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이통사 보조금 규제할 자격 있나?

[데스크칼럼]최 위원장께 드리는 몇 가지 말씀

일반입력 :2014/04/16 17:06    수정: 2014/04/17 10:50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우리나라 정부 기구 가운데 ‘합의제 행정기구’라는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다. 굳이 합의제 방식의 기구를 둔 까닭은 이 위원회가 다루는 사안이 대부분 간단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사회적 갈등이 큰 분야를 다루게 된다는 이야기다. 방송이 그렇고 통신이 그렇다. 담당 국회 상임위는 여야가 싸움질 하느라 법안 처리 꼴등으로 낙인찍힌 곳이다.

5명의 방통위 상임위원은 그래서 다른 부처 장차관과 달리 행정력은 물론이거니와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한 자리다. 행정이 법령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다분히 사무적인 행위라면 합의는 상대와 밀고 당기는 게임을 통해 최적의 공간을 찾아가는 정치 행위이기 때문이다. 법대로만 외쳐서 될 일도 아니고, 법을 무시해서 될 일도 아니다. 공리(功利)는 복잡한 거고, 합의를 통해서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방통위는 특히 거의 대부분의 업무가 방송과 통신에 대한 규제라는 점에서 ‘합의 정신’을 무엇보다 높은 가치로 삼아야 한다. 방송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통신 또한 각종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사회적 합의를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면 규제가 설득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규제란 공리(功利)를 위해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드는 것이고, 합의가 빠진 규제는 ‘선무당의 못 된 칼날’일 뿐이다.

방통위는 그러나 지금까지 합의 기구로서 모범을 보여준 적이 거의 없다. 회의가 파행됐다는 보도가 줄을 잇는다. 싸움질 하느라 날 새는 줄도 모르는 여의도와 다를 게 별로 없다. 방통위원장이 새로 선임 되고 다시 출범한 3기도 보아하니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첫 회의부터 파행이다. 청와대와 여권 추천 위원 3명만 참여한 채 회의가 진행됐다. 상대를 철저히 배제하고 합의가 대체 웬말인가.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의 고질적 반(反)합의 혹은 일방통행은 방송에 대한 권력욕의 소산임을 부정해선 안 된다. 방송을 권력 창출 혹은 유지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사심이 커질 때 합의는 공염불이 되고 공리(功利)는 다가갈 수 없는 먼 산이 된다. 출범 이후 종합편성채널 선정부터 최근의 재심사 과정까지 방통위가 한 일이라고는 정치 권력싸움의 틈바구니에서 그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것 말고 뭐가 있나.

방송과 통신이 융합하면서 인류의 새로운 문명이 급진전하고 있는 마당에 주무부처가 선도적으로 해야 될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급변하는 기술에 맞춰 개혁해야 할 법령이나 규제가 어디 한두 가지겠는가. 지난 6년을 권력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며 허송했으니 그로 인해 방송통신 산업이 입은 피해는 또 얼마나 크겠는가. 3기 출범은 그래서 이 모든 것에 대해 진지한 회고와 새로운 다짐으로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도 마음이 온통 콩밭에 가 있으니 전문성이 떨어지는 건 필연지사겠다. 방송보다 통신 그리고 융합 분야가 특히 그렇다. 무엇보다 통신 업계 최대 난제인 보조금 대책이 대표적이다. 사실 5명의 상임위원이 이 문제를 얼마나 고민했는지 알 길은 없다. 그러나 보인 대로 판단한다면, 그들의 관심사는 방송 권력 쟁취이지 이동통신 산업의 발전과 소비자 혜택이 아니었다. 가끔 출현해 불호령만 내렸었다.

최 신임 위원장은 다행히 이 문제에 관심이 큰 듯하다. 가장 먼저 한 일이 구의동 테크노마트를 찾아 현장을 둘러봤고 이튿날에는 이동통신 3사 최고경영자와 조찬을 들며 이 문제를 논의했다. 방송과 통신에 관한 비전문가인 만큼 열심히 배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또 판사 일을 오래 한 만큼 탁월한 균형감각을 갖고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방통위가 혁신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 유일한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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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위원장이 기대에 부응해 3기 방통위를 진정한 합의기구로 만들고 설득력 있는 규제기관으로 거듭나게 하려면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바란다. 특히 보조금 정책의 경우 멀리 갈 것도 없이 포털 사이트 댓글로 표출되는 소비자의 아우성을 직접 읽어보기 바란다. 사실 방통위 앞에 고개 숙인 산업계도 속으로 들끓기는 소비자와 다를 게 없다. 직접 봐야 규제 혁신의 길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방통위는 그 설립 목적에서 밝힌 대로 ‘방송의 공공성’과 ‘통신 시장의 공리(公利)’를 높이기 위해 존재한다. 그걸 실현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론으로 ‘합의’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최 위원장의 화두 또한 이 세 가지여야 한다. 최 위원장은 특히 모든 자리에서 이 세 화두의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를 곰곰 생각하기 바란다. 서로 다른 속셈으로 같은 말을 하는 ‘정치꾼’의 설전 속에서도 중심을 잡아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