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독점 기업에 손 내민 정부의 포털규제

[기자수첩]"업계에 더 귀 열고 진짜 상생안 찾길"

기자수첩입력 :2013/11/01 13:49    수정: 2013/11/01 14:10

남혜현 기자

외국계 회사가 아니라 구글이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의 말이다. 31일 서울대 문화관에서 열린 강연에서 사회자가 외국계 회사가 한국정부와 잇달아 협력해 놀라는 사람들이 있다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구글이 세계화의 다리라고 생각한다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말했다. 왜 네이버가 아닌 외국계와 한글 지원 사업을 하느냐는 물음에 꺼낸 속내다. 문화부는 30일 구글과 '한글 세계화' 협력을 밝혔다. 이날 유 장관은 슈미트 회장과 '한글 사랑'을 서약했다.

슈미트의 말은 듣기에 따라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우리는 구글이다라는 자신감이 먼저 읽힌다. 솔직히 부럽다. 온라인 세상은 구글 천하다. 그 어느 나라 정부보다 온라인에서 구글의 권력은 세다.

우리 정부와 구글의 협력도 의미가 크다. '외산 무덤'이라 불리던 한국 시장서 구글의 성과는 남다르다. 스마트폰 보급 이후엔, 모바일 검색 시장서 구글이 다음을 제쳤다.

구글과 정부를 바라보는 국내 포털의 속은 시끄럽다. 정부 여당은 네이버, 다음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본다. 네이버의 온라인 검색 시장 점유율은 64.5%. 지난 7월 기준, 구글의 검색 점유율은 미국에서 67% 유럽에선 90%다.

■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시장지배적 사업자'

재미있는 부분이다. 발의된 법안대로 해석하면 구글은 독보적인 시장지배적 사업자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구글의 독보적 시장 지배력을 한류 문화의 세계화 다리로 생각한다.

유 장관은 네이버는 지금 우리가 지배적으로 많이 쓰지만 세계화되진 않았다라고 구글과 협력 의도를 설명했다. 여당이 네이버와 다음의 지배력이 커 규제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정부는 네이버의 영향력이 적어 세계화 전초기지로는 힘들다라고 말한다. 모순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중소상인들과 상생을 위해 검색과 광고를 분리해야 한다는 법안도 발의했다. 포털 규제안의 핵심이다. 광고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구분하기 위해 광고엔 음영을 강하게 넣으라는 주문도 했다.

뒤집어 생각해 볼 대목이다. 슈미트 회장은 서울대 강연에서 구글의 주 수익원은 텍스트 광고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제품을 검색할 때 구매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 광고주들이 많은 돈을 쓴다는 것이다. 검색 광고는 소비자와 광고주에 윈윈 모델이라고도 했다.

포털 규제안이 맥을 잘못 짚었다는 지적은 여기에서 나온다. 입찰제 검색 광고 시스템을 정부나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입찰제는 합법적인 사업 유형이다. 모두가 이를 이용해 돈을 버는데, 네이버와 다음만 때려잡으면 시장이 건강해질까.

중소 기업들도 정부의 포털 규제안이 반갑지 않다. 포털 규제안이 중소 콘텐츠 업체들에도 부메랑이 될지 모른다. 규제안이 정치적 이슈에 불과하단 지적도 나온다.

포털 규제안에 네이버가 내놓은 자구책 100억원 출자도, 콘텐츠 업체들은 정부 미봉책으로 본다. 정부 눈치보기란 해석이다. 네이버가 검색이 더 잘 되게 하는 것, 오픈 API를 개발해 배포하는 것이 상생의 목적에 더 맞다는 주장은 귀기울일 만하다.

한국인터넷콘텐츠협회 이영 사무국장은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이라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포털을 규제할 것이라 아니라 상생하는지 감시를 해야 한다라며 포털의 자금 출자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생태계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진짜 필요한 상생안을 찾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구글이 절대적으로 선은 아니다. 중소 콘텐츠 제공업자들 입장에선 구글은 또 하나의 글로벌 '갑'일 뿐이다. 검색 광고에서 갑자기 제외되는 바람에 구글과 소송까지 가는 기업들도 있다. 그래도 구글은 욕을 덜 먹는다. 구글이 철학으로 포장한 메시지, 브랜드가 주는 이미지를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고민할 가치가 있다.

꼭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픈 것은 아니다. 사촌이 땅을 사서 글로벌 땅부자가 됐는데, 너는 해외도 못나가고 뭐했느냐 질타하자는 것도 아니다. 사촌이 어떻게 돈을 벌었고, 그 땅에 입주한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사는지 규제에 앞서 모두가 함께 이야기해보자는 제안이다.

관련기사

네이버에서 직접 답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울대 강연에서 네이버는 왜 구글처럼 되지 못하느냐는 질문에 슈미트 회장이 내놓은 답변이다. 청중들은 슈미트의 말에 웃었다. 웃음의 여운은 썼다. 우리는 구글이다 다시 들어도 부러운 말이다. 구글의 자신감이, 그리고 그런 구글을 만들어온 모든 환경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