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프트에 비친 애플의 생태계 확장 전략

김정 NHN넥스트 교수 인터뷰

일반입력 :2014/07/14 18:24    수정: 2014/07/14 18:48

황치규 기자

애플이 지난달 개최한 세계 개발자 컨퍼런스(WWDC)는 그 이름답게 일반 사용자보다는 개발자가 관심을 가질만한 뉴스들이 대거 쏟아졌다.

이번 WWDC는 예전과 달리 하드웨어 신제품은 하나도 선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SW와 개발툴에 초점이 맞춰졌다. 아이폰이나 맥북 신제품을 기대했던 일반인들은 이게 뭐야? 했을지 모르겠으나 개발자들에겐 애플의 자신감이 그 어느때보다 강하게 드러난 행사로 비춰졌다.

스티브 잡스가 죽고, 팀 쿡이 애플 사령탑을 맡는 과정에서 나타났던 어수선함은 많이 사라지고, 뭔가 장기적인 그림을 갖고 판을 크게 짜려 한다는 냄새가 많이 풍겼다는 것이다.

아이폰 점유율이 10%도 안되는 한국에선 WWDC에서 새로 나온 소식들은 남의나라 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이번 WWDC에서 공개된 애플의 메시지는 의심심장한 것들이 많다. 꼼꼼이 뜯어보면 개발자 생태계에 큰폭의 변화를 예고하는 이슈들이 꽤 엿보인다.

자타공인 애플 마니아인 NHN넥스트의 김정 교수 역시 WWDC에서 공개된 애플의 메시지들을 진지하게 살펴볼 것을 주문한다.

2010년부터 올해까지 5년연속으로 WWDC에 직접 참가한 김 교수는 올해 컨퍼런스를 통해 애플이 자사 개발자 생태계의 규모를 확 키우려 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고 한다.

헬스케어, 스마트홈, 클라우드에 이르는 IT인프라에 걸쳐 스마트폰과 태블릿에서와 같은 개발자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것은 물론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를 쓰는 개발자들을 애플쪽으로 끌어들이려 는 양적 팽창 전략도 구체화됐다는 것이다.

애플이 WWDC에서 새로 선보인 프로그래밍 언어 스위프트를 두고 하는 말이지 싶다.

스위프트는 애플이 오브젝티브C 이후를 겨냥해 내놓은 프로그래밍 언어다. 맥OS X와 iOS를 지원하며 함수형과 객체형 프로그래밍 언어의 중간 지점에 있다. 스크립트 언어여서 컴파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애플은 왜 스위프트를 내놨을까? 애플은 스위프트를 앞세워 프로그래밍 언어 세계에서 좀 더 힘을 갖고 싶어하는 듯 하다.

김 교수는 스위프트는 클로저나 리스프, 자바 스크립트, C샵의 장점들만 흡수해 개발자들이 넘어올수 있는 쉬운 계단을 하나 만들었다면서 지금은 맥OSX나 iOS용인데, 지원하는 플랫폼이 확장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애플이 광범위한 플랫폼을 겨냥해 스위프트를 내놨다는 얘기다.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를 쓰는 개발자들도 스위프트쪽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오브젝티브C는 나온지 30년이 되다보니, 새로운 언어를 도입할 시점이 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주변에서도 스위프트를 해보고 싶다는 이들이 있다고 전했다.

오브젝티브C 쓰던 개발자들이 바로 스위프트로 바꿔야할까? 장기적으로는 쓰기는 써야겠지만 지금 당장 꼭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인다.

김 교수는 특정한 부분은 아직 스위프트로 할수 없는 것들이 있다'면서 스위프트를 도입하게 되면 오브젝티브C와 병행해 써야 하는 부담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괜찮을 것 같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스위프트에는 개발자 생태계 확산 그 이상의 비전이 담겼다. 맥 OS X와 iOS에 있는 콘텐츠간 사용자 경험(UX)까지 융합시키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김 교수는 iOS와 맥 OS X는 닮아가면서 각자 발전하고 있다면서 OS만 닮아가는게 아니라 개발환경이나 앱들도 그렇게 움직이고 있으며, 이렇게 되면 락인(Lock-in)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눈에 비친 이번 WWDC는 애플이 어디에 집중할 것인지 분명하게 드러난 행사였다. 애플의 자신감도 진하게 풍겼다. 김 교수는 지난 1년간 애플 개발자들을 엄청 바빴다. 이번 WWDC는 그걸 다 보여준 행사였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애플이 보여줄 '거리'는 아직도 남았다. WWDC에선 SW만 보여줬던 만큼, 하반기에는 하드웨어를 갖고 바람을 일으킬 것이란 얘기다. 김 교수는 애플은 지금 6개월마다 SW와 하드웨어를 새로 내놓으면서 달릴때까지 달려보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국내 개발자들이 애플이 WWDC에서 던진 메시지들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IT시장에서 아이폰은 마이너가 됐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안드로이드가 차지하는 점유율은 90%를 훌쩍 넘는다. 애플은 한자릿수 점유율이다. 아이폰이 힘을 쓰지 못하다보니 국내 iOS 개발자 생태계도 대폭 축소됐다. iOS 개발자 뽑는 회사들도 크게 줄었다.

카카오가 게임 업체들에게 안드로이드와 iOS 동기 개발 조건을 풀면서 안드로이드로의 쏠림현상은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개발자 5명으로 이뤄진 팀이 있다면 3명은 안드로이드하고, 한명은 아이폰 개발과 서버 담당을 같이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한국과 애플 개발자 플랫폼간 거리가 갈수록 멀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iOS 생태계가 이렇게까지 축소된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국 시장에 대한 애플의 성의 부족도 결정적인 이유고, 한국을 홈그라운드로 가진 삼성전자의 영향력도 한몫 단단히 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맞물려 한국 모바일 시장은 안드로이드를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곳이 됐다. 글로벌을 무대로 뛰는 기업이 아니라면 iOS는 투자대비효과(ROI)를 제대로 뽑기 힘든 애물단지 플랫폼으로 전락했다. PC의 시대, 다수 국내 업체들이 윈도만 지원하던 장면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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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S 개발자 생태계를 키우자고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럼에도 애플 개발자 플랫폼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보고 있으면 국내 모바일 생태계가 그렇게 건전한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국에선 마이너일지 몰라도 세계 무대에서 애플은 여전히 안드로이드와 자웅을 겨루고 있는 메이저 모바일 플랫폼이다. 안드로이드에만 집중한다는 건, 한국 시장안에서만 노는 '우물안 개구리'형 회사들이 여전히 많다는 우울한 현실을 보여주는 결과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