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인들이 네이버를 즐겨 찾는 이유

일반입력 :2014/01/12 14:36    수정: 2014/01/12 15:34

남혜현 기자

프랑스어 사전을 만들 때는 일주일에 두 번씩, 8주 간 과외도 받았어요. 그렇게 안 하면 수박 겉핧기가 되니까요. 최소한 언어 특징이라도 알기 위해 배우면서 사전을 만들었죠.

포털 네이버가 만든 여러 서비스 중에서 이용자들에 가장 환대 받는 것이 '사전'이다. 네이버는 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포함해 총 19개 언어를 웹 사전으로 제공한다. 조지아어나 알바니아어처럼 비교적 희귀한 언어를 포함했다.

김종환 네이버 어학사전실장을 최근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이 회사 사옥에서 만났다. 지난 2009년 네이버가 사전 검색 서비스를 할 때부터 이 일을 맡았다. 성과가 있으니 자랑할 법도 한데 사전 만드는 일이 가장 재미나 보람찼을 뿐이라고 겸손하다. 전공인 역사학처럼, 그는 언어의 뿌리를 찾듯 공부하며 사전 만드는 일을 했다.

■사전, 네이버 인기 콘텐츠로

초등학교 5학년, 1학년 된 아이들이 '우리 심정을 아빠도 알게 될거야' 라더군요. 아빠도 선생님한테 지적 당하고 공부하니까 본인들 심정을 잘 알거란 얘기죠.

김종환 실장의 아이들에게 아빠는 늘 공부하는 사람이다. 밤 10시까지 일하고 늦은 저녁 들어와서는 또 회화 공부를 한다. 영어를 빼고도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등을 잠깐씩 배웠다. 2월부터는 인도네시아어와 태국어 등 동남아시아권 언어를 배울 생각이다.

물론 그가 모든 언어를 현지인처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언어는 이제 막 단어를 읽고 쓸 줄 아는 정도다. 그럼에도 그가 언어 공부를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있다. 이용자 입장에 서봐야 제대로 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철학 때문이다.

공부를 하다보면 하루에도 몇십번씩 이용자 입장에서 웹사전을 써보게 되죠. 불편하다고 고객 문의가 들어왔던 것들이 피부로 느껴지니까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되고요.

김 실장을 비롯해 팀원들은 직접 공부하며 느낀 점들은 곧잘 서비스에 반영한다. 예컨대 사용자들이 동사 원형을 웹사전에서 검색하는 경우는 드물다. 문장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웹사전에서 찾는데 대부분 활용형태다. 이 경우 활용형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야만 검색 지원을 할 수 있다. 원형을 알아야 그 뜻을 찾아볼 수 있는 종이사전과는 다른 웹사전만의 강점이다.

중국어도 한 사례다. 중국어 발음을 알파벳으로 병음 표시한 것이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마트폰에서 손가락으로 한자를 써 음과 뜻을 찾게 한 서비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학습자들이 어려워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그에 맞춰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은 사전이 네이버 인기 콘텐츠가 된 이유 중 하나다.

■네이버는 왜 조지아어를 사전 서비스하나

웹사전이 대중화되면서 네이버는 소수 언어로 서비스 범위를 넓히고 있다. 최근 추가된 언어는 조지아어다. 그루지아로 더 잘 알려진 이 나라는 독립 후 국가명을 '조지아'로 바꿨다. 국내서 조지아어를 다룬 사전은 한두종 정도로 희귀하다.

소수언어로 가면 사전 종수도 적고 표제어나 예문도 많이 없죠. 희귀언어라 기업 수익 논리에서는 하면 안 되는 서비스기도 해요. 그렇지만 네이버가 일등 업체기도 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서비스 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도 있었어요. 네이버가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네이버는 지난 2009년까지 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한자 등 다섯가지 언어만 사전 검색 서비스를 해왔다. 사용자 규모나 사전 품질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지금처럼 19개 언어를 사전으로 만든 것은 '제2외국어 사전'으로 프랑스어를 택한 이후다.

당시에 기존 언어 사전의 품질을 더 높일까, 아니면 새로운 언어로 나가볼까 고민을 했죠. 그런데 기존 사전들은 웬만큼 사용되고 있는데, 다른 언어들은 (웹사전이) 아예 없잖아요? 이 사람들한테는 사전 서비스가 꼭 필요하겠구나, 너무 좋아할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희귀언어 사전을 준비하는 일은 녹록치 않았다. 캄보디아어의 경우 모바일 단말기에서 지원하는 글꼴(폰트)이 없었다. 웬만한 글꼴은 다 지원한다는 아이폰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업체들도 캄보디아어 추가 지원에 대한 계획은 없었다.

사전을 지원해도 글꼴이 없다면 표현할 방법이 없다. 대사관에도 문의해봤지만 뾰족한 수를 찾기는 어려웠다. 그때 찾은 실마리가 웹 폰트 기술이다. 이용자들이 스마트폰에서 캄보디아어를 검색할 때마다 서버에서 글꼴을 가져오는 것인데, 스트리밍 서비스와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직원들의 고민이 결국 캄보디아어 사전 서비스 지원이라는 결실을 가져온 셈이다.

다행히 반응은 뜨거웠다. 불만 제기가 가득하다는 고객센터 게시판에 인기 언어가 아닌데 서비스를 해줘서 너무 고맙다는 류의 글들이 올라왔다. 한국인, 유학생 뿐만 아니라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도 좋아했다. 각 분야 학자들은 전문 용어도 사전에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한다.

네이버는 앞으로 사전 서비스 지원 언어를 더 늘린다는 방침이다. 몇개국 언어까지 서비스 하겠다라는 제한은 없지만, 네이버 통합 검색 서비스에서 희귀한 단어를 쳤을 때 이를 찾아볼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이 김 실장이 밝힌 목표다.

■웹사전, 포털의 세계화에도 도움

네이버 웹사전을 한국인들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베트남어는 현지인들의 접속이 더 많다. 국제 결혼 비중이 높아지면서 베트남 현지, 또는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인들이 웹사전 서비스를 찾는다. 각 언어별로 다르지만 웹사전을 이용하는 외국인의 비중은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30%로 추산된다.

최근 네이버가 영어, 베트남어, 터키어에 '외국어 스킨'을 적용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현지어로 사용법을 설명한 외국어 스킨이 있다면 사용 편의성이 더 높아지지 않겠느냐고 판단했다. 이용 데이터를 살펴보니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베트남어 스킨을 사용하는 현지인들은 해당 언어를 찾는 하루 이용자의 35%를 차지한다.

모바일 사전의 경우엔 학습 목적보다 실생활 언어를 배우기 위해 찾는 이들이 더 많다. 베트남어, 몽골어 등이 그렇다. PC와 비교해 모바일 베트남어 사전 사용량은 네배까지 올라간다.

네이버가 최근 들어 외국인들을 배려한 사전 서비스를 강화하는 이유기도 하다. 올해는 국어 사전을 강화하는데 그 목적이 '영영사전' 같은 활용도를 위해서다. 국어 사전 용례를 풍부히 해 외국인들이 더 쉽게 한국어를 배울 수 있게 한다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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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언어별 신조어를 사전에 추가한다는 계획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나왔다. 일년에 한 번 찾을까 말까한 단어들 까지 추가해 사전의 사용성을 키우겠다는 목표다. 용량이나 수고가 더 들 수 있지만 종이 사전에 비해 그 비용이 적기 때문에 해 볼 수 있는 일이다.

좀 더 인터넷에 맞는, 인터넷스러운 사전을 만들려고 해요. 인터넷은 지면의 제약이 없으므로 해볼 수 있는 것들도 많죠. 신조어나 표제어를 늘리는 것은 인터넷이 가장 잘 대응해 줄 수 있는 영역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