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차 여전…트래픽 관리기준, 쟁점은?

일반입력 :2013/10/10 18:51    수정: 2013/10/10 19:10

정윤희 기자

“많이 양보했다. 망 사업자로서는 굉장히 위태로운 상황을 겪어야 한다.” (통신사)

“해석이 애매모호하다. 일부 조항 수정해 망중립성 원칙 강화해야 한다.” (시민단체)

한 치도 물러섬이 없다. 지난 2010년부터 3년여에 걸쳐 망중립성과 관련된 논의가 진행됐지만 이동통신사, 시민단체, 인터넷사업자 등의 이해관계는 여전히 엇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서 열린 ‘통신망의 합리적 트래픽 관리기준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기준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시민단체는 현재의 기준안이 해석 과정에서 혼란을 가져오기 때문에 일부 조항을 수정, 혹은 삭제해 망중립성 기본 원칙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인 반면, 통신사들은 일부 예외 사항만을 규정한 해당 기준이 지나치게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네이버, 다음 등 콘텐츠제공사(CP)는 장기적으로 트래픽 관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비례성과 비차별성 원칙을 기준으로 서비스 단위 차단은 불가하다는 주장이다.

앞서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 3일 ‘통신망의 합리적 관리, 이용과 트래픽 관리의 투명성에 관한 기준안(이하 기준안)’을 발표했다. 이 안은 옛 방송통신위원회가 마련했던 기준안에 학계, 이해관계자, 망중립성 정책자문위원회의 의견을 수렴해 마련된 것이다.

기준안에 따르면 인터넷접속서비스제공사업자(ISP), 즉 통신사는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제한적으로 트래픽 관리를 시행할 수 있다. 단, 자의적으로 콘텐츠 제공자(CP)나 이용자의 트래픽을 관리하지 못한다.

■시민단체 “해석 혼란…망중립성 원칙 강화 필요”

이날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신설된 ‘ISP는 서비스 품질, 용량에 비례해 요금 수준을 다르게 하거나 요금 수준에 따른 제공 서비스의 용량을 초과하는 트래픽을 관리하는 경우 이용자의 이익과 공정한 경쟁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다.

업계에서는 이 조항을 두고 통신사의 요금제에 따른 모바일인터넷전화(m-VoIP) 사용 제한을 허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이 분분했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는 “(해당 조항을 두고) m-VoIP 차단 요금제를 허용한다는 해석을 내놓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또 비차별성의 ‘유사한 형태의 콘텐츠’라는 문구도 망중립성 가이드라인 자체와 충돌하기 때문에 원칙의 일관성 측면에서 몇 가지 문구를 추가하고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망중립성 이용자포럼 역시 “일부 문구의 해석에서 혼란이 발생해 해당 기준안의 기본 취지인 망중립성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좀 더 개선될 필요가 있다”며 “트래픽 관리 기준안을 문언적 해석을 넘어서서 망중립성 원칙에 반하는 해석을 시도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통신사 “기준안, 망사업자 입장서 부담”

통신사들은 기준안에 대해 ‘아쉽다’는 표정이다. 현재의 기준안이 과도한 제약조건 등을 언급하고 있어 원활한 트래픽 관리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 통신사간 경쟁이 치열한 국내 시장 상황상 적극적인 트래픽 관리가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도 내놨다.

김효실 KT 상무는 “통신사들이 많이 양보한 현 기준안 대로라면 실질적으로 망 혼잡이 일어나더라도 통신망 관리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며 “경쟁이 치열한 국내에서 통신사가 자의적으로 트래픽 관리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말했다.

정태철 SK텔레콤 전무 역시 “기준안은 굉장히 강한 수준의 가이드라인으로, 이에 따르자면 망 사업자로서는 상당한 위험성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며 “우리나라는 기존에도 통신산업에 대한 규제의 강도가 강한데, 망중립성에 대한 규제가 별도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팔현 LG유플러스 상무도 “트래픽 초다량 이용자로 인해 일반 소비자 역시도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인터넷 검색, 이메일 등 최소한의 서비스는 보장하자는 취지”라며 “지금은 어느 한 사업자가 트래픽 관리를 남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점을 감안하면, 기준안 자체는 통신사 입장에서는 강력한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사업자 “필요성 인정하나 서비스 차단 불가”

CP들은 서비스 단위, m-VoIP 차단 등에 대한 우려를 내놨다. 현재 m-VoIP는 SK텔레콤과 KT의 경우 5만원대 요금제 이상에서만 허용된다. LG유플러스의 경우 모든 요금제에서 허용한 상태다.

정민하 네이버 실장은 “합리적인 트래픽 관리 기준이 필요한 이유는 합리적이지 않은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비례성과 비차별성이 매우 중요하다”며 “해당 기준안에서 변경된 내용 중에 이용자별 차단이 아닌 서비스 단위 차단이 있는데, 이는 비례성 원칙에 맞지 않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정혜승 다음 팀장은 “망중립성에 대해 몇 년에 걸쳐 논의해온 것은 안 지켜지는 상황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정 팀장은 “지난 2010년 다음이 마이피플에서 m-VoIP를 차별점으로 내세웠지만 요금제별 차단, 품질 문제로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며 “이후 m-VoIP 차별하지 말라는 결과가 나왔고, 지난해 각 대선후보들의 공약에도 들어갔지만 아직까지 차단된 상태”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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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정부와 업계, 학계 관계자들은 가이드라인이 조속히 시행돼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했다. 지난 2010년부터 시작된 논의가 3년째에 접어들면서 일각에서는 무용론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대다수의 관계자들은 “오랜 시간 논의를 거쳐 오면서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반영했고 서로 간의 접점을 찾기도 했다”며 “한 번에 완벽한 가이드라인이 나올 수는 없으므로 우선적으로 기준을 만들어 놓고 차근차근 보완하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 아닌가 한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