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이 경쟁 죽여…요금인가제 폐지해야”

시민단체 토로회서 학계 전문가들 주장

일반입력 :2014/10/16 13:20    수정: 2014/10/16 13:20

이재운 기자

“정부가 경쟁을 막아 소비자 후생이 줄었다.” “유일한 경쟁수단인 보조금 규제는 결코 답이 아니다.”

학계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정부의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유일한 경쟁 요소를 제한해 오히려 소비자 편익을 저하시켰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요금인가제 폐지라는 대안을 제시했지만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뒤따랐다.

시민단체 컨슈머워치와 바른사회시민회의는 16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단말기유통법 해법 모색 토론회’를 갖고 단통법이 가진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토론했다.

■예측 가능한 일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큰 '죄'

발제를 맡은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는 “세상에 우연은 없다”는 말로 운을 뗐다.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일사불란하게 밀어 붙이더니, 지금도 뭘 잘못 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며 당국을 비판한 조 교수는 “단통법 사태는 ‘예견된’ 사태였다”고 지적했다.

단통법의 당초 취지인 보조금 차별 철폐라는 명분은 좋았지만, 이러한 “목적에 포획된 결과”가 지금의 시장 혼란과 침체로 이어졌다는 것이 조 교수의 분석이다. 주식 시장에서 누구는 비싼 가격에, 누구는 낮은 가격에 매수한다고 이를 차별이라고 부르지 않듯 단말기 유통시장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단통법 발의와 시행과정에서 처음부터 우려의 목소리를 냈던 토론회 참가자들은 결국 정책 입안자와 입법부가 제대로 된 검토 없이 무작정 밀어 붙여 시장을 오히려 왜곡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조 교수는 “예측 불가능한 것을 예측하지 못하면 죄가 아니지만, 예측 가능한 것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큰 죄나 다름없다”라고 발언했다.

참가자들은 “보조금 규제는 단말기 유통 시장의 ‘유일한 경쟁수단’인 보조금을 제한해 모두가 담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과점시장에서 기업은 경쟁사의 선택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한 기업이 가격을 내리면 다른 기업도 따라서 가격을 내리게 된다. 이 경우 시장 내 모든 기업의 부담이 커진다. 반면 모두가 가격을 내리지 않으면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통법은 보조금 액수에 대해 1주일간 미리 고시하고 이를 변경할 수 없도록 했다.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는 이를 “도박판에서 패를 미리 다 보여주라고 강요하는 행위”에 비유했다. 상대방과 자신의 패를 모두 아는데 어떤 참여자가 판돈을 걸 수 있겠냐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정부가 기업들에게 오히려 각본을 짜주는 꼴이 됐다”고 표현했다.

단통법, 제조사에도 악영향…경쟁 유도할 대안 모색해야

단말기 제조사와 이동통신업계 후발주자가 큰 피해를 볼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송정석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시장의 얼리어답터 성격을 가진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신제품을 구매한 것이 현재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제조사의 경쟁력 원천이 됐다”며 “여기에는 높은 보조금이 젊은 소비층의 구매를 도와 가능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보조금을 30만원 수준으로 제한하고, 이마저도 과점시장 특성으로 인해 10만원대에 그치면서 얼리어답터 소비자들의 구매를 저하시킨다”며 “이러한 흐름은 결국 국내 제조사들이 내수 시장이라는 테스트 베드를 가질 수 있었던 장점을 상실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향후 스마트폰의 사양이 더 좋아지면 가격이 올라갈 텐데, 얼마만큼 상한할지 상한선에 대한 고민도 부족해 보인다”며 “1년 단위로 신제품이 출시되는데 출시 15개월 내의 제품에 대한 보조금 상한선을 정해버리면 제조사가 신제품 출시 일정을 잡기가 너무 어렵다”고 덧붙였다.이 교수는 팬택과 LG유플러스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팬택처럼 유동성 위기가 오면 적자를 봐서라도 제품을 팔아야 하는데, 보조금 상한선이 있으니 도저히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 “통신업계 후발주자인 LG유플러스가 LTE-A에 대한 선제적 투자와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경쟁을 촉진했는데, 보조금 규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으면 결국 선발주자에게만 유리한 상황이 초래된다”고 전했다.

조 교수는 “정부가 단통법이 잘 안 되자 희생양을 찾으면서 (애꿎은) 국내 제조사에게만 화살을 돌리고 있다”며 “실패를 인정하고 거기서 배울 줄도 알아야 한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단통법을 큰 폭으로 개정 내지는 폐지하고, 대신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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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참석자들은 요금인가제 폐지를 통해 이동통신사업자가 통신요금 인하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장이 점차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는 만큼 보조금 규제보다는 요금 인하에 나서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조 교수는 “소비자들은 과거에 냈던 가격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현재보다 통신비가 높아지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교수는 의견을 다소 달리했다. 그는 “3개월 내 해약 제한 등 통신사업자를 위한 특혜 성격의 일부 규정을 철폐하고 품질경쟁을 유도해 소비자 선택권을 넓혀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