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공시, '상위법 위배' 덫에 걸려 좌초

최경환 부총리 발언이후 급반전

일반입력 :2014/09/24 11:32    수정: 2014/09/24 15:25

10월부터 시행되는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하 단통법) 하부 고시에서 이동통신사 지원금과 제조사 장려금을 구분해 공시하는 분리공시가 제외됐다. 이통 서비스가 결합된 단말기를 구입할 때 이통사 보조금과 제조사의 판매 장려금을 구분할 수 있는 장치가 차단되면서, 단통법 시행에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는 2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회의를 열고 단말기 유통법에서 분리공시를 제외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기존 보조금 공시와 관련된 고시안에서 분리공시의 근거를 담은 한 조항 문구만 빠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단통법은 10월1일부터 주요규정인 분리공시가 제외된채 시행되게 됐다.

단통법에서 분리공시가 제외됨에 따라, 그동안 강력하게 분리공시안을 강조해온 이동통신사와 국회 야당, 시민 소비자 단체의 반발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분리공시 없이는 반쪽짜리 법안이란 오명도 피해가지 못할 전망이다.■ 법제처 “분리공시, 상위법 위배” 유권해석이 치명타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법제처가 상위법인 단통법에서 규정한 내용에 위배되는 하위 고시안이라고 유권해석을 내린 것이 규개위 결정에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법제처의 유권해석은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가 분리공시 도입 여부를 검토할 때, 이를 반대해온 삼성전자가 주장한 논리와 맥을 같이한다. 단통법 총론에는 제조사별 장려금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총액 자료만 제출하기로 했는데, 분리공시라는 하위 고시안을 새로 추가하면서 충돌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실제 단말기 유통법 12조는 이통사의 판매량과 출고가, 매출액, 지원금, 대리점과 판매점 지급 장려금 규모 등을 대통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미래창조과학부와 방통위에 제출하게 돼있다. 당초에는 제조사별 지급 장려금 규모는 회사별로 알 수 없고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모든 제조사의 장려금 총액을 제출키로 했다.

반면 분리공시 내용이 시행될 경우 소비자가 통신서비스가 결합된 단말기를 구입할 때 제조사의 개별 장려금 규모를 알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단말기별 장려금 규모가 파악되면 해외 이통사에 같은 장려금을 제공해야 하고 단말기 한대당 1만원으로 계산해도 5조원에 이르는 국가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업기밀 누출로 글로벌 경쟁력 약화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 기재부 산자부, 분리공시에 반기

방통위 내부에서도 분리공시 도입 여부를 논의를 시작할 당시, 적지 않은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하지만 미래부의 적극적인 요청과 이동통신3사의 필요성 제기에 따라 관계자 의견 청취 등 2차례의 비공개 회의로 분리공시 도입에 합의를 모았다.

분리공시를 도입할 경우 소비자 실익 증가에 보탬이 되고, 왜곡된 휴대폰 유통시장에서 보조금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투명하게 집행한다는 단말기 유통법 입법 취지에도 맞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방통위 고위관계자는 “통신시장 과열의 원인과 책임을 이통사와 제조사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 일탈행위 규제와 시장 안정을 용이하게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상황은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국내 기업의 해외 영업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분리공시를 배제하는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최 부총리 이외에 산업통상자원부도 이에 동조했다. 때문에 분리공시 도입 논란이 미래부, 방통위와 기재부, 산자부간 파워게임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 분리공시 지지 측 반발 거세질 듯

규개위의 결정에 따라 방통위는 이날 오후 전체회의를 열어 분리공시 내용이 담긴 문구를 빼고 단말기 유통법 하위 고시안을 확정 의결할 예정이다. 당장 법 시행 6일을 앞둔터라 이마저도 빠듯한 일정이다.

당장 이동통신3사는 “소비자들에게 명확한 알 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분리공시 도입이 무산돼 안타깝다”며 “정부가 어렵게 만든 단말기 유통법이 내세운 가계통신비 인하나 투명한 유통질서 확립이 가능할지 우려된다”고 입을 모았다.

단통법 시행에서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분리요금제 시행이다. 분리요금제는 기존 단말기를 이용하거나 중고폰, 자급제 단말기로 통신 서비스에 가입할 때 보조금에 상응하는 요금을 할인하는 내용이다.

통신사 한 관계자는 “보조금이 이통사 재원과 제조사 재원으로 나뉘어 있는데 제조사 장려금 규모를 숨긴체 분리요금제를 시행할 경우, 보조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액을 기준율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계산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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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통법 핵심사항인 분리요금제까지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통신사 관계자는 “분리공시 도입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새로운 규정이라도 있어야 분리요금제의 원활한 시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규개위 결정 하루 앞서 분리공시 도입을 적극 주장한 새정치민주연합 측도 단통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을 경우, 규개위를 비롯한 정권으로 그 책임을 물을 태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