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폰, 제2의 와이브로로 전락하나

이통사에 밀려 고사될 수도

일반입력 :2014/05/23 15:11    수정: 2014/05/23 16:17

“기존 통신3사에 허가권을 내주지 않았으면 우리가 반드시 성공시킬 수 있었습니다.”

알뜰폰 얘기가 아닙니다.

와이브로를 포기한 하나로텔레콤의 한 임원이 2005년 이유를 설명하면서 한 말입니다.

최근 통신업계가 시끄럽습니다. SK텔레콤의 자회사에 주었던 알뜰폰 사업을 철수시키고 KT와 LG유플러스에게 알뜰폰 사업을 허용해선 안 된다는 시민단체의 목소리 때문입니다.

이들은 알뜰폰 시장이 300만을 넘어 시장점유율 5%를 넘어서자 이동통신3사가 중저가 요금의 대안 시장인 ‘알뜰폰’의 위협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자회사를 이용해 이를 장악하려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젠 알뜰폰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원래 이름은 이동통신재판매사업자(MVNO)입니다. MVNO란 이름이 어렵고 소비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워 정부가 공모를 통해 붙인 이름입니다. 이렇듯 알뜰폰은 정부정책에 의해 사업이 시작된 서비스입니다. 도입 취지는 통신3사로 고착된 이동전화시장에 제4의 플레이어를 진입시키고 경쟁을 활성화시켜 가계통신비를 낮춰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기득권을 지닌 기존 이동통신3사의 반발이 심했습니다. 드러내놓고 반대하진 않았지만 MVNO는 성장기의 초기 통신시장에서나 성공할 수 있는 모델이다, 이용자보호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등등의 논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습니다.

MVNO 도입 당시 국회에서 해당 법안이 3년 남짓 공전하다 한시법으로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어렵게 등장한 MVNO는 이후에도 도매대가 산정 등의 이유로 등장이 더 늦어졌습니다. 통신 네트워크와 전산시스템이 없어 이를 기존 이동통신사에게 빌려 써야 하는 MVNO의 특성 때문인데 을(乙)인 MVNO와 이통사의 협상이 원활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정부의 중재와 수월치 않았던 협상 끝에 사업이 시작됐지만 MVNO에게는 발을 딛는 곳마다 가시밭길 이었습니다. 음성과 달리 데이터 도매대가는 이동통신사가 너무 많은 비용을 요구했고, 기존 이동통신3사는 4G LTE를 장착한 스마트폰 팔고 있었지만 MVNO는 단말을 확보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MVNO는 음성위주의 선불폰을 상품으로 판매했습니다.

하지만 대기업 계열의 케이블업체들이 ‘방송+초고속인터넷+집전화+이동전화’로 방송‧통신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기존 이통3사와 유사한 정도의 경쟁력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우체국이 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MVNO 대신 알뜰폰이란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현재는 알뜰폰 사업자들의 상황이 나아졌을까요.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이통3사가 직접 알뜰폰 사업을 하고 있거나 하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얘기했지만 통신네트워크와 전산시스템을 기존 이통3사에게 빌려 이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 알뜰폰 사업자인데, 알게 모르게 도움을 얻을 수밖에 없는 이통3사의 자회사들과도 경쟁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알뜰폰 사업자들이 있을까요. 쉽지 않습니다.

이는 과거 하나로텔레콤이 기존 이통3사에게 와이브로 사업권을 주면 와이브로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던 상황과 오버랩 됩니다. 와이브로와 LTE는 경쟁관계의 기술인데 한 개 사업자가 동일한 이동통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와이브로와 LTE 모두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주장의 근거였습니다.

현재 이통3사는 2G, 3G, 4G LTE, 심지어 와이브로까지 전국망을 구축해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LTE로 수렴해 갈 것입니다. 그럼 현재 보유하고 있는 2G, 3G 가입자는 어떻게 될까요. 기자의 생각에는 높은 ARPU(가입자당 월 평균 수익)의 가입자는 기존 이통3사가 가져가겠지만 음성과 소량의 데이터를 사용하는 2G, 3G 가입자는 알뜰폰 자회사를 통해 유지해 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통사가 굳이 이동통신서비스를 하는 자회사를 만들려는 이유는 이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습니다.

5월 현재 알뜰폰 사업자는 총 28개입니다. 이동전화시장의 95%는 사실상 이동통신3사만이 경쟁 중이지만 5% 시장에선 28개 사업자가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 업체 중에는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B2C가 아닌 기업대상 사업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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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비좁은 시장에 경쟁은 치열하고 경쟁 환경은 악화되고 있습니다. 결론은 어떻게 될까요. 예단할 수는 없지만 기존 이통3사에 사업권을 주었던 와이브로 정책처럼 서서히 고사되거나 치열한 경쟁 끝에 많은 사업자들이 문을 닫은 초고속인터넷 시장처럼 되지 않을까요.

어쩌면 그동안 이동통신3사가 내놓지 않았던 기본료 1천원짜리, 초당 0.9원짜리 알뜰폰 서비스들은 앞으로 보기가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