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최대 케이블쇼 개막…화두는

일반입력 :2013/06/11 11:45    수정: 2013/06/12 09:42

전하나 기자

<워싱턴D.C(미국)=전하나 기자>“방송 수요는 점점 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자연스럽게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도전과제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케이블TV는 이전에도 그랬던 것과 같이 앞으로도 투자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10일(현지시간)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열린 전미케이블협회(NCTA)쇼 개막연설에 나선 마이클 파월 NCTA 회장은 “케이블은 90년대 중반부터 2천억달러(230조원) 넘는 돈을 투입해 광대역망을 늘려왔고 그 결과 미국 가정 93%의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며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이같이 말했다.

이어 “오늘날 미국인들이 실시간으로 연결된 온라인 사회에 살게 된 데에는 케이블의 광대역망이 크게 기여했다”면서 “IT 혁신의 밑바탕인 케이블이 앞으로도 미디어 생태계 발전에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62회째를 맞는 NCTA 주제는 ‘앞서가는 세상(WORLDS AHEAD)’이다. 월드가 복수로 표현된 것은 케이블업계 앞에 펼쳐진 복합적이고도 무궁무진한 미래를 함축한 것으로 풀이된다. ‘케이블 : TV 이상의 것. 우리가 연결되는 방법(Cable: more than TV. How we connect)이라는 슬로건도 내걸렸다.

■새로운 경쟁 상황 직면한 美케이블

현재 미국 케이블산업은 ‘위기’와 ‘기회’에 함께 직면해 있다. 한때 미 케이블은 유료방송시장의 98%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상위 8개 중 절반이 위성이나 IP를 통해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일 정도로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 넷플릭스, 훌루 등 OTT(Over the top) 서비스나 아마존, 구글, 애플 등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들도 케이블업계에 위협이 되고 있다. 특히 넷플릭스의 경우 지난해 미 케이블 최대 사업자인 컴캐스트의 가입자수를 앞지르는 등 성장속도가 가파르다.

무엇보다 최근 업계를 가장 화들짝 놀라게 한 사건은 ‘에어리오(Aereo)’와 같은 신종사업자의 출현이다. 지난해 2월 뉴욕시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이 회사는 지붕이나 TV에 설치하던 안테나 대신 손톱 크기의 ‘마이크로 안테나’ 수천 개를 데이터 센터에 설치, 초고속 인터넷을 통해 미국 4대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 방송을 포함해 27개 채널을 제공한다. 이를 이용하면 실시간 방송 시청 뿐만 아니라 녹화·클라우드 저장까지 가능하다.

때문에 방송사들은 에어리오가 “저작권 있는 콘텐츠를 무단 도용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방송 기술 방식 특수성을 들어 이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닉 체슨 NCTA 변호사는 “에어리오는 일반적인 방송 서비스 사업자가 아니기 때문에 안테나 할당에 대해 승인을 받아야 하는 기존 규제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며 “현재 콘텐츠를 제공하는 업체에 어떤 차등을 둬선 안된다는 골자의 법이 계류 중인데 올 연말께 향방이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온라인 비디오제공업체들이 태동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케이블이 망을 깔아준 것이 큰 몫을 했다”며 “네트워크에 투자했던 것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고 케이블 산업에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도록 규제체계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적이 아닌 친구로”

이처럼 사업자간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무리한 생존 경쟁으로 치닫기 보다 협력을 통해 공존을 이뤄내자는 목소리가 미 케이블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 제너럴 세션 토론에 참석한 콘텐츠, 네트워크, OTT, 인터넷 사업자들은 상호협력 추진에 뜻을 모았다.

알리 로우가니 트위터 COO는 “트위터가 미국 내에서 TV 방송에 대한 공개된 온라인 대화의 95%를 점유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와 있고 실제 트위터에선 TV에서 본 것에 대한 트윗(Tweets)이 굉장히 빠르게 증가한다”며 “방송사들은 트위터를 비즈니스 확장의 도구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컴캐스트가 투자한 블루투스 분야 선도 기술벤처 조본의 호세인 라만 CEO도 “어차피 기술은 진보하고 사람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한다”며 “케이블 업계는 기술을 두려워하거나 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빠르게 수용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톰 루트리지 차터커뮤니케이션 CEO는 “TV사업은 더이상 특정 사업군의 고유 영역이 아니”라며 “이는 곧 서비스 자체보다는 콘텐츠의 경쟁력이 핵심 관건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고 했다.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을 사업 확장의 기회로 여기는 방송 사업자들도 있다. 조쉬 세이펀 AMC네트웍스 CEO는 “이제 사람들은 쇼를 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쇼가 끝난 뒤에도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내고 시즌 뿐 아니라 오프시즌에도 방송을 보고 싶어한다”면서 “이는 사업자에게 더없이 좋은 사업 기회”라고 역설했다.

앤 스위니 월트디즈니 TV사업본부 사장은 “TV산업에서의 주도권은 과거 사업자들이 갖고 있었지만 이제는 전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있다”면서 “우리가 제작한 콘텐츠가 어떤 기기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비될지에 대해 더는 통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플랫폼의 증가로 인해 콘텐츠 유통 경로가 다양해지고 월정액제인 서브스크립션 주문형비디오(SVOD), 스마트 기기 앱 등 수익모델의 다양화도 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디즈니는 현재 ‘워치 ESPN’ ‘워치 디즈니’ 등 케이블 가입자 대상 실시간 방송 서비스 앱을 선보이고 있다.

■고객 중심으로 체질 개선 필요

이번 전시회에선 빅데이터, 클라우드와 같은 신기술 개념도 케이블업계 관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해당 기술들이 고객 관리라는 마케팅 측면에서 유효한 수단이 되고 나아가 전반적인 고객 경험 향상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가 깔렸다.

실시간 애널리틱스 업체 구아부스의 라키나 CEO는 “10년 전만 해도 데이터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면 바보 취급을 했는데 이제 빅데이터 얘기를 안 하는 사람이 바보가 됐다”며 “플랫폼이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데이터가 갈수록 비정형화돼있기 때문에 데이터마이닝(방대한 양의 데이터로부터 유용한 정보를 추출하는 일련의 활동)을 전담으로 하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와 같은 역할이 방송사에서도 필요해졌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산업에 비해 아직까지 케이블 방송산업에서 빅데이터 응용이 더딘 것 같다”고 지적하며 “데이터가 모이면 모일수록 서로 연결성을 찾게 되고 자연스럽게 소비자에게 유용한 서비스 전략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 이번 전시회에선 제조사나 방송사들이 너나할 것 없이 이런 데이터 분석에 근거한 VOD 개인화 서비스들을 경쟁적으로 선보였다. 컴캐스트는 음성인식에 기반한 보이스 추천 서비스를, LG전자는 버라이즌과 합작 출시한 스마트TV에서 시청 중인 영상과 유사한 성격의 콘텐츠들이 자동 선별·추천되는 ‘온 나우’ 기능을 시연했다.

클라우드 기반 고객 관리 사례도 나왔다. 스테파니 미츠코 케이블비전 부사장은 “클라우드 서버에 TV 프로그램을 저장해 집안 어느 장소에서든 원하는 시간에 시청할 수 있는 DVR(디지털 영상 저장장치)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사업자들은 이를 통해 고객들이 어느 시간대에 어떤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녹화를 했는지 등을 분석해 다른 전략 수립이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관련기사

포화 상태에 이른 케이블 가입자를 새로 유치하는데 급급해 하기보다 클라우드와 빅데이터 등을 적극 활용, 기존 가입자의 만족도와 충성도를 동시에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조 듀프리스트 모뉴멘탈 스포츠&엔터테인먼트 CMO는 “이제 방송 비즈니스의 핵심은 인프라나 서비스 속도 등이 아니라 이용자”이라며 “앞으로는 단순히 고객CS적으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팬클럽 비즈니스로 체질 개선을 해야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