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 대책, 전문가보다 소비자가 낫다

[데스크칼럼]상황논리, 이해관계 떠나야 답 나온다

일반입력 :2014/02/21 17:36    수정: 2014/02/21 17:40

보통 사람은 세상을 몸으로 알고 지식인과 전문가는 텍스트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책상물림’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책상물림의 주장은 대개 근거와 논리에서 하자를 찾기 쉽지 않다. 다 옳아 보인다. 그런데 공감하기 어려운 때가 왕왕 있다. 아마도 보통 사람과 지식인·전문가의 토대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휴대폰 보조금 난리는 대통령까지 나서야 할 만큼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정부와 정치권도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단말장치 유통 개선법(이하 단통법) 제정 추진과 완전자급제 도입 행보가 현재까지 제기된 대안들이다. 새 법제도인 만큼 그로 인한 효과를 두고 다양한 의견들이 충돌하는 건 당연하다.

재미있는 건 이들 대안에 대해 소비자와 전문가 그룹이 이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차이를 무 자르듯 딱 잘라 말하는 것은 무리다. 소비자 끼리나 전문가 끼리도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다만 일반화 오류를 무릅쓰고 편을 갈라본다면 소비자와 전문가의 생각이 참 많이 다른 경향이 있다고까지는 말할 수 있다.

단통법은 찬성하는 전문가 그룹이 많고 소비자는 반대하는 편이다. 반대로 완전자급제는 반대하는 전문가 그룹이 많고 소비자는 찬성하는 편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디넷코리아가 지난 1월 23일 이른바 ‘보조금 대란’과 관련해 이 문제를 풀 해법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단통법을 지지한 이는 전체 1천841명 중 91명으로 4.94%에 불과했다. 2위는 완전자급제로 21.94%(404명)였다. 1위는 보조금 자율화로 73.11%(1천346명)였다. 보통 사람의 경우 대부분 단통법은 해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그리고 이동전화 사업자, 심지어는 이 법의 피해가 우려되는 LG전자와 같은 제조업체도 이 법에 찬성한다는 게 공식 견해다.

대다수 일반인은 반대하지만, 상당수 소비자 단체들도 이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현실이다.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진 세력은 오직 삼성전자 뿐이다. 삼성도 취지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일부 조항을 문제 삼고 있을 뿐이다. 사실은 통째로 반대하지만 정부 눈치보느라 발언 수위를 조절한다고 판단하는 게 더 옳다.

이상하지 않는가. 지디넷코리아의 설문조사가 아무리 신뢰도가 약한 것이라도 해도 일반 대중의 4.94%만이 지지하는 법에 대해 반대하는 전문가 그룹이 거의 없다는 것이.

기자는 한 달 째 그 질문을 던졌지만 또렷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다시 이 물음을 고민하게 만든 건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20일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휴대폰과 서비스의 판매를 분리해 단말기는 단말기끼리, 서비스는 서비스끼리 경쟁하게 함으로써 단말기 판매 가격과 서비스 요금을 동시에 낮추겠다는 논리다. 이 바닥을 20년 취재한 기자의 오래 된 생각과 비슷해 반가웠고, 단통법의 한계를 일거에 뛰어넘을 혁명적 대안이라는 점에서 기꺼웠다. 다만 집권당이 아닌 민주당이 이 정책을 밀고 나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게 더 고민스러웠다.

민주당이 선거철(지방선거)을 앞두고 실현할 수 없는 정책을 내걸어 쇼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해서 담당 기자에게 민주당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각계 반응은 어떤 지에 대해 취재하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놀라운 건 민주당을 제외하고 담당 기자가 접한 대부분의 전문가가 단말기 완전자급제를 반대하거나 그 부작용을 우려했다는 사실이다. 20년을 지켜봐온 기자의 판단이 완전히 잘못된 셈이다.

그래서 지디넷코리아 홈페이지를 통해 즉각 독자 설문조사를 다시 실시했다. 질문을 바꿔 완전자급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다. 20시간 동안 1천120명이 답했다. 찬성이 81.96%(918명), 반대가 16.18%(181명), 모르겠다가 1.85%(21명)였다. 약간 오류가 있다 해도 직전 보조금 대안 설문조사 결과와 맥을 같이 하는 셈이다.

일일이 다 예를 들 수 없지만 포털 등 네티즌 댓글을 뒤져 봐도 결과는 이와 비슷하다.

대다수 소비자는 단통법을 반대하고 많은 전문가는 단통법을 찬성한다. 대다수 소비자는 단말기 자급제를 원하고 다수 전문가는 이를 반대한다.

이런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또 이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뭘까.

첫째 소비자는 자신의 입장만 생각해 단순 무식하고 전문가 그룹은 여러 상황을 고려해 사태를 통찰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나온다. 이를 테면 소비자는 무조건 싼 요금과 저렴한 단말기를 구매할 방법만 취하고 전문가는 전반적인 산업과 국가 경제 그리고 각종 이해관계를 고려해 해답을 찾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소비자, 혹은 국민은 과연 단순 무식하기만 한 걸까.

기자 대답은, 아니다, 이다. 소비자는 사실 다 안다. 십 수 년을 몸으로 체득하였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세계에서 최고로 많이 공부한 우리 빠꼼이 국민이 그저 단순 무식해 그렇게 대답할 가능성은 적다. 설사 소비자가 단순 무식해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전문가는 이를 외면하면 안 된다. 소비자, 국민의 생각을 무시 외면하고 성공할 수 있는 정책은 없다고 보는 게 순리에 가깝다.

둘째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보이는 역설이다. 새누리당은 시장 경제를 적극 지지하는 정당이고, 정부 규제를 최대한 줄이는 게 당 이념이다. 민주당은 새누리당에 비해 시장에 정부가 더 개입해야 한다는 쪽이다. 다는 아니지만 줄기는 그렇다.

문제는 보조금에 관해서는 양당의 행보가 엇갈렸다는 점이다.

단통법은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법이다. 그동안 이동통신 서비스 회사만 규제하다가 제조사까지 규제하겠다는 게 골자다. 규제는 기본적으로 시장을 냉각시키는 효과가 있다. 새누리당 기본 이념과는 맞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은 이 법을 강력 추진하고 있다. 대통령도 거들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로 돌아가 국가주의가 발동한 것이다.

미디어 법 등 다른 정쟁의 이유가 있기도 하지만, 이 법 통과를 지연시키고 있는 건 민주당이다. 서로의 색깔이 보조금 정책에서는 뒤집힌 것이다.

단통법과 달리 완전자급제는 규제보다 시장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법이다. 이 제도는 정부가 보조금을 규제할 필요 없이 서비스는 서비스 끼리, 단말기는 단말기 끼리 경쟁하도록 하면 서비스 요금도 내리고 단말기 가격도 내려간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괜히 정부가 규제함으로써 보조금 문제가 더 꼬였다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사실 새누리당이 할 법한 생각이고 민주당이 반대 논리를 내세울 법한 법제 이론이다.

이 제도의 문제는 워낙 구각이 두꺼워 시행 과정에 대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시장을 송두리째 흔들어야 하기 때문에 반발 세력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민주당으로서는 언감생심에 가까운 도전이다. 통신사업자들의 압력과 설득으로 민주당은 붐빌 거고 수십만 이동통신 대리점 자영업자들은 민주당에서 철야농성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조금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려면 이 산고는 반드시 넘어가야 할 산이다. 그래서 큰 공을 들여 국가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기도 하다. 논리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면 가계통신비를 줄일 것인가, 아니면 가계에서 조금씩 보태 수십만에 달하는 영세 통신 대리점의 생계를 유지할 것인가, 그런 선택의 문제다. 함부로 결단할 수 없고 엄청난 논란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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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소비자는 두 당 어디도 믿지 못하겠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두 번의 설문조사 결과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건 보조금 자율화라고 할 수 있다. 십 수 년 지켜보니 정부가 내세운 어떤 대안도 소비자를 위해 도움이 안 됐다고 보는 것이다. 보조금 정책에 관한 한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소비자는 정부 말을 믿지 않는 상황이 됐다. 정부 뿐 아니라 이에 개입해 발언하는 전문가에 대한 시각도 별반 다를 것 없다.

소비자, 그러니까 국민 신뢰를 잃은 기업과 정부가 설 땅이 없다는 건 자명하다. 여든 야든 정부든 이 사안에 개입하고자 하는 전문가든 장시간 지속될 정책을 내오려거든 지금이라도 다시 소비자 의견을 모을 때다. 여러 방향으로 소비자 의견 진지하게 모니터링하는 데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