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하늘로 쏘아올린 나침반,GPS⑯위치경제 물꼬

일반입력 :2013/08/09 18:58    수정: 2013/08/10 22:59

이재구 기자

■클린턴대통령, “레이건의 약속을 지키겠다”

“민간에게도 자유로운 GPS활용을 허용하겠다.”

1983년 소련전투기에 의한 KAL007피격으로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하는 비극적 사태가 발생하자 레이건 미국대통령은 이같은 내용의 대통령지침(Presidential Decision Directive)을 내놓았다.

군사용 GPS전송신호 암호를 풀어 민간인들도 방해전파없는 신호를 수신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다시는 KAL기처럼 항로를 잘못잡아 격추되는 민항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하지만 미국방부가 볼 때 수십억달러짜리 군사용 위성을 무료로 민간인들에게 개방할 이유는 없었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냉전시대를 보냈지만 걸프전에서 GPS위성은 냉전시대 그 어느 때 못지 않은 위력을 여실히 과시했다.

레이건의 약속은 사장돼 있었다. KAL기 격추사건이 발발한 지 13년이 지나도록 미국은 여전히 GPS위성을 군사용으로만 썼고 민간에 개방하지 않았다. 지리정보시스템(GIS)업계를 제외한 일반인들은 이같은 첨단 기술이 사용되고 있는 줄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로부터 13년만인 1996년 3월29일. 백악관에서 한 건의 긴급 보도자료가 나왔고 앨 고어 부통령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긴급 브리핑을 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이 보유한 GPS의 사용과 운영, 그리고 이에 대한 미국정부의 사용강화에 대한 완전한 국가정책을 승인했습니다.”

미 정부가 미군 전용 GPS위성의 활용범위를 민간분야로 확대해 나갈 것임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었다.

그는 또 “클린턴 대통령은 미GPS가 민간상업시장에서 급속한 성장의 문을 열고 10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연간 매출을 20억달러에서 오는 2000년까지 80억달러로 확대시켜 줄 GPS운영 및 사용에 대한 새 지침을 승인했습니다. 이 가운데 수천명의 일자리가 캘리포니아에서 나올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앨 고어대통령의 브리핑은 GPS위성이 민간,상업,과학용으로도 얼마나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미국의 일자리와 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말해 주고 있었다.

“GPS는 급격히 떠오르는 글로벌정보인프라의 통합구성요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지도제작과 측량에서부터 국제 항공기 운영,전세계적인 변화를 조사하는데 이르기까지 다양한 응용분야가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또 군용,민간,상업용, 그리고 과학용 사용자들의 수요 증가세는 미국GPS장비와 서비스산업이 전세계를 이끌게 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GPS서비스 증강은 이들 민간 및 상업용시장의 확대를 더욱더 가속시키도록 해 줄 것입니다.”

백악관 자료는 GPS의 정의에 이어 GPS신호를 쏘는 방식에 이르는 세세한 부분까지 망라하고 있었다. 향후 5년간 창출될 일자리의 절반인 5만개가 GPS기술이 집중된 실리콘밸리의 캘리포니아에서 나오리라는 전망이었다.

이날 브리핑은 GPS를 미국은 물론 전세계 국가들이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미국정부의 의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GPS사용확대에 대한 목표도 분명했고 안목도 장기적으로 내다본 것이었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 국가 안보 강화 및 유지 ▲GPS를 전세계의 평화적인 민간,상업 및 과학적 응용을 위해 통합적으로 받아도록 장려 ▲미국GPS 기술과 서비스의 개인적 투자와 사용 장려 ▲교통 및 다른 분야에서의 안전과 효율성 증진 ▲GPS를 평화적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국제협력 증진 ▲그리고 미국과학 및 기술능력을 앞서 나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날 백악관 발표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2000년이 되면 클린턴대통령이 매년 결정하는 내용 가운데 GPS에서 정확도를 떨어뜨리는 선별적 활용(SA Selective Availability)제한을 없앨 것임을 부각시켜 보도해 달라”고 요청한 점이었다.

■ “즉각 GPS를 민간에게 개방한다”

그 누구도 이 약속이 2000년에 실행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통령도 안보상의 이유를 내세운 국방부의 반발은 거부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백악관 발표 6년 후인 2000년 5월 1일. 미 백악관은 전격적인 발표를 내놓았다. 놀랍게도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한 즉각적이고도 단계적인 실행조치가 나왔다.

“오늘 나는 미국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도적인 GPS신호를 떨어뜨리는 것을 중단키로 했다는 사실을 밝히게 돼 기쁘게 생각합니다.우리는 그동안 이를 SA라고 불러왔습니다.

이는 민간GPS수신기 사용시 위치가 지금까지보다 10배나 더 정확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GPS는 전세계에 정확한 시간과 위치데이터 두 가지를 제공합니다. 지난 1996년 3월 발표한 나의 대통령지시의 목적은‘국제적으로 GPS의 민간,상업,과학적인 부분에서의 수용과 평화적 이용,개인분야의 투자장려 및 미국 GPS기술 및 서비스 사용을 장려하기 위한 것’입니다.이같은 목적을 위해 나는 올해부터 오는 2006년까지 매년 정기적인 평가를 통해 SA의 사용을 줄여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2000년 5월 1일 월요일. AFP등 주요 외신은 워싱턴 백악관발로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이같이 전격적인 발표를 했다고 전세계에 긴급 타전했다. 이 조치는 5월2일 0시부터 즉각 발효된다는 발표 내용이었다. 하지만 클린턴의 대통령지시는 2000년 5월 1일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 D C에서 사용되는 미동부표준시(EST)로 오후 8시부터 적용됐다. “‘GPS정확성을 떨어뜨리는 일을 중단키로 한 미국정부의 결정에 대한 대통령 성명’이 발표됐다”또는 “클린턴대통령이 더 정확한 GPS서비스를 승인했다”는 제목의 기사였다. 클린턴 대통령은 4년전 앨 고어부통령을 통해 직접 브리핑했던 4년전 발표를 잊지 않고 있었다.

GPS기반의 위치경제에 대한 발표는 이를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SA에 대한 민간부분 신호(L1)를 개방한다는 실질적 조치로 이어졌다. 이로써 GPS수신기 사용자들이 지금까지보다 10배로 더 높은 10미터 내외의 정확도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백악관은 이 조치의 목표를“2006년까지 SA를 완전히 제거하며 군사적 보안을 위한 위성수신암호가 민간용 GPS수신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100미터 정도였던 위치정확도는 10미터 이내로 10배 이상 향상됐고, 수천달러씩 하던 GPS수신기 가격은 10분의 1 이하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단말기는 더욱더 작아졌고 기능은 불어났다. 실시간 경로 계산은 물론 교통정보까지 알 수 있게 되는 등 활용도도 무궁무진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2000년 클린턴 대통령의 GPS신호개방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내비게이션시스템을 촉발시킨 촉매가 된 기념비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아이폰과 다른 스마트폰용 모바일내비게이터를 개발한 조하네스 안겐부르트 내비곤 부사장은 꼭 10년만인 2010년 5월 1일 씨넷과의 인터뷰에서 클린턴의 조치를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2000년 당시 이 분야의 그 어느 전문가도 클린턴 대통령의 GPS혼신암호 해제가 이처럼 빨리 이뤄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미국방부는 연례연구보고서를 통해 2006년을 SA해제시점으로 보고 있었다. 업계 전문가들은 미국방부가 일러야 2003년 또는 2004년이나 돼야 미국의 GPS수신신호를 해제할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그 배경을 두고 여러 가지 얘기가 들려오고 있었다. 심지어 음모론까지 등장했다. 군사안보적으로는 안보와 관련한 선제권 확보가, 민간차원에서 막아야 할 이유는 글로벌 측위시스템 분야에서의 주도권 확보, 즉 표준 선점이라는 게 불을 보듯 뻔하게 보였다.

■유럽 갈릴레오위성이 발사되면...

분명한 것은 미국의 GPS와 유사한 위치측정위성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고 이것이 어떤방식으로든 미국정부의 GPS신호 민간 개방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클린턴의 GPS신호개방 결정이 있기 1년전인 1999년 유럽은 미국같은 측위위성 발사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1999년 독일, 프랑스,이태리,영국에서 나온 갈릴레오위성을 만들기 위한 서로 다른 컨셉트가 나왔고 4개국 엔지니어들은 이를 하나의 컨셉트로 모았다.

“만일 갈릴레오 계획을 포기할 경우 우리는 향후 20년에서 30년까지 자주적 방위권을 상실할 것이다.”

유럽연합(EU) 내에서 이같은 주장이 제기되면서 자체적으로 미국의 GPS위성 같은 위성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즉각 관련 조사연구가 시작됐다. EU는 모두 50억달러가 투입될 이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의 GPS,러시아의 글로나스(GLONASS),에 의존하지 않는 회원국들이 독자적 위치확인시스템을 갖도록 하고 싶어했다.

1미터 오차의 수평·수직 위치측정 결과를 제공하면서 기본적인 항법시스템 가격은 무료가 될 예정이었다. EC의 갈릴레오 프로젝트가 자금문제로 이후 지연되긴 했지만 이는 미국에겐 어떤 방식으로든 부담이었다.

이런 가운데 이듬 해인 2000년 5월 1일 클린턴의 발표가 나왔다.

2001년 전세계를 공포와 충격으로 몰아넣은 911테러사태가 발생하자 미국정부의 입장은 이전보다 훨씬더 보수적이 돼 있었다. 폴 울포위츠 미국방부차관은 미정부가 유럽연합에 이 프로젝트를 반대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이 해 12월 1일 폴 울포위츠 미국방부 차관이 유럽연합(EU)교통부장관에게 보낸 외교문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갈릴레오 위성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었다.

“장관귀하, 저는 EU의 갈릴레오 위성계획이 계속 진행된다면 GPS M코드신호와 중첩돼 북대서양조약기구와의 보안 활동이 복잡해질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합니다.향후 수년간 미국은 미래의 활동을 위해 GPS에 대한 커다란 수정을 가할 계획입니다....GPSM코드와 똑같은 주파수를 사용하는 어떤 갈릴레오 위성서비스의 추가도 중대한 위기시점에서 GPS의 활동을 엄청나게 복잡하게 만들 것입니다....12월6일 갈릴레오 협약을 검토하는 EC장관회의에 앞서 이같은 우려를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저는 EC가 군사적인 목적으로 갈릴레오를 개발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안된 시스템을 안보관점에서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 EU는 안보적 이유로 프로젝트 강행을 결정했다. 2002년 3월 12일자 EU의 한 (또다른) 문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히고 있었다.

“만일 EU가 어떤 안보상의 임무를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미국은 그 임무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 상황에서 이미 꼭 필요한 것으로 자리를 굳힌 인공위성 항법기술을 보유하지 했을 경우 EU는 무기력 상태에 빠질 것이다.”

■글로나스 위성의 변수

미국은 1991년 미소냉전의 한축이던 소련이 붕괴하자 글로나스(GLONASS)의 존재를 잠시 잊은 듯 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이 글로나스위치위성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져 있었다. 2000년 글로나스위성에 각별한 관심을 갖던 푸틴대통령 치하의 러시아경제가 살아나고 있었다. 푸틴은 국가 최고과제 가운데 하나로 글로나스 재가동을 꼽고 있었다.

그의 구상은 “2009년까지 4억2천만달러의 예산을 투입해 모든 글로나스위성을 살려낸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2001년 8월 정부결정 587호에따라 러시아연방 프로그램 글로벌내비게이션시스템20002~2011 계획이 시작됐다.

구소련의 글로나스 위성을 승계한 푸틴 대통령 치하의 러시아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련이 붕괴했을 때도 12대의 글로나스위성이 지구궤도상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소련전역을 커버하려면 모두 18대의 위성이 필요했다. 따라서 제한적이긴 하지만 위치확인시스템은 소련에서도 사용되고 있었다.

민족주의자 푸틴대통령은 1976년 구소련 정부가 최초로 결정을 내리고 미국GPS위성에 이어 자국영토내에서 가동돼 오다 멈춘 우주항법시스템 글로나스(GLONASS)를 살려내려 애쓰고 있었다. 이미 쏘아올려진 3년 짜리 위성들의 수명이 다해 새로 발사해야 했다. 하지만 개방 이후 러시아는 그동안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이를 살릴 엄두를 내지 못했었던 게 사실이었다.

푸틴은 미소 냉전시대의 산물인 글로나스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2001년까지 사상 최소규모인 6대의 글로나스위성만이 작동했다. 미소군비감소 협정에 앞서 러시아국방부는 글로나스 지휘권을 러시아민간우주청인 로스코스모스로 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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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클린턴대통령이 민간에 GPS신호를 개방키로 한 결정은 군사안보적으로 이유와 함께 미국의의 GPS위성을 표준으로 삼는 글로벌 측위위성표준 확보 차원으로 해석됐다.

2000년 5월 1일 빌 클린턴이 발표한 GPS신호 민간 개방목적의 첫번째 이유는 GPS가 전세계 개인과 기업의 핵심기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이유가 더 중요한 결정적 이유로 보였다. GPS가 글로벌 표준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게 미국 정부의 발표였다. 비록 러시아에 한정됐지만 글로나스와 갈릴레오가 쫓아오는 상황에서 미국이 GPS위성으로 전세계 위치측정시스템의 선두주자가 되길 원한 것이란 점만은 분명해 보였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