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법’ 1차 폭풍 후

일반입력 :2013/11/10 08:53    수정: 2013/11/10 13:27

게임 중독을 중심으로 한 공청회와 국정감사가 훑고 간 자리, 씁쓸한 기운과 상처만이 남겨진 분위기다.

게임 중독을 문제 삼으려던 정부와 여야 의원은 물론, 논란의 중심에 선 게임업계와 종사자들까지 모두 생체기만 남은 채 제자리걸음 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회와 게임업계에는 게임중독법 관련 논란이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현재는 폭풍으로 인한 재해 작업이 이뤄지듯 곳곳에서 서로를 향한 변명과 해명, 그리고 다음에 있을 후폭풍을 대비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먼저 최근 게임업계를 강타한 폭풍은 지난 달 31일 국회의원실에서 발생했다. ‘4대 중독예방관리제도 마련 토론회’라는 이름의 공청회가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실 주최로 열렸다. 하지만 여러 의견을 수렴해야할 공청회는 ‘신의진의 신의진에 의한 신의진을 위한’ 자리로 변색돼 논란을 낳았다.

공청회에 참석한 패널 구성부터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으며, 반대 측의 의견을 가로 막는 사회자 진행까지 “4대 중독법에 게임을 포함하는 것이 맞다”는 기본 전제를 증명하는 공청회로 평가됐다.

이후 신의진 의원의 블로그와 공식 홈페이지는 게임중독법 방지를 주장하는 네티즌들의 집중 포화를 받았다. 게임중독법이 게임산업을 저해하는 것이 아닌 중독자들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신 의원의 해명에도 이후 따라 붙게 될 관련 법안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계속 높아져 갔다. 중복 규제 논란도 또 다시 불거져 나왔다.

물질 중독이 아닌 행위 중독으로 볼 수 있는 게임을 마약, 도박, 알코올과 하나의 그룹으로 묶는 것 자체에 대한 지적, 게임 개발자들을 마약 제조상으로 비춰지게 하는 문제에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는 곧 게임중독법 방지를 위한 온라인 서명운동에 불을 붙였으며, 수십만 명의 동참의 결과를 낳았다.

결국 여론이 악화되자 신의진 의원과 보건복지부 측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게임산업을 저해하려는 법안이 아니다”는 식의 변명과 해명을 늘어놓기에 급급했다. 상대편의 주장과 우려를 단순하게 ‘오해’로 일축했다.

두 번째 게임산업과 업계를 옥죄인 사건은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나왔다. 민주당 백재현 의원이 라이엇게임즈 ‘리그오브레전드’(이하 LoL)의 선정성과 중독성, 개인정보 취약 등의 문제를 지적했기 때문이다.

당시 백 의원은 LoL의 팬아트 그림 몇 장을 들고 나와 게임의 선정성을 지적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오진호 라이엇게임즈 한국 대표와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시정과 개선안을 요구했다.

또 그는 LoL 중국 배급사인 텐센트가 시행 중인 쿨링오프제를 국내에도 도입하라는 식의 발언과 함께, 14세 미만 아동·청소년 회원가입 시 휴대전화번호 등 개인정보가 수집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백 의원 역시 국정감사가 끝나기 무섭게 인터넷에서 뜨거운 감자가 됐다. 게임 이미지도 아닌 2차 저작물인 팬아트를 들고 나와 선정성 문제를 논한다는 비판성 기사와 반응들이 쏟아져 나왔다.

또 정부가 청소년들의 게임 이용 시간을 제한하고자 만든 셧다운제 때문에 개인정보 수집이 불가피하게 이뤄지고 있는 점을 모른 채 개인정보 유출 문제를 지적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심지어 백재현 의원 홈페이지에서조차 주민등록번호 수집이 버젓이 이뤄지고 있더라는 맞불 공세도 따랐다.

나중에야 백재현 의원실 측은 반론 자료를 내고 “게임 자체가 아닌 게임사이트의 선정성 문제를 지적한 것이며 게임중독법에 대해 자율적 규제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게임을 둘러싼 서로 다른 시각들이 충돌하면서 유명인들의 사견도 다양한 경로와 방법으로 터져 나왔다.

가수 신해철은 “게임에 중독될 수 있는 권리 또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며 “공권력이 개인의 삶과 가치를 규정하는 데서 생기는 해악은 것은 게임중독보다 비교도 되지 않는 악 그 자체”라고 말했다.

또 진중권 교수는 한 사설을 통해 “게임중독법은 실은 산업화 시대에 장발단속, 미니스커트 단속의 디지털 버전에 가깝다”면서 “게임이여 자신을 변명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자신을 주장하라”는 말로 게임업계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를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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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게임중독을 둘러싼 논란은 이를 주장하는 정부와 여야당뿐 아니라, 이에 항변하는 게임업계 종사자들과 이용자 모두에게 상처만을 남긴 소모성 다툼으로 번졌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게임중독법 논란이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고 부모와 아이들의 단절을 더 깊게 만들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중독법을 추진하는 쪽은 사회적 합의를 위해 반대편 얘기에 귀 기울이고 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면서 “게임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문화적, 산업적 측면을 얘기하는 쪽 역시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더욱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