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런 단통법, 보완책은 무엇인가

요금인가제 폐지 등 경쟁유도책 추가돼야

일반입력 :2014/10/13 07:15    수정: 2014/10/13 07:17

정책과 시장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정책당국의 탁상행정과 국회의원들의 업적(?)쌓기식 밀어붙이기 입법이 빚은 참사다. 그러나 시장 구성원간 불신을 초래하며 소비자를 골탕 먹이는 정책이 오래 지속될 리 만무하다. 시장에 대한 불신은 결국 패닉과 파국만을 초래할 뿐이다.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시행 열흘 하고도 삼일째다. 시장은 통신비 절감은커녕 되레 스마트폰 구매가만 크게 올려놔 소비자 부담만 늘었다는 불만이 가득하다.

정부의 이통사 보조금 규제에 따라 오히려 예전보다 비싼 가격에 제품을 구매하는 기현상만 초래했다는 게 핵심이다. 당초 과열된 보조금 경쟁을 바로 잡아 가계통신비 절감으로 연착륙시킨다는 정책당국의 단통법이 늦가을 통신 시장을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된서리가 된 셈이다. 최신 고가폰은 말할 것도 없이 과거 공짜로 구매했던 구형 단말기까지 비싸게 사야 하니 성난 민심은 하늘을 찌른다.

소비자와 시민단체들은 벌써부터 보름도 안된 단통법 폐지를 거론하고 있다. 그만큼 단단히 뿔이 났다. 전 국민을 호갱님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통사에 뒤통수 맞았다 저가의 중국폰을 직구로 공동 구매하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한 마디로 '(정부가) 모두가 비싸게 스마트폰을 사는 시장을 만들어 놨다'며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줄어든 보조금에 손님이 뚝 떨어지자 유통점도 울상이긴 마찬가지다. 이달 1∼7일 신규·번호이동·기기변경 가입건수는 모두 17만8000건. 이중 하루 평균 가입자수는 약 2만8500건 정도다. 지난달 판매량인 6만4000건의 절반도 안되는 수준이다. 지난 10일 용산 테크노마트 상우회는 생업을 위협받고 있다며 이통 3사를 항의 방문했다.

유통 시장이 혹한기로 돌아서자 단말기 제조사들도 곡소리를 내고 있다. 단통법 시행 후 판매량이 절반 이상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해외 시장에서 가격 경쟁에 직면한 제조사 입장에선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제조사들은 단통법 시행의 역효과가 스마트폰 출고가 인하 압박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자 '이러다 쪽박 차는 거 아니냐'는 위기감마저 느끼고 있다. 이미 국내외 스마트폰 마진과 판매단가(ASP)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출고가 인하는 가뜩이나 죽을 쑤고 있는 실적 악화를 부채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유통-제조사가 이처럼 된서리를 맞고 있는 반면 이통사는 상대적으로 여유 있다. 이통사 입장에선 보조금이 줄어들다 보니 예전보다 마케팅 비용이 크게 절감되는 효과를 얻고 있다. 또 굳이 돈 들여 남의 가입자를 빼앗아 오지 않아도 현 가입자만 유지하면 크게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게 속내인 듯 보인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이통 3사가 단통법의 최대 수혜자가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투자증권이 최근 내놓은 단통법 보고서를 한번 들여다 보자. 이에 따르면 법 시행으로 올해 이통 3사의 영업이익은 2조3367억원, 내년엔 4조7271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거의 두배가 뛰는 셈이다. 하반기에만 이통 3사의 합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대비해 35.5%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다. 또 보조금이 1만원 내려가면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의 순이익은 각각 3.7%, 8.3%, 9.5%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고 추산된다.

구성원 어느 일방이 불행한 시장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특히 소비자가 불행하다면 더욱 그렇다.

현 단통법의 가장 큰 폐해는 통신시장의 경쟁환경을 저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한 이통 3사간 시장 고착화가 더욱 굳건해지고 오히려 담합을 부추기는 꼴이다. 오죽하면 단통법을 두고 '단기간에 통신사업자 배 불리는 법'이라고 비아냥거릴까.

물론 단통법 시행 후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조금 경쟁에 따른 시장의 과열을 식히고 고가폰 위주의 단말기 유통질서를 개선하는 데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된다. 기기변경 가입자나 중고폰 가입자도 보조금에 상응하는 12%의 요금할인을 받는 등 부각되지 못한 측면도 존재한다. 그러나 단통법 역풍이 시장을 무겁게 짖누르고 있다.

단통법 개선을 위한 보완책은 보조금 인상에 있지 않아 보인다. 과거와 달리 모두에게 균일하게 보조금을 나눠 줘야 하는 이통사가 총액을 늘리기 쉽지않다. 결국 가계통신비 절감이라는 실질적인 정책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이통 3사간 서비스 경쟁을 통한 요금인하를 유도해야 한다. 제조사들 역시 기술경쟁을 통해 제품 가격인하에 노력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없다.

그럼 정책적 선행 요건을 따져보자. 보조금 경감으로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이통 3사의 요금인하를 먼저 유도하는 게 일의 순서일 것이다. 시장이 반토막 난 제조사에게 출고가를 낮추라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진다.

단말기 가격은 시장 축소가 이대로 지속되면 자연스레 떨어질 게 뻔하다. 안 팔리는 제품을 언제까지 재고로 안고 갈수 없는 노릇이다. 또 국산폰이 비싸면 저렴한 외산폰으로 갈아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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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장치 산업인 통신 요금은 다르다. 단말기는 바꾸지 않아도 요금은 매달 꼬박꼬박 내야한다. 또 국내 가입자가 이통 3사 말고 다른 어느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겠는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비롯해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가 거론되고 있는 이유다.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이 통신요금을 인가받도록 한 요금인가제(현행 법으로도 요금인하는 신고만 하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지만)가 오히려 요금경쟁을 저해하고 있다는 주장이 각계에서 제기된다.

이통 3사가 단말기에 서비스를 끼워팔고 있는 구조에서 통신비 거품이 단말기에 끼어있는지, 요금에 끼어있는지는 전문가도 콕 집어내기 어렵다. 또 이를 놓고 언제까지 핑퐁 게임만 할 수는 없다. 그러기엔 소비자의 피해가 크다. '요금인가제 폐지' '단말기 완전자급제' 등 공정한 시장 경쟁을 위한 즉각적인 단통법 개정안 논의가 시급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