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에 항고에...삼성 진짜 속내는?

일반입력 :2013/08/06 08:44    수정: 2013/08/06 13:37

임민철, 정현정 기자

삼성전자가 국제무역위원회(ITC) 판결로 이끌어낸 애플 제품 수입 금지를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으로 무산시켰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가 향후 애플과 이어갈 법정 공방과 특허 협상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셈법이 복잡해졌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그간 양사 법정싸움에서 삼성전자는 자사가 통신단말기 사업을 벌이며 노하우를 쌓아온 표준필수특허로 애플을 압박했고, 애플은 자사 제품에 적용된 디자인 특허와 모바일 운영체제(OS)에 담긴 소프트웨어(SW) 특허를 무기 삼아 맞섰다.

시장 현황만 놓고 보면 최악의 경우 애플은 당장 판매 중인 제품의 공급에 제동이 걸릴 수 있었던 반면 삼성전자는 이미 거의 단종 수순인 제품을 걸고 싸우는 중이라 태연해 보였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발동으로 삼성전자에게 불리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거부권 발동이 없었다면 미국 시장서 아이폰4와 아이패드2의 수입과 유통이 금지돼 애플 측에 타격을 줄 수 있었다. 또 삼성전자 입장에선 수입금지 판정 자체를 그동안 협상에 소극적이었던 애플로 하여금 크로스라이선스 협상에 적극 나서도록 유도할 수단으로 기대가 가능했다.

일단 애플 제품 수입 금지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삼성전자의 향후 협상 카드를 제한하는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평가된다.

■합의는 예정된 수순

소송 경과를 볼 때 삼성전자는 영국·독일·네덜란드·호주 등 각국에서 진행 중인 재판에서 부분적으로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정작 애플 본진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소송에서 대승을 거두진 못했다.

삼성전자가 지난 2011년 6월말 신청한 애플 제품 수입금지 처분은 발효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된 반면, 애플이 2011년 7월초 신청한 삼성전자 제품 수입금지 판결은 오는 9일 나올 예정이고 발효될 가능성마저 열려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애플과 법정공방을 지속하는 한편 장외 협상을 통해 일종의 특허전쟁 '출구전략'을 찾는 투트랙 전략을 사용할 것이라 예상한다. 양사에겐 단순히 재판에서 이기는 것보다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향후 시장 경쟁에서도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임앤정특허법률사무소 정우성 변리사는 특허소송의 승패와 시장에서의 승패는 분리된다며 삼성전자 같은 규모의 회사라면 시장 변화에 따라 유리하게 대처하는 게 중요하고 주요 고객사인 애플을 잃는 것보다 적절한 경쟁과 더불어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게 현명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소송 규모를 키우기보단 법정에서 결론이 난 주요 쟁점을 근거삼아 특허 라이선스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관건은 양측이 특허사용료를 둘러싼 이견을 어떻게 좁히느냐다.

■일단 협상부터…

사실 양사는 지난해부터 특허 소송을 매듭지을 생각이었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지난해 9월 애플이 삼성전자에게 한차례 승소 후 특허소송 타결을 제안했고, 12월부터 협상을 시작해 2월까지 합의 직전까지 갔다가 결렬됐다고 보도했다. 이어 지난 3월 삼성전자가 협상 재개를 요청했지만, 애플은 지난 6월 ITC의 제품 수입 금지 판결 시점까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황상 애플은 협상중 삼성전자가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이는 대신 지난 6월 ITC 판결과 그에 대한 정부측 대응을 지켜본 뒤 협상 전략을 조정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6월 ITC 최종 판결로 예고된 애플 제품 수입 금지를 뒤집어버린 지난 3일 오바마 행정부의 거부권 발동은 애플이 유리하게 활용 가능하다.

또 앞서 언급한대로 오는 9일 ITC가 삼성전자 제품을 놓고 애플의 상용특허를 침해했는지 최종 판정해 수입금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전개될 수 있는 상황은 ▲삼성전자가 특허 비침해 판결을 받거나 ▲특허 침해가 인정돼 수입금지를 당하거나 ▲특허 침해는 했지만 애플처럼 오바마 행정부의 수입금지 거부권이 발동되거나, 3가지로 갈린다.

이 결과에 따라 양사가 향후 진행할 특허 관련 협상이나 오는 11월 손해배상규모 산정을 위해 열리는 심리에서의 표정이 달라질 수 있다.

■최상의 시나리오 '애플 상용 특허 비침해'

우선 삼성전자 입장에서 최선은 특허 비침해 판결을 받는 것이다. 이 경우 삼성전자는 애플과 달리 아예 제품에 대한 수입 금지 처분을 받지 않게 된다.

ITC는 이미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제품이 애플 특허 4건을 침해했다는 예비 판정을 내놨다. 예비 판정에서 침해가 인정된 특허 4건 가운데 1건이라도 침해 결정이 유지될 경우 해당하는 삼성전자 제품들은 모두 수입 금지 대상이 된다. 이를 뒤집을 가능성이 아주 높은 건 아니지만 비침해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아예 없지도 않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애플특허 4건 침해를 인정한 ITC의 예비 판정에 불복해 재심사를 요청했다. 실제로 ITC는 지난 1월 이후 5월까지 특허 4건을 2건씩 2번에 걸쳐 재심사한다며 예비 판정을 3번이나 번복했다. 지난 1일로 예고한 최종 판정일도 한차례 미뤘다. 오는 9일로 연기된 최종 판정일이 더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

또한 ITC의 예비 판결 내용은 이번 애플의 경우처럼 최종 판결에서 번복될 수 있다. ITC가 애플 제품에 대해 삼성전자 표준특허를 침해했다고 최종 판결했는데, 이는 지난해 9월 '비침해'였던 예비 판정을 2개월만에 번복한 뒤 최종 판정일을 5차례나 연기하며 재심사한 끝에 나온 것이다.

삼성전자 제품이 애플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전제로 양사 협상이 재개될 경우, 삼성전자에 크게 유리한 조건이 성립한다. 애플이 삼성전자의 필수특허를 침해한 것은 이미 공인된 사실인 반면, 애플은 여전히 상용특허에 대한 침해를 추가로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차선의 전개 애플 특허 침해…美 대통령, 수입 금지 거부

삼성전자가 애플 특허를 침해한 것으로 판정되더라도 제품에 대한 수입 금지가 발효되느냐 마느냐에 따라 다른 전개가 예상된다.

만일 삼성전자가 특허 침해 판결을 받고 미국 대통령에게 수입 금지가 건의될 경우, 60일 이내에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행사치 않을 수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표면적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은 앞서 대통령의 거부권을 이끌어낸 애플과 마찬가지가 된다.

애플 특허 침해가 인정된 뒤 삼성전자가 애플처럼 수입 금지에 대한 거부권을 이끌어낸 경우, 역시 삼성전자가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협상 테이블에서도 애플을 상대로 표준필수특허의 권리를 주장할 여지가 생긴다.

오바마 대통령이 상용특허만을 침해한 삼성전자 제품 수입금지까지 거부했다는 것은 필수특허 남용에 대한 우려가 소비자 보호 목적만큼 큰 명분은 아니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당초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거부권을 발동시킨 이유는 표준필수특허 남용에 대한 현저한 우려와 소비자들의 이익 침해 2가지였다.

■최악 애플 특허 침해한 삼성전자 제품 수입 금지

삼성전자가 애플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ITC 판결 이후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60일을 넘길 수도 있다. 실제로 구형 갤럭시 스마트폰과 태블릿 제품이 수입 금지 처분을 당하는 시나리오다.

일단 삼성전자가 최종적으로 제품 수입금지 처분을 받더라도 애플처럼 시장에 직접 타격을 받을 가능성은 적다. 수입 금지 목록에 포함된 갤럭시S, 갤럭시S2, 갤럭시넥서스, 갤럭시탭 등은 이미 후속작이 출시된 구형 모델이기 때문이다.

다만 특허 침해 판결과 수입 금지 조치 자체는 향후 애플이 협상 테이블에서 삼성전자를 압박할 빌미가 된다. 실제 협상에서 삼성전자의 표준필수특허보다 애플의 상용특허가 더 큰 협상력을 갖거나, 애플은 아쉬울 게 없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합의를 위해 뭔가를 양보해야 할 상황이 될 수 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수입 금지를 그대로 승인할 경우, 이는 2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삼성전자의 제품 자체가 이미 소비자들의 이익을 침해할 여지가 적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애플처럼 표준필수특허를 침해할 경우 구제를 받을 수 있지만, 삼성전자처럼 상용특허를 침해할 경우엔 구제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표준필수특허 대신 상용 특허로 맞불?

일각에선 삼성전자가 단계적인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소송전의 주무기였던 표준특허를 포기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표준특허 효력이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이다. 2년간 이어온 표준특허 주장과 관련 소송을 철회시 당장은 삼성전자 입장을 애매하게 만들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애플과의 협상을 원만히 전개하는데 유리할 여지를 만들어줄 것이란 풀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최근 ITC 판결에서 인정되지 않은 특허 역시 애플을 겨냥할 무기로 활용하기 위해 항소에 나섰다고 밝혔다. ITC 판결에 따른 수입 금지 압박과 별개로 또다른 특허 공격을 준비 중이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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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ITC 수입 금지 판결이 나온 지난 6월초 연방항소법원에 즉각 항소했다고 밝혔다. 당초 회사가 특허 침해를 주장한 표준필수특허 2건과 상용특허 2건 가운데 ITC가 표준필수특허 1건에 대한 침해만 인정했기 때문에 연방항소법원에 나머지 특허 3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는 설명이다.

항소심 법정서 애플 제품에 대한 삼성전자 상용특허 침해 판정이 나오면 이번 ITC 최종판정이 파기환송, 즉 번복될 가능성도 있다. 거부권 행사 근거로 언급된 것이 대체할 수 없는 표준필수특허의 남용 가능성에 따른 우려였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상용특허 침해를 근거로 수입 금지 판결을 이끌어내면 대통령이 그에 대해 또 거부권을 행사하긴 어려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