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와이파이·빅데이터…케이블 트렌드는?

NCTA에서 본 케이블 방송시장 키워드

일반입력 :2013/06/20 08:12    수정: 2013/06/20 09:12

전하나 기자

지난 10~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세계 최대 케이블TV 박람회인 ‘전미케이블협회(NCTA)’ 쇼가 열렸다. 행사는 방송과 통신이 융합해 어떤 새로운 미래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지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미국 케이블 업계의 고민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국내서도 방송통신 융합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기조인 ‘창조경제’와 맞물리며 화두로 떠올랐다. KT 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국내 방송통신 융합서비스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12.3% 증가한 12조5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업계에 시사점이 될만한 NCTA쇼의 핵심 키워드를 꼽아봤다.

■슈퍼 와이파이

이번 행사에서 유독 반복된 단어는 ‘슈퍼 와이파이(super Wi-Fi)’였다. 특히 업계 오피니언 리더들이 직접 슈퍼 와이파이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나섰다. 마이클 파월 NCTA 회장은 미연방통신위원회(FCC) 의장과의 대담에서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해서라도 슈퍼 와이파이가 보급돼야 하고 이를 위해 정부 허가 없는 주파수 비(非)면허대역을 케이블업계에 허용해달라”고 요구했다.

슈퍼 와이파이는 일반 와이파이가 2.4GHz의 고주파 대역을 이용하는 것과 달리 700MHz의 TV 방송 유휴 저주파 대역을 사용하는 통신기술이다. 기존 와이파이보다 도달거리와 건물 투과율, 면적이 각각 3배, 9배, 16배 가량 높다.

적은 기지국으로 더 넓은 범위의 서비스가 가능해 농어촌과 산간·도서지역은 물론 도심 콘크리트 빌딩 숲에서도 사각지대 없는 ‘공짜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다. 때문에 사용자들에게는 폭넓은 편의를, 사업자들에게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안겨준다.

미국 FCC는 2010년 9월 23일 비어있는 공중파 채널 구간, 일명 화이트 스페이스를 슈퍼 와이파이로 활용될 수 있게 개방했다. 현재 이와 관련된 시범서비스와 다양한 서비스 모델 개발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곳이 바로 케이블업계다.

하지만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슈퍼 와이파이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통신계다. 이종관 미디어미래연구소 박사는 “국내 SO들은 사업 여건이나 타깃 시장이 제작기 다르기 때문에 아무래도 미국처럼 주파수 할당에 대한 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국내 케이블업계의 저조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동수 씨앰비 상무는 “업계 일각에선 슈퍼와이파이를 구축할 경우 초고속인터넷이 저가로 가지 않겠냐고 우려하는데 오히려 무선 쪽에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생기기 때문에 지역 기반 비즈니스 등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케이블업체가 유선에 이어 무선 네트워크에도 가입자 기반을 끌어들이면 서비스와 콘텐츠를 유통시킬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성기현 티브로드 전무는 “케이블사업자 입장에선 훨씬 더 저렴한 투자 비용으로 다양한 수익 모델을 꾀할 수 있는 것”이라며 “알뜰폰(MVNO) 결합상품 등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해 ‘무선설비 규칙과 주파수 분배표’ 개정안을 통해 슈퍼 와이파이를 도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뒀다. 하지만 정부조직개편으로 주파수 정책이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로 이원화되면서 관련 정책은 답보에 머무르고 있는 상태다.

■클라우드

미국 1위 케이블 업체 컴캐스트의 CEO 브라이언 로버트는 차후 5년 동안 TV의 미래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클라우드를 지목했다.

미 케이블업체들은 전시회에서 저마다 클라우드 기술을 선보이며 TV의 진화 방향을 암시했다. 이 중에서도 미국 5위 케이블업체인 케이블비전은 클라우드 서버에 TV 프로그램을 저장해 어느 장소에서든 원하는 시간에 시청이 가능한 ‘클라우드 PVR(Personal Video Recorde·개인용 방송녹화 장치)’을 내세워 이목을 끌었다.

사실 PVR 자체는 전혀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PVR은 2000년대 초반부터 양방향 서비스의 표본으로 주목 받았다. 수백 개의 채널이 존재하는 케이블에서 시청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선택 예약해 원하는 영상만을 소비할 수 있다는 것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프로그램만 봐야 했던 당시 시청 행태에 새로운 혁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 나올 당시 TV산업에 당장 큰 지각변동을 가져다 줄 것처럼 예견된 것과 달리 서비스 확산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2009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기각하며 일단락됐지만 할리우드 스튜디오 등 콘텐츠 저작권자들이 방송을 녹화해 제공할 경우 콘텐츠 비용을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며 케이블비전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는 일도 벌어졌다.

국내선 CJ헬로비전과 씨앤앰이 2008년부터 PVR 상품을 선도적으로 내놨지만 현재 이들 MSO의 PVR 상품 가입자는 2만명 가량 수준으로 매우 적다. 이는 국내 방송 이용자들의 PVR 수요가 높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브로드밴드 인프라가 발달되고 이동휴대방송이 일찍 도입된 국내에선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가 워낙 발달한 탓이다. 이 때문에 사업자들의 투자도 크지 않다.

정철문 한국디지털케이블연구원(KLabs) 연구원은 “가입자 기반이 정체돼 있고 요금 지불구조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현 업계 구조상 사업성이 확실하지 않은 클라우드 방송에 투자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종관 박사도 “클라우드 PVR 서비스가 활성화 되려면 SO들이 일종의 인터넷 사업자(ISP)역할을 해야 하는데 브로드밴드나 IDC센터를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선 비용이 많이 들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또 미국서 저작권 이슈가 해결된 것과 달리 국내에선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도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한 케이블업체 관계자는 “지상파가 콘텐츠 가치 하락을 우려로 VOD 홀드백 기간 연장을 늘리고 있는 상황에서 PVR은 더욱 반발을 불러올 것”이라고 했다. 특히 상품광고를 건너뛸 수 있는 PVR 서비스가 방송사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대용량 방송 콘텐츠를 저장할 수 있고 VOD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는 고객 효용 측면에서 클라우드 PVR은 여전히 매력적인 서비스 모델이다. 또 계열사인 KT의 IPTV와의 결합으로 400만 가입자 달성을 목전에 두며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KT스카이라이프가 올 하반기 ‘클라우드 PVR’을 출시할 예정이어서 케이블업계의 경계심은 커지고 있다.

케이블업계 한 임원은 “아직까지 사업성 판단이 충분히 되지는 않았지만 디지털 시대에 접어든 유료방송의 차별력을 갖기 위해 클라우드 PVR에 대한 검토를 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빅데이터

‘빅데이터’에 대한 논의가 많았던 것도 올해 NCTA에서 유의미한 대목이다. 디지털 정보 소비량이 급증하는 시기에 데이터가 미시적인 방송 시청 행태를 파악하고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마케팅 수단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 깔렸다.

앞선 모범 성공 사례도 나와 있다. 미국 대표 온라인쇼핑몰 아마존은 고객의 과거 구매이력과 검색기록 등을 분석해 개인에게 적합한 제품을 추천해주는 개인화 서비스로 업계를 평정했다. 아마존이 이런 서비스를 통해 벌어들이는 매출은 전체의 약 40%를 상회한다.

이번 전시회에서 TV제조사나 방송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이런 데이터 분석에 근거한 개인화 서비스들을 경쟁적으로 선보인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컴캐스트는 음성인식에 기반한 VOD 추천 서비스를 탑재한 X2플랫폼을, LG전자는 버라이즌과 합작 출시한 스마트TV에서 시청 중인 영상과 유사한 성격의 콘텐츠들이 자동 선별·추천되는 ‘온 나우’ 기능을 시연했다.

국내 MSO들도 최근 개인화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우선 티브로드가 오는 24일 출시되는 자사 HTML5기반 유료방송에서 개인별 계정 로그인을 통한 개인화 서비스를 시작한다. 가족 구성원마다 ID 계정을 등록할 수 있도록 유도해 계정별로 성향을 분석해 맞춤형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게 특징이다.

현대 HCN도 내년 5월 출시할 예정인 스마트 셋톱박스에 고객의 구매패턴 및 성향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해 VOD를 추천해주는 ‘VOD 추천 마법사’를 서비스할 방침이다. 권기정 현대HCN 상무(CTO)는 “알프(ARPU·가입자당 월평균 매출)가 정체된 상황에서 활로를 꾀할 수 있는 방안이 VOD 마케팅”이라며 “가입자가 쓴 데이터는 다 VOD서버로 들어오기 때문에 이를 분석해 고객의 니즈를 맞추는데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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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케이블업계에선 보다 세밀하게 고객군과 콘텐츠 관련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이터 과학자(data Scientist)를 육성하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서도 콘텐츠 수명을 분석해 극장동시개봉작, 장기구매, 특별할인 등 다양한 상품 구성을 기획하는 전문 인력 고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권 상무는 “올해부터 VOD 쿠폰 소진율을 분석하고 고객 재방문을 유도하는 일만을 전담하는 인력을 배치했다”며 “케이블은 지역별로 콘텐츠 소비 이용률이 다 다른데 궁극적으로는 전체 SO를 총괄해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전문 팀이 만들어질 필요도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