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동 화백, 웹툰 유료화를 말하다

일반입력 :2013/08/13 11:47    수정: 2013/08/13 11:50

남혜현 기자

한참 이야기를 하던 그가, 오른팔을 뻗어 창밖을 가리켰다. 100년 전에는, 저기 저 길모퉁이에 서서 시장 사람들에 이야기를 해주던 이가 소설가였어.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면서, 중요한 대목, 그러니까 뽀뽀를 할까 말까 하는 그런 대목에서 이야기를 딱 멈추는 거야. 왜 멈췄겠어?

대답을 기다리는 눈이 반짝이더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표정이 나이 들지 않은 남자, 한국 시사만화의 대부 박재동 화백(62)을 12일 인사동 어느 찻집에서 만났다. 6년째 부천국제만화축제 살림을 이끌어온 운영위원장으로서, 축제를 이틀 앞두고 박 화백이 직접 홍보에 나섰다. 올해 축제의 주제는 '이야기의 비밀'이다.

이야기를 멈춘 소설가가 밑에 돈 통을 슬쩍 쳐다보는 거야. 궁금해? 다음 얘기가 듣고 싶어? 그럼 돈을 내라 이거지. 사람들이 돈을 통에 던지면 또 얘기를 계속해. 이제 이 여자랑 남자가 어떻게 될까…. 둘이 껴안고 옷을 벗을까 말까에서 또 딱 멈추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소설을 읽고 만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이야기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행동이다. 100년 전 우리 조상들도 길거리에서 푼돈이나마 소설가들에 돈을 내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콘텐츠를 무료라고 생각한다.

100년 전까지 갈 필요도 없다. 박재동 화백이 시사만화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과 비교해도 만화 시장 환경은 많이 바뀌었다. 만화가들의 주 무대는 온라인이고, 모바일이다. 웹툰이 익숙해진 이들에 만화는 공짜다. 콘텐츠를 '유료'로 팔겠다고 선언한 카카오페이지는 실패를 맛봤다.

어떻게 사람들이 돈을 내고 만화를 보게 할까, 이건 박재동 화백에게 고민거리다. 강풀, 윤태호 등 스타 작가가 생기고, 미생 같은 인기 만화가 쏟아진다. 그런데 이런 작가들도 유료 연재를 부담으로 느낀다. 독자가 줄어들까 걱정되서다. 박 화백에 따르면 파이는 줄이지 않고 유료로 전환하는 법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우리나라가 웹만화 왕국이야. 온라인 만화만 놓고보면 미국, 일본도 제쳤어. 그런데 이게 또 다 무료야. 그럼 작가도 힘들고 시장도 붕괴돼. 허영만 선생도 그렇고 유료화로 나온 건 의미 있는 일이야. 애들이든 어른이든 콘텐츠를 보면 100원이라도 지불하는 습관을 들여줘야 하거든.

박 화백이 주목하는 모델은 카카오 페이지가 도입하기로 한 부분유료화다. 작가가 알아서 콘텐츠 앞머리를 무료로 풀고, 다음 이야기를 계속해 보고 싶으면 돈을 내고 보도록 한 것이다. 카카오는 이 모델을 모바일 게임에서 따왔다. 처음엔 무료로 게임을 받되, 재미가 있으면 돈을 내고 아이템을 사니 소비자들이 결제에 저항감이 적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돈을 내고 게임을 하잖아. 재밌으니까 그러는 거지. 우리도 5화까진 무료로 만화를 보여주고, 6화가 보고 싶다, 재미있다 그러면 돈을 내고 보게 하는 거야. 연재를 계속 못하는 '5화 만화가'들도 생기겠지(웃음). 자조적인 말이지만, 재밌잖아. 그러다 인기가 생기면 또 돈을 벌게 되는 거고.

그에게 만화를 그리고 대중에 파는 이들은 모두 만화가다. 그 자신도 매우 유명한 만화가 아니었던가. 박재동 화백. 만화가 박재동. 아니, 그림쟁이 박재동은 30대 이상 성인들에 추억이다. 그를 대중에 알린 것은 한겨레 그림판. 단 한 컷의 강렬한 만화가 누군가엔 저항의 상징이 됐고, 또 누군가엔 위로로 다가갔다.

한 시대의 상징인 그가 올해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선 '글로벌'과 '만남'을 화두로 꺼냈다. 거창한 말 같지만, 풀이하자면 쉽다. 부천을 넘어 전 세계서 통하는 축제를 만들자는 거고, 온오프라인을 통해 만화인들이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보자는 거다.

게다가 올해 축제는 아주 재밌을 거라고 자신했다. '이야기의 비밀'이란 맛있는 미끼를 던져서다. 설국열차 원작자와 봉준호 감독, 그리고 미생의 윤태호 작가 등이 자신들의 이야기 속 비밀을 대중들에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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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가서 볼거야. 재밌을 것 같지 않아? 궁금하고. 작가들이 오고 싶어하는 축제를 만들겠다는 게 올해 목표였고. 내년엔 온라인을 중심에 둘거야. 시골이나 외국 사는 사람들도 축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도록. 웹왕국인데 만화의 메카가 돼야지. 국제와 만남의 장, 이게 핵심이야.

두시간 남짓 인터뷰가 끝나고 함께 인사동 길을 걸었다. 귀에 낯선 바이올린 소리가 들렸다. 파란 눈을 가진 거리의 악사를 보고 박 화백이 말했다. 길거리 연주도 예술이야. 나는 길을 지나다가 저런 사람들을 보면 꼭 돈을 내. 예술을 봤으니 돈을 내야지. 그게 콘텐츠 유료화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