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 없는 국내 큐레이션 서비스

전문가 칼럼입력 :2014/10/15 10:08

김승열
김승열

지인 : “핀터레스트(Pinterest)의 열기는 얼마나 계속 될 수 있을까?

필자 : “그건 남성의 시각으로 예측하기는 힘들고 여러 변수가 있을거야. 하지만, 새로운 큐레이션 서비스가 계속 등장하고 성장할 거라는 확신은 들어.

지인 : “그렇다면 핀터레스트가 국내에서도 잘 될까?

필자 : “쉽지 않을걸. 대신, 국내만의 큐레이션 서비스가 등장하겠지”

2년 전 쯤, 필자와 지인이 나눈 대화다. 돌이켜보면 개인적인 예측이 어느 정도 들어맞은 셈이 되었다. 핀터레스트는 ‘큐레이션’이라는 다소 생소한 주제를 가지고 혜성과 같이 등장한 소셜 서비스이다. 당시, 직원이 25명에 불과한 조그마한 스타트업이었지만 타임이 선정한 2011년 50대 주요 웹사이트 중 하나로 선정되었고 역대 개별 사이트에서 가장 빨리 1천만명(월 UV기준)을 돌파할만큼 무서운 성장 속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뜨거운 열기는 국내에도 전달되어 관련 도서도 등장했고 컨퍼런스서도 핀터레스트는 단골 주제가 되었다. 필자도 기회가 되어 큐레이션 서비스만의 매력과 성장 가능성에 대해 몇차례 발표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현재의 상황을 살펴보면 역시나 국내 사용자들의 핀터레스트에 대한 관심은 빠르게 사라졌다. 핀터레스트의 매력에 빠져들어 매일같이 방문하던 필자도 혼자서만 'Pin It’을 하는 것이 재미가 없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핀터레스트의 최근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시장조사업체 퓨리서치의 보고서에 의하면 작년미국 SNS 시장에서 핀터레스트의 점유율은 21%이다.18%를 차지한 트위터보다 높고 2위를 차지한 링크드인(22%)와도 근소한 차이다.

핀터레스트가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 받는 것은 모바일 친화력이 높기 때문이다. 어도비시스템즈가 최근 발표한 '2014 모바일 벤치마크 리포트(2014 Mobile Benchmark Report)’에 의하면 핀터레스트는 모바일 브라우저를 통해 64%의 유입을 이끌어 내며 모바일 유입이 가장 높은 소셜 서비스로 조사됐다.

해외에서 이렇게 큰 성장을 보이는 서비스가 국내에서 유독 힘을 쓰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국내 웹생태계의 다양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큐레이션’의 본질은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개인의 취향을 분석해서 꼭 필요한 정보만을 정제해서 보여주는 것에 있다. 큐레이션 서비스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풍성한 웹생태계와 다양한 정보들이 전제가 된다. 하지만, 국내 웹생태계는 대형 포털 서비스 몇개가 장악하고 있고 나머지 사이트는 포털 검색에 의존하거나 불모지 중에 하나이다.

특히, 대표적인 검색 포털인 N사의 점유율은 70%를 넘어가고 있을 정도로 쏠림현상이 심하다. 이렇게 상황에서 핀터레스트와 같은 큐레이션 서비스가 성장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포털 서비스가 제공하는 북마크나 구독서비스들을 전문 큐레이션 서비스와 비교를 해보면 기능적인 차이가 거의 없다. 콘텐츠의 매력 역시 마찬가지이다. 본인의 관심사와 관계된 웹페이지를 ‘Pin It’을 해서 지인에게 추천해보지만 전문 운영자들이 큐레이션해서 만들어내는 포털 서비스의 메인페이지보다 주목을 받지 못한다.

국내 웹페이지의 기술적인 구성 또한 성장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대형 포털의 일부 서비스는 페이지 이동을 하더라도 주소가 바뀌지 않는다. 과도하게 아이프레임(iFrame)을 남발하는 경우도 많아 실제 콘텐츠의 내용과 웹페이지 주소가 일치하지 않는다. 외부 서비스가 자사 콘텐츠에 임의로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폐쇄적인 구조로 만들어 놓은 탓이다. 덕분에 카페나 블로그 쪽의 웹페이지를 핀터레스트에서 ‘Pin It’을 하려고 하면 ‘죄송합니다. 이 사이트에는 핀할 수 있는 이미지가 없습니다.’라는 에러 메시지를 자주 마주치게 된다. 전체적인 서비스 트렌드는 큐레이션이 강화되고 있는데 위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국내에서는 독특한 방식으로 발전되고 있다. 인기있는 영상이나 이미지를 재조합해서 새롭게 만들거나 해외 미디어를 번역해서 제공하는 서비스들이 ‘큐레이션 서비스’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다. 주로 모바일 전용앱이나 페이스북 페이지, 카카오 스토리채널 등을 통해 제공되고 있다. 아쉽게도 이러한 국내 큐레이션 서비스들은 커다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핀터레스트로 통칭되는 전문 큐레이션 서비스들은 ‘동반 성장’이 가장 큰 매력이다. 웹사이트 조사 기업인 쉐어홀릭( https://shareaholic.com/) 의 보고서에 의하면 올해 6월 기준으로 전체 웹트래픽의 5.72%가 핀터레스트를 통해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올해 3월 7.1%에 비하면 다소 하락하기는 했으나 3위인 트위터(1.03%)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이다. 즉, 'Pin It’되는 콘텐츠는 핀터레스트를 통해 노출되고 결국 트래픽 상승 효과를 이루어낸다. 해당 사이트에 방문한 사용자는 다른 양질의 콘텐츠를 다시 'Pin it’을 통해 핀터레스트를 풍성하게 하는 선순환을 가져오게 된다.

관련기사

하지만, 국내의 기형적인 큐레이션 서비스들은 이러한 선순환 효과를 전혀 가져오지 못한다. 저작권을 무시하고 콘텐츠를 생성할 뿐만 아니라 방문을 하는 사용자들을 원본 링크로 보내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큐레이션 기업들에 대해 여러 전문가들이 쓴소리를 했지만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 오히려 언론들은 인터뷰를 통해 성공 사례로 소개하고 있을 정도이다.

불법적인 국내 큐레이션 기업들은 기형적인 국내 웹 생태계의 환경과 생산자에 대한 홀대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며 없어져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웹 생태계가 보다 풍성해지고 개방되면서 자연스럽게 전문 큐레이션 서비스들이 생겨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웹서비스들이 동반성장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승열 IT컬럼니스트

모바일왕국을 꿈꾸는 변방의 블로거로서 모바일 게임, 서비스, 브라우저, 스마트폰 플랫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해 왔다. 현재는 국내 대기업에서 신규 모바일 서비스 전략과 기획을 담당하고 있으며 플랫폼 전문가 그룹(PAG)의 Board Member 이기도 하다. 개인 블로그는 http://www.mobizen.pe.kr이며, 트위터는 @mobizenpekr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