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의 탄생에 비친 벤치마킹 IT정책의 어색함

전문가 칼럼입력 :2013/11/08 16:38

조중혁
조중혁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의 영예는 힉스 입자 존재를 예견한 피터 힉스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와 벨기에의 프랑수아 엥글레르 브뤼셀자유대학 교수 2명에게 들어갔다. 이에 힉스 입지를 발견하고 입증한 CERN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이 주목 받고 있다.

CERN은 원자핵을 연구했던 곳으로 물리 관련 연구를 진행중이다. CERN은 이번 노벨상 수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주목을 받은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CERN은 우리가 흔히 ‘웹’으로 부르는 '월드 와이드 웹'(WWW)을 발명한 곳이다.

원자핵을 연구하던 연구소에서 왜 웹을 발명한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말하기 전에 왜 인터넷이 개발됐는지부터 살펴보자. 웹은 유럽에서 개발됐지만 인터넷은 미국에서 개발됐다. 요즘은 인터넷과 웹을 혼동해서 많이 쓰지만 인터넷은 개방 네트워크로 TCP/IP라는 기술에 기반한 네트워크다.

인터넷이 처음부터 TCP/IP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NCP(Network Control Program)라는 기술을 이용했고 1983년 TCP/IP로 변경했다. 웹이 개발 되기 전에는 정보 검색을 위해 고퍼 (gopher)를 주로 이용했다.

미국은 생존을 위해 인터넷을 개발했다 

그렇다면 왜 미국에서 인터넷이 개발되었을까? 세계 최강국이기 때문에? 시대적인 요청에 의해 개발 할 수 밖에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컴퓨터는 원래 계산하는 기계라는 뜻으로 이름 그대로 계산을 위해 세상에 나왔다. 2차 세계 대전 때 암호 해독과 포탄 발사 등을 계산하면서 크게 발전했다.

이 때문에 연합군뿐 아니라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독일도 상당 수준의 컴퓨터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콘트라 추제’가 개발한 Z3가 대표적이다. 독일은 패전하면서 컴퓨터의 필요성이 급감했지만, 미국은 이후에도 기술이 계속 필요했다.

냉전 시대의 패권국가로 소련과 경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때, 연합군의 기술뿐만 아니라 적군이었던 독일 기술을 흡수 해 크게 성장 한 회사가 IBM이다. 냉전시대 시장의 요구는 포탄과 암호 해석 등이 아니라 정보였다.

미 국방부는 정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보를 실어 나를 수 있는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를 많이 했다. 국방부의 지원으로 태어난 정보 네트워크가 인터넷이다. 미국은 인터넷을 10 년 동안 큰 문제 없이 사용했다.

CERN은 웹을 개발 할 수 밖에 없었다

CERN은 역사상 수 없이 진행된 전쟁으로 얼룩진 유럽 대륙의 화합을 도모하고 과학 기술을 통해 인류 발전에 기여하고자, 평화의 나라인 스위스에 세워졌다. 연구를 위해 정보 정리가 필요해 인터넷을 이용하려고 했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CERN은 20개국 과학자가 모여서 연구를 해야 했는데, 당시는 웹이 개발 되기 전이라 고퍼 (gopher)를 많이 이용했다. 고퍼는 윈도 탐색기처럼 트리 구조로 정보를 찾아서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중간에 경로를 잘못 선택하면 해당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문제는 각국에서 몰려온 과학자들이 각각의 정보를 공유해야 했는데 다양한 언어와  문화의 과학자들의 정보를 트리 구조인 고퍼로는 제대로 정리할 수 없었다. CERN이 추구하는 공유와 화합의 정신을 살리려면 새로운 기술이 꼭 필요했다. 경로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링크를 걸어 문서를 참조 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다. 이것이 웹이었다.

기술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외국의 앞선 사례를 벤치마킹 할 때, 결과만 놓고 분석하는 경향이 있다. 결과를 분석 해 우리도 잘 따라 하면 비슷한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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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국의 인터넷이 소련의 핵 위협 속에서 살기 위해 정보통신을 발달 시킬 수 밖에 없는 절실함과 국민적 합의가 있었던 것처럼, CERN이 과학 기술을 통해 화합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기술이 꼭 필요했던 것처럼 기술의 성공 이면에는 사회적인 필요성과 절실함이 있었다.

매년, 쏟아지는 IT 발전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합의와 절실함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해외에서 유행한다고 혹은 해외 유명 기관이 전망 있다는 보고서 한 줄에 의지해 진행 되는 IT 정책은 세상에 태어날 수는 있어도, 생명력을 가지고 세상에서 살아 남기가 힘들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종혁 IT컬럼니스트

문화체육부 선정 '올해의 우수 도서'로 선정 된 ‘인터넷 진화와 뇌의 종말' 저자이다. 96년 국내 최초 인터넷 전문지였던 '월간 인터넷' 기고로 글쓰기를시작하였다. 02년 '서울시청 포털' 메인 기획자로 일을 했다. '서울시청 포탈'은 UN에서 전자정부 세계 1위로 대상을 수상해 우리나라 전자정부의 기틀이 되었다. 미래부 '월드IT쇼' 초청 연사, 콘텐츠진흥원 심사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이동 통신사 근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