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폭 제한 '책 살리기'...전자책은 뒷전

도서 할인율 15%로 제한, 규제로 인한 반감 우려

일반입력 :2014/02/27 06:49

남혜현 기자

1년을 끌어온 도서정가 할인율 제한 논의가 신·구간, 종이·전자책을 막론하고 정가의 15%로 결론났다. 도서 가격 정상화를 위한 당연한 수순이라고 환영하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인위적인 할인률 제한이 도서 시장을 오히려 위축 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논의 과정에서 제외된 전자책 업계에서는 시장 침체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5일 출판 및 유통 관계자, 소비자단체 대표 등이 모인 회의에서 도서 할인 폭을 정가의 15%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고 26일 밝혔다. 구간(출간한지 18개월이 지난 서적)과 실용서적도 앞으로는 신간처럼 할인이나 마일리지 적립률에 제한을 받게 된다.

합의안은 민주당 최재천 의원이 발의한 '도서정가제 관련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의 수정안에 반영될 전망이다. 최 의원이 당초 발의한 개정안에서는 신간과 구간의 할인율을 최대 10%로 제한했다. 개정안은 현재 상임위에 계류된 상태로, 법사위를 거쳐 국회 본회의 의결을 통과해야 시행될 수 있다.

최재천 의원실은 유명 무실해진 도서정가제를 강화하자는 것이 법안의 목적이라며 그간 도서정가제를 구간이나 참고서적에 적용을 하지 않아 신간이 안팔려 새로운 책을 내는게 어려웠고 온라인 서점 할인폭이 커지면서 동네서점들이 고사위기에 처했는데 그걸 방지하겠다는 측면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도서 시장 살리는 길이 할인 제한 뿐인가

할인율 제한에 합의한 온라인 서점들의 분위기는 냉담한 편이다. 1년간 끌어온 줄다리기 논의 끝에 정부와 출판사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전체 도서 시장 활성화에는 할인 제한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한 대형 온라인 서점 관계자는 책이 다른 문화 콘텐츠와 경쟁해야 하는 마당에 할인율을 묶어 놓는 것은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출판사 관계자는 책값을 계속 할인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유통사와 출판사가 같이 어려워질 수 있어 대안이 필요하기는 하다면서도 독자들이 떠나가는 현실에서 책 가격을 묶어버릴 경우 독자를 더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출판사에도 공존한다라고 우려했다.

법안 취지인 도서 가격 현실화와 지역 서점 살리기라는 대의에는 공감하면서도, 도서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 정부의 인위적인 할인폭 제한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출판업계가 도서정가제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도서 시장 전체를 키울 수 있는 창의적인 육성 방안이 나와야 하는데, 무조건 할인율을 묶어 놓는 식의 규제 방안은 시장 경제에 맞지 않고 독자들의 반감만 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할인율 제한으로 책값이 오를 경우 독자들이 한정된 도서 구매비를 베스트셀러 같은 특정 책에만 쓸 가능성도 있다라며 할인으로 책값이 너무 싸진 것도 문제긴 하지만, 지금은 전체 도서 시장 활성화를 위한 방안이 먼저 나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전자책, 시장 크기 전에 규제부터?

전자책은 아예 합의도출 과정에서 제외됐다. 지난해 법 개정으로 전자책 역시 도서정가제의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논의 과정에서 전자책의 특수한 시장 환경은 고려되지 못했다. 회의를 주관한 문화체육관광부도 합의 도출 과정에서 전자책에 대한 별도 논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국내 주요 서점, 출판사, 이동통신사, 유통업체들이 대거 뛰어들었지만 국내 전자책 시장은 아직 걸음마단계다. 전체 도서 매출에서 전자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2~3%에 불과하다. 아직 성숙하지 않은 전자책 시장에서 할인 행사 등은 독자들의 시선 끌기를 위한 주요한 마케팅 방법으로 여겨진다.

전자책 업계 한 관계자는 전자책에도 동일하게 도서 정가제를 시행해버리면 다양한 마케팅이나 비즈니스 모델이 새롭게 창출될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측면이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서점 관계자도 전자책이 시장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시작부터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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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문화부가 종이책 출판사를 중심으로 정책을 세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문화부가 전자책을 포함한 디지털콘텐츠를 주요 육성 산업이라고 지정하면서도 실질적인 정책이나 지원에서는 전자책을 소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 출판인쇄산업과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도서정가제에 전자출판물이 포함되기 때문에 별도로 논할 차원이 아니다라며 여러 차례 회의를 통해 충분히 논의해 온 사안이라 불만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