아갑니다. 여기서 금맥을 만들든 뭐든 해야 합니다. 아울러 운영체제 플랫폼 없이 미래를 맞는 것은 심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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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지막으로 미래 인터넷 시장 선점을 위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확신을 갖고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창조경제라는 것이 조금 시간이 걸리는 프로젝트이지만 투자 없이 나올 수는 없고 확신과 소신을 갖고 추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어 기본 인식에서조차 엇갈리면 곤란합니다. 미래 인터넷 시장 선점을 목표로 합치고 나누고 함께 가야 합니다. 내 입장, 내 영역, 내 것을 다툴 틈이 없습니다. 우리 국민은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인본적 사항과 배려가 DNA에 내재돼 있다고 봅니다. 때문에 우리가 갖고 있는 근본적 자산이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리도 공명이 있어야만 멀리 퍼져 나갑니다. 협업, 융합을 위해서는 지분도 경영이라는 발상을 갖고 전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