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하게 설계된 단통법이 확 꼬인 이유

[데스크칼럼]추후 '돌팔이 개정안' 경계해야

일반입력 :2014/11/10 16:03    수정: 2014/11/11 17:50

뭇매를 맞고 있는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하 단통법)을 굳이 선악(善惡)의 이분법 잣대로 가른다면 악보다는 선에 가깝다.

입법 취지가 친(親) 서민적이고 다수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법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가운데 하나인 ‘가계통신비 인하’를 구현하기 위해 입안됐다. 또 보조금이 불러왔던 ‘소비자 차별’을 해소할 목적도 컸다.

이 법은 그러나 현재 경제 상황과 역행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과 상당히 ‘혁명적’이라는 점에서 후폭풍이 불가피한 것이었다.

두 목적 가운데 단통법이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소비자 차별 해소다. 사전 공시를 통해 가입 요금제 수준에 따라 모두 같은 보조금을 받게 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또한 완벽한 것은 아니다. ‘아이폰6 대란’에서 보듯 공시 보조금 외에 별도로 지급되는 유통망 장려금(혹은 리베이트)을 이용한 소비자 차별 가능성이 여전히 남았기 때문이다. 다만 예전에 비해 차별이 줄어드는 건 분명하다.

문제는 가계통신비 인하다. 혜택을 받아야 할 소비자는 단통법 시행 이후 보조금이 줄어 되레 가계통신비가 더 올랐다며 아우성을 쳤다. 실로 그 후폭풍은 대단했다. 더 큰 문제는 그 이후 정부의 태도다. 여론이 급격히 악화하자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은 “보조금이 생각보다 적다”며 불붙은 소비자의 불만에 기름을 끼얹는 오류를 범했다. 새로 취임한 정부 수장들이 제대로 법을 학습하지 못했던 것이다.

단통법은 그 약자(略字)가 갖는 비운(悲運)의 어감처럼 담당 공무원이 바뀌고 두 부처 수장마저 갑자기 교체되면서 당초 취지에 대한 ‘소통의 단절’까지 겪은 것이다. 주무 부처마저 당초 취지를 잊어버렸다는 이야기다.

이 법은 필연적으로 초기 단계에서 후폭풍이 불가피했다. 당초 법 취지인 가계통신비 인하가 실현되고 소비자가 체감하려면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초기에는 법이 거꾸로 작동되는 것처럼 보일 여지가 충분했다는 이야기다. 이 법의 경우 시장을 활성화하는 게 아니라 냉각시키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경기 침체가 극심한 가운데 정부는 왜 하필 시장을 냉각시키는 정책을 내와야 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높은 가계통신비와 소비자 차별의 원인이 지나치게 과열된 시장 탓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시장을 죽여야만(혹은 안정화시켜야만)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본 것.

자, 그럼, 정부의 당초 시나리오를 다시 검토해보자.

정부는 왜 시장을 죽여야 가계통신비를 줄일 수 있다고 본 것일까. 이 법의 이름에 그 의도가 숨겨져 있다. 이 법은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다. ‘유통구조 개선’이라는 데 방점이 있다. ‘개선’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은 ‘유통점 구조조정’을 뜻한다고 봐야 한다. 유통점이 지나치게 많고 그게 고비용을 유발해 가계통신비 상승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숫자를 줄이자는 게 단통법 핵심 요지다.

이런 논리가 나오기까지의 국내 이동통신 시장을 러프하게 살펴보자.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작년 기준으로 우리 국민의 단말기 교체 주기는 대략 15개월이다. 가입자(중복 포함) 5천500만 명을 기준으로 하면 연간 시장규모는 약 3천만대다. 또 전국에는 약 5만여 개의 이동통신 대리점 및 판매점이 있다. 이들 업소의 평균 재직 인력은 사업주를 포함해 3명이다. 이들 가게의 하루 평균 단말기 개통 숫자는 1.6~1.7개다. 직원 한 명당 이틀에 한 개를 개통하는 상황이다.

또 단말기를 한 대 팔 때 대리점이나 판매점이 일으키는 매출은 평균 24~25만원이다. 유통점의 연간 매출이 7조5천억 원 규모인 셈이다. 보조금은 작년 대당 평균 22만원 규모다. 전체로 환산하면 6조6천억 원이다. 둘을 합치면 14조1천억 원 안팎이다. 작년 전체 이동통신 매출은 24조 원 가량이다. 따라서 이동통신 3사가 챙기는 돈은, 14조1천억 원을 뺀 10조 원이고 이중 2조 원 정도가 영업이익이다.

가계통신비를 내리려면 이 2조 원 중 얼마인가를 떼어내 소비자에게 돌려줘야 하는데 정부로서는 계산이 안 나온다. 가입자당 월 1천 원을 깎아주려면 연간 1만2천 원이 되고, 전체를 합칠 경우 6천600억 원이다. 2천 원을 깎아주면 1조3천억 원이고, 3천 원 일 때는 2조 원이 넘는다. 3천원을 깎아준다 한들 소비자는 요금인하를 거의 체감하지 못하는데 이동통신 3사는 모두 적자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가계통신비 인하도 중요하지만 통신 생태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생각한 게 7조5천억 원 규모의 유통시장 구조조정이다. 이중 3분의 1만 구조조정이 되도 2조원 이상의 재원이 마련되고 이 돈을 요금인하로 돌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문제는 구조조정 될 이들 종사자 5만여 명에 대한 전직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유통점들이 가장 크게 단통법에 반발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단통법이 노린 또 하나의 가계통신비 인하 대책은 단말 가격 인하다. 단말 가격 인하는 시장 경쟁을 통한 자연스런 인하와 시장 냉각을 통한 인한 압박 등 두 가지를 고려할 수 있는데 정부는 후자를 택한 것이다. 연간 3천만대 수준의 시장 규모가 대폭 줄어든다면 제조업체들이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본 것. 또 높은 가계통신비는 잦은 단말 교체를 통한 과소비에도 어느 정도 원인이 있다고 본 것이다.

결과적으로 단통법은 시장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었다. 고액 보조금이 줄어들고 모두 22만 원대로 하향 평준화하기 때문에 단말 판매 시장이 위축돼 제조업체에는 직격탄이 된다. 유통점도 마찬가지다. 이동통신 회사도 고액 보조금과 연결되는 고액 요금제가 줄어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매출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이통사의 경우 단말 판매대수가 줄어드는 만큼 대당 비용 22만원도 같이 줄어든다.

정부는 이렇게 줄어드는 비용을 요금 인하로 연결시키려 했고, 단말기 사용기간 연장 및 가격 인하를 유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문제는 시장 반발이었다. 특히 법 시행으로 크게 손해를 보게 될 유통점에 대한 전직 대책이 준비됐어야 했다. 이는 주무부처인 미래부와 방통위로서만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범부처 차원의 방안이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대책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이에 대한 대책을 준비해야만 한다.

소비자에게는 어떤 대책이든 가계통신비를 크게 내릴 방안이 없다는 점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가계통신비 인하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보조금을 많이 받으면 그만큼 요금을 더 내야 한다는 엄연한 현실만이 있을 뿐이다. 과소비를 줄이려는 소비자 개인의 합리적 소비도 필요하다. 최고 사양 제품 가격을 내리라고 외칠 게 아니라 적당한 가격 제품을 소비해야 하는 것이다.

이 정부가 진짜 가정 경제를 생각한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가계통신인하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무리한 정책을 펴기보다 가장 합리적인 전월세 대책을 제대로 마련해 가정이 더 소비할 수 있는 진짜 구조를 입안해야 했던 거다.

생각해보라. 만약 소비자들이 자장면 값이 비싸다고 아우성칠 때 물가관리 차원에서 정부가 이를 수용해 모든 가게를 압박한다 해서 과연 얼마나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자장면과 통신 비용은 단가가 다르지만 원리는 거의 똑같다. 게다가 단통법 때문에 아우성 치는 이들이 '모든 소비자'는 아니다. 그들은 아무리 많게 잡아야 25% 이하다. 나머지 75%는 손해볼 게 없다.

그럼에도 효과를 보기에 긴 인내를 필요로 한 단통법이 좋은 정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두 가지의 정책을 고민해볼 수 있다.

단통법의 정 반대편에는 ‘보조금 자율화’가 있다. 이 법은 시장 경쟁을 무한으로 촉진해 보조금을 확대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소비자 차별이라는 역효과가 발생한다. 어떤 이(고가 요금제 가입자)는 단말기 가격을 상회하는 보조금을 받고 다른 이(저가 요금제)는 생돈을 다 주고 단말을 사야 한다. 이를 시장의 불가피한 한계로 인정하면 굳이 못할 이유도 없다. 사실 어떤 측면에서는 모두(이통사, 제조사, 유통점, 소비자) 다 이것을 선호한다. ‘소비자 차별’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정부가 개입해 이동통신 서비스와 제조사의 영업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런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도 많다. 서비스는 서비스끼리, 단말은 단말끼리 경쟁하게 해 요금과 가격을 내려보게 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유통 구조를 크게 흔드는 것이기 때문에 좀 더 정밀한 계산이 필요하다.

단통법을 폐지하자니 이 또한 효과를 장담할 수 없어 보이니 지금은 개정론이 득세한다. 방법은 세 가지다. 분리공시 도입, 상한 폐지, 인가제 폐지다. 이중 분리공시는 도입해도 효과를 개선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 분리공시를 한다 한들 보조금이 크게 증가할 수 없고, 오히려 제조사를 위축시켜 보조금은 더 낮아질 가능성이 되레 높다.

상한 폐지와 인가제 폐지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이들 또한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더 악화할 까닭도 없기 때문이다. 상한 폐지는 이 규제 자체가 단통법 하에서는 불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굳이 지속할 필요가 없다. 위에서 말한 대로 상한을 폐지해도 어차피 30만원 이상의 ‘평균 보조금’을 거의 집행되지 않는다. 구태여 이 규제를 유지시켜 욕 먹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또 가능하면 요금 경쟁을 하게 만들어야 되는데 애초 법 취지 효과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요금인가제를 계속 유지할 까닭도 없다. 아무 효과도 없으면서 쓸 모 없는 규제를 아직도 유지해 경쟁만 제한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큰 문제는 누구도 쉽사리 풀기 힘든 20년 묵은 보조금 숙제를, 그것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아마추어 국회의원들이 단죄하겠다고 팔 걷고 나섰다는 데 있다. 그들의 노력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머리는 비어 있는데 소비자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코뿔소 같은 열정일 뿐이다. 장담하는데 그들이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들이 조금 더 차분히 이 문제를 숙고하게 할 필요가 있다.

실로 보조금 정책은 생각보다 난해한 것이다. 분명한 점 하나는 만병통치약이 없다는 점이다. 결국에는 제한된 자원(24조원 가량)을 가지고 세 이해 주체, 즉 이동통신 회사-유통점-소비자가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일 수 있다. 경제도 살리고 소비자 혜택도 증대하는 솔로몬 해법은 없다.

정답은 없고 여러 갈림길에서 선택만 있을 뿐이다.

단통법 유지, 보조금 완전 자율화, 이통-제조 분리 영업(완전자급제) 세 갈래 길 중 어느 하나도 장담할 수 없다면 지금 길을 가는 것도 방법이다. 괜히 대수술을 하려다 더 큰 덧이 날 수 있다. 특히 대수술을 ‘여의도 돌팔이 의사들’에게 맡긴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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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모든 이해 주체가 적당한 선에서 한 발씩 양보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