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메프 3년, 천국과 지옥을 오가다

일반입력 :2013/10/10 11:40    수정: 2013/11/07 15:38

봉성창 기자

서울 서초구 삼성역 사거리 주변 금싸라기 땅에 실내 야구 연습장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작은 사무실 월 임대료만 수백만원에 달하는 이곳에 건물 한 층 전체를 그물과 인조잔디까지 완벽하게 설치한 작은 야구 연습장이 있다는 것 자체가 쉽사리 믿기 힘들다. 미국 마이너리그 산하 야구팀 입단으로 유명세를 탄 허민 대표가 세운 소셜커머스 기업 ‘위메이크프라이스(이하 위메프)’ 이야기다.

사실 허 대표는 그 동안 세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처음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은 지난 1999년 서울대학교 최초로 비운동권 출신 학생회장에 당선됐을 때다. 이는 대단히 상징적인 사건으로 당시 대학가에 적잖은 충격을 던졌다.

이후 허 대표는 대학을 졸업하고 게임회사 네오플을 창업한다. 서울대 야구부 출신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야구광이었던 그는 ‘신야구’라는 온라인게임을 만들었지만 결국 실패해 빚더미와 함께 좌절을 맛본다. 그러나 마지막 타석에서 날린 타구가 결국 역전 만루홈런이 됐다. 후속작 ‘던전앤파이터’로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하며 회사를 넥슨에 4천억원 가까운 거액을 받고 매각한 것이다. 이는 국내 벤처기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기록되며 세간에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세 번째는 최근 일이다. 마이너리그 싱글A 수준으로 알려진 미국 독립리그인 캔암 리그 록랜드 볼더스에 입단한 사건이다. 단지 그가 돈이 많다는 이유로 프로선수가 될 순 없다. 미국 너클볼 대가 필 니크로를 찾아가 배운 너클볼 실력으로 당당히 입단 계약을 맺었다. 이 소식은 류현진이 LA다저스 입단했을 때 만큼이나 큰 화제가 됐다. 야구에 열광하는 평범한 30대 직장인들의 판타지를 현실로 이뤄냈기 때문이다.

10만장 완판신화...위대한 기업 꿈 꿨다

허 대표는 네오플 매각 금액을 가지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사건 사이인 지난 2010년 10월 8일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위메프다. 지금 허 대표의 대중적 인기와 달리 위메프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쿠팡이나 티몬 과의 경쟁에서 한발 처지며 격차가 큰 만년 3위에 한 때는 4위까지도 추락했을 정도다.

위메프의 시작은 화려했다. 2010년 5월에 문을 연 티켓몬스터가 5천만원, 이후 8월에 쿠팡이 30억원을 가지고 시작할 때 위메프는 50억원 규모의 자본금으로 문을 열었다. 신생 기업 답지 않게 사옥도 있었다. 허 대표가 네오플 매각 후 약 800억원을 주고 구입한 건물이다. 이 건물 5층에는 지금도 당시 만든 실내 야구장이 그대로 있다.

프로모션 성격의 대규모 거래(딜)을 처음으로 선보인 곳도 위메프다. 1만4천900원에 내놓은 에버랜드 자유이용권 10만장을 완판했다. 이후 선보인 TGI 프라이데이 식사권 역시 10만장 모두 팔렸다. 롯데월드 자유이용권 1만장은 불과 30분만에 팔아치웠다.

처음 위메프와 딜을 성사시킨 에버랜드 측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이름도 못 들어본 신생기업이 찾아와 입장권 10만장을 팔겠다는 제안에 황당해 했다는 후문이다.

위메프 측은 일단 초기 2만장을 장당 1만9천900원에 에버랜드 측에 선매입해 1만4천900원에 팔았다. 대신 나머지 추가 판매분 8만장은 1만4천900원에 받기로 약속 받았다. 10만장을 모두 판매한 결과 위메프는 초기 선매입한 2만장 분에 한해 장당 5천원씩 총 1억원을 손해봤다.

그러나 1억을 투입해 거둬들인 마케팅 효과는 가격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컸다. 하루 종일 ‘위메이크프라이스’라는 단어가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늦게 뛰어든 후발주자였지만 2010년 10월부터 12월까지 석 달 간은 거래액, 방문자수 등 모든 면에서 경쟁업체를 압도할 정도로 성적을 거뒀다.

모든 것이 좋았다. 국내 소셜커머스 업계 1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한국의 아마존을 꿈꿨다. 그리고 구글처럼 회사를 운영했다. 당시 경영진은 짐 콜린스가 쓴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책을 마치 바이블처럼 삼았다고 한다.

그리고 책에서 제시한 대로 사업 확장보다는 좋은 인재를 영입하는데 몰두했다. 10시에 출근해 7시에 퇴근하는 근무시간 속에서 오후 6시가 되면 전 직원이 5층 야구장에 올라가 비싼 강사를 초빙하고 단체로 요가를 하며 제법 외국계 기업 흉내를 내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위메프의 패착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아픈만큼 성숙해지고...

위메프가 처음 선보인 슈퍼딜은 다른 소셜커머스 업체들에게도 좋은 벤치마크 사례가 됐다. 게다가 이 시점은 티몬과 쿠팡이 외부에서 적잖은 투자를 이끌어내며 자금력을 확보하던 시기였다. 이들은 수혈받은 자금을 광고와 마케팅에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위메프도 처음에는 이에 질세라 50억 가량을 들여 TV광고를 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불과 6개월도 지나지 않아 경쟁 대열에 합류하기를 스스로 포기했다. 2011년 7월 허 대표가 소셜커머스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됐다고 판단하고 소모적인 마케팅 경쟁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당시 소셜커머스 업계 상황을 혹자는 자전거 경주에 비유하기도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누군가 패달을 멈추는 순간 넘어질 것이라고 했다. 결국 위메프는 넘어지고 말았다.

여기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위메프가 돈을 적게 쓴 것은 아니다. 무려 300억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은 결승선이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허 대표는 좀 더 내실을 다져 장기적인 안목에서 흑자 경영체제로 넘어가겠다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다소 이른 판단이었다. 당시 여전히 소비자들에게 소셜커머스와 위메프는 낯설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한 적자는 당연한 것이었다. 아마존도 설립 후 7년이나 적자를 기록했다.

흑자 전환을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도 단행됐다. 설립한 지 불과 1년 만에 이뤄진 구조조정이다. 입사한지 1년도 되지 않은 사람들이 짐을 싸고 나가야 했다. 이 구조조정은 개인의 능력을 평가해 이뤄지지 않았다. 사업부나 팀 자체가 통째로 날아갔다. 불만도 많았지만 당시 경영진은 길어봐야 입사 1년밖에 안된 직원들의 능력을 섣불리 판단할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 누가 봐도 일 잘하는 직원이 자신이 속한 팀과 운명을 같이해야 했다.

허 대표가 게임회사 출신이라는 점도 이러한 구조조정 방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게임 회사는 프로젝트 단위로 운영되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의 개편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허 대표는 무엇보다 직원에게 일을 못해서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위메프의 시장 점유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진다. 결국 후발 주자였던 그루폰코리아에도 추격을 허용 당했다. 이 기간을 위메프 직원들은 ‘고난의 행군’ 시절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구글을 꿈꾸며 시작해 제 2의 네오플이 될 것으로 의심하지 않았던 기업이 순식간에 꼴찌로 추락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이러한 위메프에 구원 투수로 등장한 사람이 바로 박은상 현 대표다. 당시 위메프 막내 임원이었던 박 대표는 허 대표와 통하는 구석이 많았다.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의 그는 또 다른 소셜커머스인 슈거플레이스를 창업했다가 위메프에 인수되면서 합류한 인물이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철저한 분석 능력으로 위메프를 흑자 전환 기조에 최적의 인물이었다는 평가다.

박 대표의 투입은 성공적이었다. 지난해 6월 드디어 흑자 전환에 성공한 것이다. 월 거래액 150억원에 영업이익은 고작 1억 원에 불과한, 말 뿐인 흑자였지만 여기까지 이르는 과정은 위메프의 조직 DNA를 드라마틱하게 바꿨다. 한국의 구글이라는 허세에서 벗어나 단 1승을 위해 똘똘 뭉친 꼴찌 야구팀처럼 변했다.

다시 뛰는 위메프, 소셜커머스 판 바꿀까

사실 허 대표가 돈이 부족해서 위메프에 투자를 멈춘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그는 청년 재벌이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많은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흑자 전환 이후로 허 대표는 이제 때가 됐다고 판단한 듯 하다. 올해 위메프는 그 어느 소셜커머스 업체보다 공격적이다. 올해 초 5% 포인트 적립을 시작으로 200% 최저가 보상, 9천700원 무료 배송, 매일 슈퍼딜 진행 등 대규모 프로모션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마치 지금까지 비축했던 힘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모양새다.

반응도 나쁘지 않다. 일평균 방문자수가 100만명을 넘었으며 회원수도 1천만명에 육박한다. 아직 선두업체와의 격차를 완전히 좁힌 것은 아니지만 이제 어느 정도 가시권에 들어섰다고 판단할 정도다. 특히 최근에는 이승기와 이서진을 광고 모델로 기용해 대대적인 TV 광고까지 내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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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뒷심이 얼마나 통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시 예전의 과오를 되풀이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위메프가 가진 잠재력은 무엇보다 어디에도 거칠 것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당장 상장이 급한 것도 아니고 외부에서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회사를 포장할 필요도 없다.

박유진 위메프 홍보실장는 “회사의 최종 목표는 소셜커머스 1등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를 아우르는 차세대 유통 채널이 되는 것”이라며 “한국의 아마존이 되는 꿈은 아직 버리지 않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