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M이 죽어야 전자책이 산다"

일반입력 :2013/08/14 11:50    수정: 2013/08/14 11:56

남혜현 기자

미국 IT전문 출판사 오라일리는 지난해 출판한 대부분 서적에서 DRM을 뺐다. 불법 복제를 막는다는 DRM이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이유에서다. 국내선 한빛미디어, 인사이트 등 일부 출판사가 DRM 없는 전자책을 판매한다. 전자책 유통업체 유페이퍼는 저자나 출판사가 DRM을 넣을지 말지 직접 선택하게 했다.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출판·유통업체들에 'DRM 프리(free)'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오라일리 등 DRM 없이 전자책 판매에 성공한 사례가 바다 건너에서 전해져 온 이후다.

DRM은 허가된 사용자만 특정 디지털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지적재산권 보호 기술이다. 보안 기술을 넣어서 불법 복제를 막는 용도로 사용된다. 국내선 대부분 온라인 서점들이 각자 고유 DRM을 사용한다. 모든 유통업체들이 쓸 수 있도록 하는 공용 DRM도 만들어졌으나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콘텐츠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오면서 저작권자들에 가장 큰 골칫거리는 불법복제였다. 때문에 DRM은 콘텐츠 도둑질을 막아줄 기술적 대안으로 떠올랐다. 음원부터 시작해 전자책, 게임 등 다양한 온라인 콘텐츠에 DRM 기술이 녹아들었다.

그런데 이 DRM에서 콘텐츠들이 탈피하기 시작했다. 사용자들이 불편해 한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DRM을 폐기한 부문은 음원이다. MP3플레이어에서 스마트폰까지, 고객들이 사용하는 기기는 자꾸 바뀌는데 그때마다 DRM을 인증해야 하는 것이 소비자들에 불편을 끼친다고 판단했다.

■DRM, 저작자·소비자엔 '양날의 검'

종이책을 사는 사람들은 교보문고에서 산 책이랑 영풍문고에서 산 책을 별도 서재에 꽂아 놓지 않잖아요? 그런데 왜 온라인에선 서점별로 다른 뷰어를 써야 하죠?

DRM 프리에 대한 관심은 이같은 소비자 불편에서 먼저 시작됐다. 어떤 뷰어나 단말기든 상관없이 구매자가 돈을 주고 산 콘텐츠를 볼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해외선 DRM을 푸는 실험도 시작됐다. 주로 미국과 독일 등 도서 선진 시장으로 분류되는 나라에서다.

본격적으로 DRM 프리를 진행한 것은 소비자를 넘어 출판사 수익도 DRM을 풀 때 더 커진단 인식이 공유되면서 부터다. 오라일리 등 일부 출판사들이 DRM 프리를 통해 자체 사이트에서 도서를 팔기 시작했다. DRM을 사용하지 않으니 어떤 공간에서 팔든 기술적 문제에 구애받지 않았다. 전자책과 종이책 매출이 동시에 오르는 성과도 봤다.

중소 출판사나 개인 저자가 DRM에 적합한 뷰어나 플랫폼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기 어렵다는 점도 DRM 프리 논리에 힘을 싣는다. DRM이 강화될수록 저자나 출판사들이 특정 유통업체에 종속될 가능성이 커진단 설명이다. DRM이 풀리면 저작 도서를 팔 공간이 늘어나고, 저작권자와 소비자의 선택권이 커져 시장이 넓어질 수 있다.

이병훈 유페이퍼 대표는 해외 출판사 트렌드를 보면 DRM 프리로 넘어가는 움직임이 많다. 대형 출판사들이 그런 선택을 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DRM이 걸리지 않은 파일은 독자가 직접 마음에 드는 뷰어를 선택할 수 있는 등 자율도를 높이기 때문에 전자책 시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기술보단 의식 개선이 먼저

구매자를 믿자고 생각했다. 전자책을 사서 파일 공유 사이트에 올리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DRM 프리로 도서를 내고 1년이 넘었는데 불법 다운로드를 받는 경우는 거의 적발되지 않았다

한빛미디어 김창수 스마트미디어팀장은 회사 정책 차원에서 DRM 프리를 선택한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DRM을 푸는 대신 전자책 하단에 구매자의 이름과 이메일 주소를 집어 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불법 다운로드를 방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전자책에 대한 소유권 개념도 DRM 프리를 선택하게 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종이책을 구매한 사람은 소유권을 갖는데 반해 전자책은 접근권으로 구매자의 권리가 제한되고 있지 않느냔 주장이다. 예컨대 종이책은 친구에 빌려 줄 수 있지만 DRM이 걸린 전자책은 개인간 대여가 불가능하다.

김 팀장은 내 책을 보려면 내가 구매했더라도 인증을 받아야 하는 것이 DRM이라며 전자책을 구매한 사람이 서비스 업체 상황이나 단말기 사정과 상관없이 언제든 구매 콘텐츠를 다운로드 받아 영구소장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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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복제를 막기 위해선 DRM보다 소비자들의 인식 개선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들도 내놨다. DRM이 있다고 불법 다운로드를 모두 방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면을 촬영한다거나 캡처하는 등, 일명 '노가다' 작업을 막긴 어렵다. 때문에 업계 일부에선 기술적 제한보다 문화 의식 개선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병훈 대표는 DRM을 풀어 독자들을 편하게 해주면서, 불법 복제를 막는 법적 제도를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음원이나 영화에 굿 다운로더가 보편화된 것처럼 도서도 일반 독자들의 의식이나 문화를 개선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옳은 방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